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증권업계가 추산한 금호타이어 인수가는 약 1조 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42.01%가 인수 대상이다. 2010년 금융위기 여파로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긴 박 회장은 7년 만에 ‘금의환향’을 노리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며 “사전 접촉한 FI(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1조 원을 확보했으며, SI(전략적 투자자)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인수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FI가 누군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어렵다”며 FI에 대해선 일절 함구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박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일부 대기업 혹은 사돈기업 오너가 투자 후보로 거론되지만 투자설에 휩싸인 기업들은 부인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담보 여력이 없는 박 회장에게 최대 1조 원을 빌려줘야 하는데 자칫 계약 조건에 따라 배임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앞서 그룹 재건을 위해 그룹 옛 지주사인 금호산업을 인수하면서 7228억 원을 쏟아 부었다. 당시 차입 등으로 거액을 소진한 데다 사재마저 바닥을 드러내 추가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금호타이어 인수에는 채권단 약정에 따라 계열사 자금 조달과 컨소시엄 구성이 금지돼 있다. 이에 따라 박 회장은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재원을 개인 자격으로 마련해야 한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박 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하고, 이 SPC를 통해 FI와 SI를 끌어들여 금호타이어 인수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이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인수기업의 ‘주식’뿐이다. 인수할 금호타이어의 지분 42.01%를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해야 하는데 이 지분의 시가총액은 5300억~5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결국 박 회장이 사들일 주식의 100%를 담보로 제공해도 1조 원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일요신문 DB.
더욱이 금호타이어 지분의 시가총액은 현재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장문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2월 10일자 ‘기업브리프’에서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를 추진할 시 주가가 단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로 ▲자금 출처 불명확 ▲계열사 재무리스크 상승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조달금리 상승 ▲원재료 업체에 대한 협상력 악화로 원료 구매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우여곡절 끝에 금호타이어 인수가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높아진 차입 부담은 회사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차입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로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일부 주주들은 벌써 각 언론에 보낸 호소문 등을 통해 박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를 반대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금호타이어지회(금호타이어 노조)는 “조합원들의 고용 보장이 우선”이라면서도 “조만간 인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금호타이어 내부에서도 이번 인수와 관련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전략경영본부 사장과 언론사 대표 A 씨가 회동한 사실을 귀띔하면서 “(박 사장이) 인수와 관련 (A 씨에게) 우려하는 심경을 내비쳤다”고 말했다. 박 사장과 A 씨는 대학 동문으로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사석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 사장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앞의 재계 관계자는 “이번 금호타이어 인수를 앞두고 박 사장이 일부 우려를 가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으로부터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이 통보됐던 지난해 11월 박 회장의 부인 이경열 씨와 딸 박세진 씨는 각각 그룹 지주사인 금호홀딩스 지분 2.8%, 1.4%를 매입했다. 이는 경영권 분쟁을 우려해 여성의 지분 매입을 금기시해오던 금호가(家)의 전통과 배치되는 것이라 여러 추측을 낳았다.
또 같은 해 11월 당시 박 회장의 지분(26.1%)은 0.6%가 는 반면 박 사장의 지분은 19.9%로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의 지분이 증가할 동안 박 사장 지분은 변화가 없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두 여성이) 개인 자격으로 지분을 취득한 것일 뿐 경영 참여와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중반부터 경영수업을 받으며 그룹 내 입지를 다져온 박 사장으로서는 금기가 깨진 것이 다소 불만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동생 박 씨의 남편 최성욱 김앤장 변호사는 이번 금호타이어 인수와 관련해 법률자문을 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금호타이어 인수가 성사된다면 ‘처남’과 ‘여동생’의 발언력이 강화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박 씨와 김 변호사 모두 그룹 경영과 무관하며 법률자문을 해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는 금호타이어 인수 법률자문을 김앤장과 세종에 맡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호타이어 우선협상대상자인 중국 자본 더블스타는 이르면 이달 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 회장은 더블스타가 써낸 가격보다 단돈 1원이라도 높은 가격을 써내면 금호타이어를 되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룹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조심스레 ‘무리한 인수 아니냐’는 말이 새어나오면서 박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성공적으로 인수하고 옛 명성을 되찾을지 아니면 또 다시 ‘승자의 저주’에 빠질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