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지난 2015년 하반기 부동산개발회사 D 사 대표 문 아무개 씨(여·56)를 소개 받았다. 소일거리가 없는 A 씨에게 문 씨는 곧 친한 친구가 됐다. 문 씨는 A 씨와 친밀해지자 투자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문 씨는 “조금 있으면 값이 오를 좋은 땅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주변 땅인데 근린생활 상업지가 되고 전철도 들어온다. 집은 물론이고 가든을 지을 수 있게 허가도 내놨다. 곧 분양사무실도 들어선다”며 “수억 원짜리 땅이다. 3.3㎡(약 1평) 당 230만 원씩 팔고 있는데 너에게는 특별히 3.3㎡ 당 100만 원에 주겠다”고 A 씨에게 말했다.
A 씨는 문 씨를 쉽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살갑게 따르는 문 씨에게 곧 설득당했다. 결국 A 씨는 2015년 말 오금동 땅 330㎡(약 100평)를 3.3㎡ 당 100만 원, 총 1억 원에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들에게 줄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핑크 빛 꿈도 꿨다. “수억 원으로 시세가 오를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는 문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문제는 곧 터졌다. 계약을 체결한 뒤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자 이 땅은 D 사의 소유가 아니었다. 게다가 문 씨는 D 사의 대표가 아니라 임직원에 불과했다. A 씨는 다급한 마음에 이 내용을 문제삼자 문 씨는 “D 사는 원래 기획부동산 회사다. 이 토지를 매입한 뒤에 지분으로 쪼개서 여러 사람들에게 팔아서 이윤을 남길 계획”이라며 “조금만 기다리면 등기를 이전해주겠다”고 A 씨를 안심시켰다. 그로부터 1년이 거의 다 된 2016년 8월에야 D 사는 이 땅을 구매했다.
문 씨는 A 씨에게 또 다시 돈을 요구했다. 문씨는 “토지 이전 등기하는데 담보 등이 필요하니 1억 원만 꿔달라. 내가 이 땅 반 값에 줬으니 선심 써라. 3개월만 쓰고 이자도 붙여서 돌려주겠다”며 A 씨를 설득했다. A 씨는 부동산 계약 한 달 만에 자신의 소유 아파트를 담보 잡아 1억 원을 대출받은 뒤 문 씨에게 돈을 입금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A 씨는 부동산 등기 이전은 물론 돈도 돌려주지 않았다. 문 씨는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A 씨에게 “법무사를 불러서 담보설정 절차를 진행한다”는 등의 거짓말을 반복하며 변명으로 급급했다. A 씨는 결국 D 사 대표 김 씨와 문 씨를 지난해 11월쯤 서울중앙지방검찰청를 고소했다. 사건은 곧 수서경찰서로 이관됐다.
현재 고소인은 총 4명으로 피해액은 5억 원을 넘어섰다. 고소하지 않은 투자자는 현재까지 22명으로 확인됐다. 22명이 투자한 13억 원도 피해액으로 잡힐 경우 피해액은 총 20억 원에 육박한다. 투자자들의 평균 나이는 58세다. A 씨는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아직까지 사기라는 사실을 인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투자자들이 이 사건을 사기로 인지하기 어려운 이유를 D 사가 이 땅이 고위 인맥과 연관이 깊다고 투자자를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D 사가 ‘정치인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자주했다”며 “D 사는 ‘이 땅 실소유자가 18대 국회의원이고 전북의 한 도시 시장의 아들도 관련돼 있다. 개발제한 문제도 곧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실제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이런 A 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피해자 B 씨는 ”내가 투자할 당시에는 총 3명과 투자를 이야기했다. 문 씨와 D 사의 김 아무개 대표(52), 그리고 전북 한 도시의 시장 아들이라는 김 아무개 이사(43)까지 날 설득하고 나섰다. 김 대표와 김 이사는 사촌 사이로 알고 있다”며 “국회의원이 실소유주고 시장 아들이 설득하는 판을 누가 의심하겠냐. 안 속을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취재 결과 토지 3만 3724㎡(약 1만 219평)의 원 소유주는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C 씨로 확인됐다. C 전 의원은 이 땅을 지난 1990년 아들 2명에게 증여했다. 2012년 3월 16일 이 땅은 12개로 쪼개졌는데 D 사는 12개 땅 가운데 고도가 가장 높은 2개 땅을 구매했다. 문제는 D 사의 구매시기였다. D 사는 2015년부터 자신의 소유처럼 땅을 판매해왔지만 구매는 지난해 8월 19일에서야 이뤄졌다.
오금동 토지 전경.
문 씨는 “이미 C 전 의원과 12개 땅을 다 사기로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투자를 받았다. 위임장도 받아 놨었다. 매매 시기가 늦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며 “토지 12개 모두 구매해서 재판매하려고 생각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2개만 우선 사고 지분으로 투자를 받은 뒤 하나씩 차례대로 살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 전 의원은 문 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씨의 말은 거짓이다. 그런 적 없다. 대리인을 거쳐 ‘이 땅을 꼭 사고 싶으니 조금이라도 팔라’는 문 씨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12개 땅 가운데 가장 안 좋은 땅 2개를 내줬을 뿐”이라며 “전체 땅을 넘긴 적도 없고 이 땅이 위치가 좋아 다 팔 생각조차 없다”고 문 씨의 말을 부인했다.
시장의 아들이라던 김 이사는 지자체 시장의 아들이 아닌 그 지역의 전직 이장 아들로 확인됐다. D 사 관계자들을 통해 이름이 언급됐던 지자체 시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이사를 알긴 안다. 내 아들은 아니고 예전 우리 지역에서 이장을 했던 분의 아들”이라고 했다. 김 이사의 부친 역시 “김 이사가 내 아들이며 D 사의 김 대표와는 사촌 사이”라고 전했다.
이 땅의 공시지가는 3.3㎡당 현재 7만 원선이다. 일명 그린벨트라 불리는 자연녹지지역으로 분류된다. 북한산 어귀에 위치해 개발이 금지된 공익용 산지다. 게다가 근처의 군사시설 탓에 제한보호구역으로 묶여있는 상태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는 현상을 막으려 과밀억제권역까지 지정돼 관련법 3개가 모두 개정돼야만 그나마 개발이 가능한 땅이다. C 전 의원은 이 땅을 3.3㎡당 약 50만 원에 D 사에 넘겼다고 알려졌는데 D 사는 이 땅을 이제까지 3.3㎡당 평균 약 193만 원에 판매해 약 9억 원을 남겼다.
문 씨와 김 대표는 끝까지 “우리는 기획부동산업자일 뿐 사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사기 전과에 대해서는 “여주에서 부동산 하나를 기획할 때 과장 광고 등 사기 혐의로 지난 2010년에 징역을 산 적 있지만 결국 내 말이 맞더라”며 “과장 광고라고 검찰이 판단했던 땅에 내 말처럼 지하철 들어서고 아파트 부지랑 상업용 부지가 들어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부동산 전문가는 문제의 토지에 대해 “개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 부근에서 개발될 부지는 이미 다 개발됐다. 이 녹지까지 개발하면 환경단체가 들고 일어선다”며 “명백한 사기다. 일단 1인당 10~20평으로 지분 분할을 했던데 이 필지는 이렇게 작게는 분할 자체가 안 된다.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 특별법 상 60평 이하로는 쪼갤 수도 없다. 무슨 수로 땅을 지분에 따라 분할받을 것인가. 미래 개발 가능 여부를 떠나 애초에 분할 계산 방식부터 사기”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