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 등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2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바른정당은 전주 대비 2.7% 하락해 정당지지율이 5.6%에 그쳤다. 정의당은 1.4% 상승해 6.8%를 기록했다. 반면, 바른정당과 보수 적통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한국당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나타냈다. 한국당은 전주 대비 2.9% 상승한 14.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조사기관 리얼미터. 총응답자 전국 성인 2511명. 응답율 8.0%. 표집오차 95% 신뢰수준 ±2.0%p. 조사기간 2017년 2월 6일~10일. 조사방법 유무선 자동응답. 이번 조사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바른정당 내부에선 위기감이 역력하다. 바른정당은 창당 10여 일 만인 지난 2월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끝장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에는 소속 의원들은 물론 원외위원장, 대선주자들까지 모두 참석해 위기탈출 해법을 모색했다. 끝장토론 끝에 바른정당은 탄핵심판이 기각될 경우 모든 의원들이 총사퇴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의원직 총사퇴까지 결의한 것은 현 상황에 대한 바른정당의 위기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작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도출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바른정당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위기의 원인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헌재) 탄핵심판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가 결집하고 있는 가운데 바른정당은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바른정당은 각종 현안에서 한국당과 대동소이하거나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우리 당은 현재 샌드위치 신세”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18세 선거연령 인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야권과 공조가 가능했던 법안마저 당내 반발로 무산되면서 정체성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는 4월에 치러진 재보궐 선거와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걱정하는 당 관계자들이 많다. 바른정당의 한 관계자는 “보수단일화를 안할 거면 국민의당과의 연대에라도 속도를 내야 하는데 지지부진해 재보궐 출마자들이 답답해하고 있다”면서 “국회의원들이야 총선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느긋하겠지만 재보궐 출마자들은 초조해하고 있다. 재보궐 선거에서 바른정당이 박살나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으면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바른정당 소속 한 지방의회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장 재보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당협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지역구가 많다”면서 “선거에서 이기려면 당협 조직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대로라면 바른정당 후보들이 선거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당으로의 복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 복당한다고 하면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인데 복당을 결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속으로 바른정당 합류를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속내를 털어놓은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은 심각한 자금난도 겪고 있다. 바른정당은 창당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초재선은 500만 원 이상, 3선 이상 국회의원과 현직 광역단체장은 1000만 원 이상 특별 당비를 거뒀다. 의원들이 갹출한 창당 기금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급한 보조금 15억 5800만 원을 더해도 예산은 빠듯하기만 하다.
대선을 앞두고 당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자금난 때문에 이를 만들어도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당이 운영하는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경우 전문 여론조사 기관보다 더 정확한 여론조사 결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한 여론조사 데이터가 있다면 선거 전략을 짜는데 아주 유리하지만 바른정당은 이 같은 싱크탱크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의정활동 과정에서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경우 경기도의회 내 바른정당이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하면서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지원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또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레임덕 현상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이 마지막 반전카드로 기대하고 있는 것은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지지도가 낮다고 걱정하지 말라. 헌재 결정이 나면 세상이 뒤집히듯 바뀔 것이고 그때 대박을 터뜨리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나면 한국당은 자멸하고, 구심점을 잃은 보수층이 바른정당으로 옮겨올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탄핵 인용 결정이 난다고 해도 보수 지지층이 바른정당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층이 더욱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한국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않고 탄핵 인용 결정만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