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의 인기는 예측을 벗어난 반전이다. 같은 시간 방송하는 SBS <사임당, 빛의 일기>를 추월해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에서는 더 큰 놀라움을 안긴다. 배우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화제의 연속이던 <사임당, 빛의 일기>는 스포트라이트 속에 방송을 시작했지만 이내 <김과장>에 정상을 내주고 말았다. 시청자는 왜 이토록 <김과장>에 열광할까.
# 덜 나쁜 주인공이 더 나쁜 악당 ‘응징’
<김과장>은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경리과장 김성룡이 주인공이다. 돈에 대한 천부적인 ‘촉’으로 각종 부정도 서슴지 않는 인물. 그런 김과장은 더 큰 ‘한 탕’을 위해 그룹에 필사적으로 입사한 이후 아니러니하게도 자신보다 더 악랄한 인물을 마주하고, 결국 불합리와 싸우게 된다. 배우 남궁민이 타이틀롤인 김과장 역을 맡았고, 남상미가 그를 돕는 상대역으로 나섰다.
자칫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김과장>의 구도는 요즘 가장 각광받는 ‘선악 대결’을 취하고 있다. 전적으로 선한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는 고전적인 권선징악에서 벗어나 ‘덜 나쁜 주인공이 더 나쁜 악당을 응징’하는 구도다.
드라마 ‘김과장’은 주인공 남궁민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조연 배우들의 활약도 호평을 받고 있다. KBS 2TV ‘김과장’ 페이스북 캡처.
이는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현실 사회를 적극 흡수하면서 차용한 설정이기도 하다. 완전무결한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절대적인 선악 대결을 배제하고 상대적인 선악을 취한 결과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내부자들>과 <더 킹>에 관객이 몰입하고 열광한 이유도 이 같은 선악 구도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김과장> 속 남궁민은 소위 ‘조폭’ 출신이다. 돈이 되다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는 인물. 하지만 드라마에는 그보다 더한 악당이 등장한다. 남궁민과 맞붙는 연기자 준호다. 그의 극 중 역할을 검사 출신의 엘리트. 최고의 권력을 차지하려고 사람을 헤치는 일도 마다지 않는다. 결국 조금 덜 나쁜 남궁민은 더 악랄한 준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김과장>을 연출한 이재훈 PD는 “지금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벌써 몇 번이나 청문회를 국민들이 봐왔고 세금을 ‘삥땅’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나와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장면을 보며 분노와 의심을 느꼈다”고 했다. 드라마가 현실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셈이다.
실제로 현실을 반영하되 대리만족을 더한 카타르시스를 작품에 담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목표다. 이재훈 PD는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기업 오너가 회사의 주인이 아니다”며 “사원 하나하나가 피 땀 흘려 노력을 해서 이익을 내는 곳이 회사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소시민적인 주인공을 내세웠다”고 밝혔다.
# 직장생활 고단함 날리는 ‘코미디’
직장인들의 ‘애환’을 내밀하게 들여다본 드라마는 자주 등장해왔다. 물론 얼마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지가 작품의 성공을 결정지었다. 직장인의 팬터지를 자극하면서도 생활 묘사에서는 리얼리티를 강조한 tvN 드라마 <미생>은 최근 가장 성공한 직장 드라마로 꼽힌다.
<김과장>은 앞서 <미생>으로 검증된, 직장생활 묘사라는 킬러콘텐츠를 적절히 활용한다. 시청자의 평가 가운데 ‘진짜 내 직장을 보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자주 목격된다. 다만 <미생>과의 확연한 차이도 있다. 코미디다. 웃음보다 눈물과 공감을 내세운 <미생>과 달리 <김과장>은 폭소를 동반한 코미디로 무장했다.
제작진은 <김과장>을 두고 ‘오피스 활극’이라고 표현했다. 회사(오피스)를 무대로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웃고 울고 떠드는 모습을 그대로 담겠다는 의도다. 물론 그 코미디의 지향은 ‘풍자’다. 낙하산 인사, 서열에 따른 상명하복 등 누구나 겪어봄직한 사회생활의 단면을 풍자를 겸한 코미디로 그려낸다. 보는 내내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얻으면서 ‘사이다 드라마’라는 평가까지 얻고 있다.
KBS 2TV ‘김과장’ 페이스북 캡처.
# 조연 배우들…블록버스터급
사실 <김과장>이 방송을 시작하기 전 주목을 덜 받은 이유는 주연 배우들이 갖는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남궁민은 최근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티켓파워나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톱스타로 분류할 수는 없다. 남상미 역시 결혼과 출산 이후 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오는 만큼 우려의 시선이 교차했다. 같은 시간 상대 방송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이영애, 송승헌, 엑소의 찬열 등이 나선 사실과 비교하면 <김과장>이 ‘약체’로 평가받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신 <김과장>에는 탄탄한 조연 배우들이 빈틈없이 포진해 있다. 제작진은 연극은 물론 독립영화까지 샅샅이 살펴 출중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을 발굴했다. 시청자에게 낯선 배우들은 그렇게 드라마를 채웠다. 조연진만 보면 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캐스팅이다.
이에 더해 영화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해온 배우들도 여럿 참여했다. 배우 김원해와 김강현, 황영희, 김재화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다소 부족할 수 있는 주연배우들의 무게감을 든든히 받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근래 가장 성공적인 캐스팅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