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경찰은 소라넷의 핵심 서버를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두 달 뒤인 6월 소라넷 운영진은 사이트 공식 폐쇄를 알렸다. 소라넷은 1999년 ‘소라의 가이드’란 이름으로 100만 명을 넘나드는 회원을 확보해 회원이 직접 찍은 음란 사진과 동영상, 몰카 등 범죄물을 공유하던 웹사이트였다.
적통은 ‘꿀밤’이 넘겨 받았다. 2013년 6월 소라넷을 본떠 만든 이 웹사이트는 소라넷이 폐쇄된 뒤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회원수만 42만 명을 돌파했다. 회원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 가운데 가장 음란한 응모작에는 상금까지 내거는 등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지난달 17일 운영자 2명을 불구속입건하며 꿀밤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소라넷과 꿀밤은 단순한 사진이나 동영상 공유를 넘어 회원이 직접 참여하는 ‘초대남’ 방식을 부추겨 물의를 빚었다. 초대남이란 부부나 커플이 자신들의 성관계 모습을 보여주거나 참여시키려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초대했을 때 참가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초대남의 실시간 중계가 이뤄지기까지 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소라넷과 꿀밤이 폐쇄되며 초대남들은 갈 곳을 잃었다. 방황하는 초대남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린 건 ‘부커취’라는 인터넷 동호회가 암암리에 명성을 얻고부터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부커취는 ‘부부와 커플들의 취미 모임’을 줄인 단어로 현재 2만 30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단순히 외부에서 봤을 때에는 등산과 모임을 종종 갖는 친목단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정 등급 이상의 회원에게는 더 많은 접근 권한이 생겨 철저하게 ‘인증 중심’으로 돌아가는 ‘계급형 소라넷’이 됐다.
운영의 기본은 초대남과 부부나 커플의 만남이다. ‘싱글찾기’라는 게시판은 소라넷 게시판과 유사하다. 초대남을 찾는 공고로 가득하다. “육아에 지친 ㅇㅇㅍ(와이프)를 위해서 매너 있으신 분 찾습니다. 나이대는 상관 없습니다. 잘생기고 못생기고 상관 없습니다. ㅁㅅㅈ(마사지) 하실 줄 아는 분이면 더 좋습니다. ㅇㅇㅍ는 158, 48, 33(키 158㎝, 48㎏, 33세)입니다”와 비슷한 게시글이 줄을 잇는다. 메시지 앱 아이디를 공개해 개별적으로 연락을 시도한다.
성관계라는 단어를 마사지로 위장해 무료 성관계도 주선한다. 부커취 운영진은 검증 마사지사라고 불리는 10명을 두고 6주 동안 교육시켜 부커취 마사지사 23명을 탄생시켰다. 이 외에 비등록 마사지사라는 아마추어가 20명 추가돼 총 53명이 운영진을 거쳐 연락해온 사람과 연결된다. 교육은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한 마사지 전문점에서 이뤄진다. 마사지 교육과 마사지사의 출장 마사지 등은 모두 무료다. 이는 금전이 오갈 경우 성매매특별법으로 걸릴 수 있는 탓이다.
지난해 4월 16일 경기도 아지트에서 단체 모임을 가진 부커취 회원들.
서로 합의한 부부나 커플이 단순한 쾌락으로 만나는 건 법으로 제재할 수 없다. 문제는 소라넷이나 꿀밤 같이 음란물이 수시로 올라온다는 점이다. 제3자가 찍은 성관계 등의 행위를 담은 음란 사진이 쉴 새 없이 이 모임에 등장한다. 이는 음란물 유포죄에 해당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형법 234조에 명확히 써있다. 음란한 사진 등을 전시하면 당연히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커취 운영진은 “만남에서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은 금한다”고 밝혔지만 게시판에는 음란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소라넷화를 방조하는 셈이다.
부커취 운영진은 모임의 목적이 소라넷과 철저하게 구분된다고 말했다. 부커취 운영진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웃과의 만남은 나른한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을 확신하며 개설했다”며 “여행, 등산, 골프, 노래, 호프, 마사지, 캠핑 등 함께하는 폴리아모리 모임”이라고 부커취의 목적을 밝혔다. 폴리아모리(polyamory)는 다자간의 사랑을 뜻하는 단어로 ‘많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의 합성어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폴리아모리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물론 폴리아모리가 무조건적으로 비판 받아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 폴리아모리 지지자는 “대중은 우리를 보고 성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비판하지만 폴리아모리스트는 짝에 대한 헌신 등 정신적 유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며 “다양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일 뿐이지 집단적인 성관계나 난교로 이어지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폴리아모리 추종자 일부는 여러 파트너와 집단혼을 한 뒤 공동으로 재산을 형성해 육아도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도 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동해 동성 결혼 다음의 사회적 운동으로 번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부커취 운영진이 밝힌 모임의 목적은 ‘폴리아모리’다. 하지만 부커취를 폴리아모리 추종자의 모임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많다. 정신적 유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폴리아모리와 달리 부커취의 운영 형태 전반은 관음과 성적 욕구의 분출이다.
지난해 4월 9일 부커취 운영진은 “최근 소라넷 폐쇄로 소라넷에서 활동하시던 적지 않은 분들이 부커취에 가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소라넷과 부커취는 추구하는 이상과 성향이 서로 다르고 금품을 수수하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 보호정책을 준수한다. 선정적인 문구는 예고 없이 삭제되고 제재된다”며 소라넷의 후신인 점을 드러냈다. 이를 본 과거 소라넷 유저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소라넷에서 오신 분이 많다. 우리는 소라넷과 달리 무료다. 어린 친구들은 올 수 없다.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말고 ㅊㄷㄴ(초대남) 등 자음만 써라.”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