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세론’의 강화는 ‘문재인 포비아(공포)’로 이어진다. 공고한 대세론은 반대편을 빠르게 결집시킨다. 이미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스몰 텐트 구축에 나섰다. 문 전 대표는 인재영입 논란 등 잇따른 실책을 했다. 이른바 ‘대세론의 역설’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표.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촛불정국이라는 변수 속에서 치러지는 대선인데, 대세론을 흔들 변수가 있겠느냐. 이 구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캠프 측 관계자의 말이다. 헌법재판소의 ‘2월 선고 무산’으로 야권은 다시 광화문광장 촛불민심 한가운데 섰다.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설 연휴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불출마 등을 거치면서 캠프 내부 곳곳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이번 대선은 지는 판”이라며 “국정감사에서 ‘저격수’나 하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한쪽은 지나친 자신감, 다른 한쪽은 처절한 패배감에 휩싸였다. ‘모르핀’과 같은 승리의 도취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문 전 대표 대세론은 자생적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외부 변수에 의한 반사효과에 가깝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촛불정국이 맞물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 열망이 커졌고, 대안 없는 현 구도에서 문 전 대표가 이를 흡수한 측면이 크다. ‘문재인 대세론’이 공고한 흐름이라기보다 ‘잠정적·일시적’ 흐름에 그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이 지점과 궤를 같이한다.
문 전 대표가 모래알 같은 대선 구도가 좀 더 명확해진 다음에도 개헌과 결선투표제,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사드·THAAD)를 비롯한 외교·안보 등 정책의 각론과 인재영입 등에서 디테일 부족을 드러낼 경우 지지도가 하락하거나 정체 국면에 빠질 수도 있다. 이미 캠프 영입 1호인 전인범 장군(전 특전사령관)의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을 변호사 비용으로 쓴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대권 가도에 흠집을 남겼다. 또한 KBS 토론회 거부는 물론, 당내 다른 주자들의 토론회 제안에도 ‘묵묵부답’이다.
‘문재인 대세론’의 두 번째 암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 공동체에 묶이면서 2012년 대선 때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동시에 친노(친노무현) 이미지에 갇혔다. 문제는 외연 확장이었다. 문 전 대표의 ‘노무현 후계자’ 이미지는 호남은 물론, 5060세대, 중도층 등에 소구력을 갖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참여정부 시절 ‘부산 정권’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던 문 전 대표는 선거 국면 때마다 호남에 약한 고리를 드러냈다.
문 전 대표가 아킬레스건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이 보수진영에선 ‘황교안 등판론’, 진보진영에선 ‘안희정 대안론’이 급부상,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다. 당 내부의 섀도 캐비닛을 둘러싼 권력암투, 당 밖의 제3지대 빅텐트 등도 대세론을 흔드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이 모든 것의 문제는 친노·친문 패권주의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참여정부 시즌 2’에 대한 비토 심리다. 문 전 대표의 지지도가 ‘다자구도 30%-양자구도 50%’에 육박하지만, 비호감 비율도 40% 후반대에 달한다.
2월 5일자 <국민일보>에 따르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와 함께 지난 3∼4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59명을 대상으로 한 공동조사(유무선 전화면접 조사 병행)에서 문 전 대표는 다자 구도 32.5%, 3자 구도 A(문재인 vs 안철수 vs 유승민) 43.2%, B(문재인 vs 황교안 vs 안철수) 44.6%, 양자구도 A(문재인 vs 안철수) 48.1%, B(문재인 vs 유승민) 50.3% 등을 기록하며 2위 그룹과 2∼3배 격차 앞섰다.
그러나 호감에선 순위가 뒤바뀌었다. 호감도에선 안희정 충남도지사(55.4%) > 문 전 대표(51.8%) >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41.2%)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29.9%), 비호감도에선 황 권한대행(65.2%) > 안 전 대표(57.9%) > 문 전 대표(46.9%) 순이었다. 문 전 대표가 호감도에선 2위, 비호감에선 3위를 각각 차지한 것이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 응답률은 13.6%(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였다.
특히 친노 외연 확장을 가로막는 정황은 당 안팎 곳곳에서 포착된다. 캠프 공식 입장 여부와는 무관하게 문 전 대표 측의 ‘섀도 캐비닛’ 구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공동 선대위원장에 합류한 전윤철 전 감사원장 등의 국무총리 발탁설부터 호남 총리 A 씨,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B 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C 씨 후보로 실명이 거론되면서 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친문 핵심부터 비문계 인사들까지 총망라했다. 후보 뜻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캠프 내부가 왕좌의 게임에 취해 ‘권력 나눠 먹기’에 나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비문계 중진 의원은 “문 전 대표 측근들이 대세론을 갉아먹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입인 김경수 의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문 전 대표가 친노·친문의 굴레인 ‘기득권 이미지’를 벗어 던지지 못한다면, 당내 경선에서부터 암초에 걸려 스텝이 꼬일 수도 있다. 이 지점이 세 번째 산이다. 대선 고지를 눈앞에 둔 문 전 대표에게 당내 경선은 ‘기대치 게임’이다. 결선투표 없이 압도적 표차로 본선에 직행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처뿐인 승리’로 귀결할 수도 있다. 외연 확장 여부가 변수인 본선에서 ‘문재인 한계론’이 끊임없이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와의 격차는 크지만 안 지사는 최근 상승한 지지도를 바탕으로 한 ‘대중성’을, 이재명 성남시장은 ‘조직력 가동’에 나섰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현재 비문 중 안 지사 돕기를 주저하는 ‘샤이 안희정’이 많다. 현재는 대변인 박수현 전 의원을 비롯해 김종민·정재호·조승래 의원 등이 안 지사를 돕고 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변재일 의원 등의 비문 의원들의 지원 가능성도 나온다.
이 시장도 기존의 정성호·김영진·제윤경 의원 그룹에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인 유승희 의원과 초선의 김병욱 의원 등이 합류키로 했다. 경기지역 진보 시민사회단체 등 진보진영 관계자들도 전방위적으로 이 시장 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진보진영 내에서 이 시장을 돕는 그룹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스몰텐트로 첫발을 뗀 ‘제3지대 빅텐트’도 넘어야 할 산이다. 안 전 대표의 지지도 하락과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의 파급력 약화로 문 전 대표의 대항마로 부상하기에는 2%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문 전 대표 측의 위기관리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제3지대 ‘스몰텐트’가 ‘빅텐트’로 진화한다면, 막판 ‘51 대 49 승부’로 좁혀질 수도 있다.
복수의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전망하는 셈법은 간단하다. 현재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은 70% 안팎이다. 보수와 무당층을 제외한 범야권의 싸움은 이 공간의 자리싸움이다. 대선 구도가 ‘일대일’ 구도로 재편한다면, 표 확장성 측면에서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주장이다. 한 분석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일주일간 민심의 흐름이 ‘문 vs 안’ 싸움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