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사진, 얼굴사진 | ||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혀지기 마련. 오직 그날의 악몽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생생한 순간을 담은 ‘사진’뿐인 듯싶다. 최근 9•11테러 1주년을 맞이해서 독일 <슈테른>이 당시 세계 언론을 장식했던 사진 속 주인공을 찾아가 근황을 살펴 보았다.
이들 중에는 꿋꿋하게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악몽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크리스티안 워(소방관) -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
당시 공식적인 ‘사망자 1호’로 기록됐던 마샬 저지 신부를 다른 동료들과 함께 힘겹게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이 유명한 사진은 북쪽 타워가 붕괴된 직후의 급박한 모습이다.
당시 북쪽 타워에 있다가 파편에 깔린 저지 신부를 피신시키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온 것이 극적으로 워(55)의 목숨을 구했다.
그는 “죽은 저지 신부가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된 셈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마음은 영 편치 않다. 건물 안에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죽은 동료들의 얼굴을 본다는 그는 ‘혼자 살았다’는 알지 못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입은 무릎 부상으로 다리를 절고 있는 그는 올해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졌다”며 한숨을 토해낸다.
▲ 봅 벡퀴스와 조지W부시 대통령 | ||
봅 벡퀴스(퇴직 소방관) - 아비규환에서 ‘행운’잡았다
테러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어느날 이대로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퇴직 소방관 봅 벡퀴스(70)는 나라를 위해, 희생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그라운드 제로로 향했던 벡퀴스는 그날이 생애 최고의 날이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함께 우연히 소방차 위에 올라가 찍은 이 사진 한 장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떠올랐다.
그후 두 차례에 걸쳐 백악관에 초대되는 등 화제의 인물로 연일 TV에 오르내리던 그는 급기야 독일까지 날아가 방송 출연을 할 정도로 ‘국제적인 인물’이 됐다. 방송의 힘이란 실로 무서웠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54년 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사촌들에게서도 연락을 받았다.
그저 대통령을 보기 위해 소방차 위로 올라갔던 그날의 ‘우연’이 그를 일순간 ‘행운의 사나이’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에드파인(사업가) - 비즈니스는 계속된다
당시 ‘먼지를 뒤집어쓴 서류가방 남자’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 사진 속 주인공은 사업가 에드 파인이다.
이 사진을 표지로 실었던 경제지 <포천>은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오로지 사업에만 골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내용과 함께 “월스트리트의 정신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파인의 실제 모습은 <포천>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당시 세계무역센터 빌딩 78층에서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로 탈출하는 절박한 순간에도 그는 시계를 보면서 “이렇게만 내려가면 다음 미팅 시간에는 늦지 않겠군”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1년이 지난 지금 파인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최근에는 9•11 당시의 경험담을 엮은 <신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라는 제목의 수필을 출간하기도 했다.
마시 보더스(은행원) - ‘살아있음’이 더 힘들다
9•11테러 이후 일명 ‘더스트 우먼(먼지에 뒤덮인 여인)’이라고 불리게 된 뉴저지의 마시 보더스(29)를 모르는 미국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절망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녀의 모습은 당시 현장의 참혹함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테러 당일 북쪽 타워 81층에서 근무하고 있던 보더스는 ‘꽝’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상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1시간 20여 분 만에 출구로 나왔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앞으로 내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은 무너졌고 그렇게 그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9월11일 이후 그녀의 생활은 백팔십도 바뀌었다. 심각한 조울증과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자꾸만 떠오르는 당시의 아비규환 영상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날도 허다하다. 다시 직장에 나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적십자의 구호기금으로 간신히 생활하고 있지만 이미 삶의 의욕을 잃은 지는 오래다. 미혼모였지만 상태가 이렇다 보니 키우던 딸마저 아빠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전세계에서 수백 통이 넘는 위로 편지를 받고 있지만 그녀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집안에 틀어박혀 엉엉 울고만 있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정신과 치료와 함께 당시의 악몽을 떨쳐 버리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용기’밖에 없는 듯하다. 어쩌면 시간만이 해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