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사다. 잘못을 저지른 자식을 대신해 매를 맞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부모에게 잘못을 묻는다면 이는 ‘연좌제’다. 물론 연좌제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제도다. 하지만 그 대상이 유명인일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명문화된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 아니더라도 인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소위 말하는 ‘국민정서법’에 의해 엄청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고등래퍼’에 출연한 장제원 의원 아들 장용준 군(위). 조건만남 의혹으로 자진 하차했다. 아래는 장제원 의원. 사진출처=Mnet ‘고등래퍼’ 방송화면 캡처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등 힙합과 랩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다수 만들었던 Mnet은 고등학생 등 주로 10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래퍼>로 또 한번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서 뛰어난 랩 실력을 보인 장용준 군이 두각을 보였고, 그가 탄핵 정국에서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한 바른정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다수의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방송이 끝나고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는 장용준 군이 쓴 것이라는 SNS 캡처 사진이 나돌았다. 그 안에는 ‘조건만남’을 제시하고, 엄마에 대한 입에 담기 힘든 내용이 포함돼 충격을 줬다.
결국 장용준 군은 제작진에게 자필 편지를 보낸 뒤 <고등래퍼>에서 자진 하차할 뜻을 밝혔다. 장 군은 “저의 잘못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상처와 실망을 안겨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학창시절 철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줬던 친구들과 부모님께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다”며 “심리적인 불안과 불만이 옳지 않은 방식으로 친구들과 부모님께 대한 잘못된 언행으로 표출된 것 같다”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불똥은 장용준 군의 아버지인 장제원 의원으로 번졌다. 장 의원은 이번 사태에 책임지는 의미로 당 대변인과 부산시당위원장 직에서 사퇴했고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수신제가를 하지 못한 저를 반성하겠다. 아들 문제뿐만 아니라 저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도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며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장 군이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유명세를 타면서 아버지의 명성에도 타격을 입힌 것처럼 정치인-연예인 가족들 간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강한 고리가 걸려 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각각 활동 영역은 다르지만,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기반 삼아야 하고 긍정적 이미지를 표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한 쪽이 구설에 오르면 다른 한 쪽 역시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과 직면하곤 한다. 또 다른 의미의 연좌제라 부르는 이유다.
정치인-연예인 가족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아들인 배우 고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딸인 배우 윤세인, 김을동 전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인 배우 송일국 등이 대표적이다. 직계 가족은 아니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인 가수 은지원,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조카인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 등도 있다. 이들 중에는 이런 혈연관계가 뒤늦게 밝혀져 화제를 모은 경우도 적지 않다.
김을동 전 의원과 송일국(위), 문희상 의원과 이하늬. 사진출처=김을동 전 의원 트위터, 문희상 의원 트위터
송일국은 지난해 진행된 총선 때 어머니인 김을동 전 의원의 선거유세에 참여했다. 당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큰 인기를 얻은 터라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송일국은 직계 가족이기 때문에 김 전 의원의 선거를 돕는 것이 선거법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다. 또한 선거법상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송일국의 세쌍둥이 아들은 선거 기간 중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연예인 가족이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했다.
이런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특혜 의혹’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연예 활동 중에도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란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비선 실세로 불렸던 정윤회 씨의 아들이 MBC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특히 공정한 오디션을 통해 하나의 배역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조단역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탄탄한 연기력과 걸맞은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각 캐릭터를 맡게 되지만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연예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며 “유명한 정치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잖은 관심을 받게 되니 그 자체로 후광 효과는 누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연예인들이 정치권과 연결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 지난 1월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이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은 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수상 소감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은 반면, 한국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들에게 ‘색깔론’을 들이밀곤 한다. 이런 경우 연예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연예인들이 정치적인 소신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는 편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정치인 가족을 뒀다는 것이 후광이 되기도 하지만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의미”라며 “정치적인 이유로 그 가족들이 특혜를 받는 것도, 발생하지 않은 특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