최근 해임된 김원홍 전 국가안전보위상(왼쪽)과 배후설이 일고 있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연합뉴스
지난 3일 통일부의 정준희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1월 중순경 북한의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당 조직지도부의 조사를 받았으며, 대장에서 소장으로 강등된 이후에 해임됐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당 조직지도부가 김원홍과 보위성에 대해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처벌 수위와 대상자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 대변인은 김원홍의 해임 배경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보위성이 조사 과정에서 자행한 고문 등 인권유린과 함께 월권과 부정부패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 명분일 뿐 그 이상의 자세한 배경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필자는 김원홍의 갑작스런 해임 배경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주목한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각각 공안라인과 군에서 유독 돋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둘은 소위 말하는 북한의 실세로 분류된다.
더불어 두 사람은 김정은 시대 권력 구도를 놓고 적극적으로 물밑 싸움을 벌이던 경쟁자 관계였다. 이 때문에 필자는 두 사람에 대한 내부 정보를 조사하면서 이 점을 특히 주목했다. 필자는 이미 지난해 11월 18일 본지 기사를 통해 리영길 제1부총참모장의 숙청 및 복귀 과정을 조명하면서 그 물밑에서 전개된 황병서와 김원홍의 권력다툼을 심도 있게 언급한 바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김원홍의 해임을 야기한 검열 주도 집단은 당 조직지도부다. 공교롭게도 황병서는 오랜 기간 당 조직지도부에 몸 담았던 인사다. 황병서는 지난 2005년 5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된 뒤 총정치국으로 적을 옮기기 직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까지 승격했던 인사다. 비록 지금은 총정치국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조직지도부 내부에 자신의 입김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황병서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배후설과 관련해 필자는 과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악연을 공개하고자 한다. 두 사람의 악연은 이미 2010년부터 시작됐다. 2010년 공교롭게도 김원홍은 지금 황병서가 몸담고 있는 군 총정치국의 조직부국장에 임명돼 검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원홍은 총정치국에 오기 전 91훈련소(수도방위사령부) 정치위원으로 있었다.
이 때 김원홍은 황병서의 첫 번째 부인(황병서는 현재 재혼)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들여 조사했다. 황병서의 부인은 한 비리사건의 수뢰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황병서의 부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강도 높은 조사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황병서 입장에선 김원홍이 부인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 악인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지난 2015년 7월 이 사건을 각색해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산케이신문>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2012년 4월로 기재했다. 이 때는 김원홍이 보위상(당시엔 국가안전보위부 부장)으로 승진했을 시기다. 허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앞서 황병서 부인의 사망사건은 김원홍이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 있었던 2010년께 발생한 일이다.
김원홍이 지휘한 수사과정에서 부인을 잃은 황병서는 2014년 4월 군 총정치국장으로 오른 뒤 일종의 복수를 시작한다. 2014년 5월 황병서는 김원홍의 아들 김철을 구속 수사했다. 북한에서 보위상의 아들을 구속 수사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1965년생인 김철은 김원홍의 삼남으로 청봉무역총회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청봉무역총회사는 당 39호실 산하로 인력수출과 석탄 및 광물 판매를 주 종목으로 하는 무역회사다.
김철은 김정은의 둘째형 김정철과 매우 가까웠으며 봉화조(중국의 태자당과 비견되는 북한 최고위층 2~3세 집단을 지칭) 출신이었다. 북한 내부에서 김철은 보위상인 아버지 김원홍에 빗대 ‘새끼 보위부장’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그 만큼 세를 과시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철은 이때 마약 밀거래 및 복용 혐의로 군 보위총국(현재는 보위국으로 격하)에서 조사를 받았다. 군 보위총국은 황병서의 총정치국장이 진두지휘하는 군 공안기관이다. 이때 군에서는 군내 무역회사들과 관련하여 권력 남용 행태를 보이던 봉화조에 대해 대대적으로 검열했던 시기였다.
김철은 앞서의 혐의로 재판 예심까지 받았지만 절친했던 김정철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삼남 김철이 사고를 친 2014년 연말 김원홍은 아들의 잘못으로 비판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매해 12월이면 북한 내 핵심권력 계층의 자식들을 모이게 하고, 그들의 생활을 집중 검열한다. 이 자리에선 겸열을 통해 도출된 문제들을 두고 대책을 세우는 회의를 진행한다. 각 당 조직들에서 진행되는 연말 총회보다 비판이나 책벌 등 그 수준이 더 엄격하게 진행된다. 이 회의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1과가 주재한다. 제11과는 북한 김 씨 가문과 그 주변 핵심 고위층 자제들의 사생활까지 포함한 범법행위 감시 전문 조직이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 방한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모습. 연합뉴스
이 회의에서 김원홍이 아들을 잘못 관리했다는 책임을 물어 머리를 숙이게 했다. 천하의 김원홍이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김원홍은 이 자리에서 삼남 김철의 범법행위를 반성했고 잘못을 빌었다. 황병서에 의해 굴욕을 맛본 셈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5년 말 경 황병서의 총정치국 산하 보위국(보위총국에서 다시 보위국으로 격하)은 다시 김철을 체포했다. 필자는 김철의 두 번째 체포 사건이 김원홍에 대한 황병서와 당 조직지도부의 마지막 경고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철은 이때 중국 현지에서 체포됐다. 정확한 사안을 알 수는 없지만 ‘외환 거래’ 등 위반 혐의로 추측된다. 위법행위의 기본지역은 중국 심양이었다는 후문이다. 이미 한 차례 체포 경력이 있는 김철로서는 다시 석방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이때 김원홍은 아들 김철을 잃을 뻔했다. 김철은 보위국 조사 과정에서 약한 뇌졸중을 겪게 된다. 2010년 김원홍의 조사 과정에서 첫 번째 부인을 잃은 황병서는 입장을 뒤바꿔 김원홍 삼남 김철의 조사에 직접 관여하게 된 셈이다. 김철은 당시 조사 영향으로 발병한 뇌졸중으로 병보석 석방됐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다는 후문이다. 그의 병보석 뒤에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도운 것으로 전해진다.
김원홍의 삼남 김철이 겪은 군 보위국 체포와 뇌졸중으로 인한 석방 과정은 그가 전격 해임되기 1여 년 전 겪은 일이다. 황병서가 관여한 이 사건이 김원홍의 해임에 어느 정도 영향이 갔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당 조직지도부의 보위성 검열 작업에 황병서는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군 공안기관(보위국)을 활용해 정보를 협조하거나 입김을 낼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이는 필자의 분석이고 추측이지만 그간 일련의 과정을 놓고 볼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고 단언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