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서울시 중구 한국재정정보원에서 열린 ‘2016년회계연도 총세입부‧총세출부 마감’행사에 참석, 최재해 감사원 감사위원과 마감 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일 ‘2016회계연도 세입·세출 마감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세금을 당초 계획(232조 7000억 원)보다 9조 8000억 원이나 초과한 242조 6000억 원을 거둬들였다. 이 때문에 경기가 최악인 상황 속에 정부만 배를 불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의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경기에 대한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세입·세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금이 계획보다 많이 걷힌 이유는 법인(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소비가 증가하고, 부동산 시장이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소비가 증가하면서 부가가치세가 전년 대비 7조 7000억 원 더 걷혔고, 법인 실적이 개선되면서 법인세는 전년 대비 7조 1000억 원 더 들어왔다. 취업자가 늘고 개인사업자(자영업자) 소득도 늘면서 근로소득세(3조 9000억 원)와 종합소득세(1조 6000억 원) 수입도 전년보다 늘었다. 보고서대로라면 한 마디로 태평성대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했던 경제지표는 물론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경기 인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7%에 머물면서 2년 연속 2%대 저성장에 머물렀다. 성장이 지지부진하면서 실업률은 3.7%로 지난 2010년(3.7%)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특히 청년(15~24세) 실업률은 10.8%를 기록하면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조선과 해운업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자영업자 수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기업의 현재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BSI(기업경기실사지수)는 지난해 12월에 73을 기록했다. BSI는 기준치인 100보다 낮을수록 경기가 나쁘다고 느끼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영업자들은 파산 일보 직전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한국은행 자료를 토대로 자영업자 대출 금액을 추정한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자 대출은 675조 원에 달했다. 나이스평가정보 자료로는 자영업자 대출금액은 이보다 더욱 많아서 지난해 9월 말 현재 742조 원으로 추정된다(‘비즈한국’ 2월 5일 보도 ‘자영업부채 700조가 가계부채 폭탄 뇌관 되나’ 참조).
유일하게 정부 분석과 일치하는 것이 있다는 부동산이 호황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국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 대출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한은은 지난해 6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사상 최저치인 1.25%까지 낮췄다. 그나마 부동산 경기도 정부가 지난해 8월에 주택담보대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은 뒤 급랭하고 있다.
세입·세출보고서에 나타난 정부의 경기 인식은 심지어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7년 경제정책방향’이나 올 1월 18일 첫 번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나왔던 내용과도 정반대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2016년 경기가 내수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였으나 9월 이후 파업과 정국 불안 등으로 모멘텀이 약화됐고, 고용의 질이 악화됐으며, 저소득층 소득 기반이 약화됐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내수 둔화와 고용여건 악화로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9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경기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국회에 호소해 11조 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그런데 세금을 예상보다 10조 원 가까이 거둬들이는 바람에 이러한 추경의 효과는 사실상 제로가 된 상태다”며 “세입·세출 보고서에 드러난 정부의 경기 인식은 지나치게 늘어난 세입을 해명하려다 나온 무리수다. 정부가 세입 예측 실패를 자인하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이러한 해명성 보고서를 내놓으면 결국 국민의 불신만 키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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