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2일 부산에 있는 한 레미콘공장에 차량이 멈춰서 있다. 부산과 경남지역의 레미콘공장이 11일부터 일제히 가동을 중단했다. 부산레미콘공업협동조합은 “남해 앞바다에서 건설 골재용 모래 채취가 중단된 이후 모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나흘간 이 지역 50여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이들 지역에 모래를 60% 이상 공급하는 남해EEZ(배타적 경제수역) 내 골재채취 허가 기간이 종료되면서 올해 1월 16부터 이 지역으로부터 나오는 모래 채취가 중단됐다. 이유는 남해EEZ의 골재(모래)채취 기간 만료를 앞두고 허가기관인 국토교통부가 협의대상 기관인 해양수산부와의 협의과정에서 어민단체들의 반대로 인해 원활한 협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해EEZ 골재채취 중단으로 인해 동남권 모래 가격이 최근 급등했다. 남해EEZ에서 채취한 모래는 ㎥당 가격이 1만 3000~1만 8000원에 공급됐으나 1월 15일 이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래가 공급 중단되면서 부족한 모래를 보충하기 위해 원거리인 서해EEZ(전북 군산 90㎞)에서 부산 등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래 가격이 2만 5000~3만 2000원/㎥으로 거의 두 배까지 뛰었다. 이마저도 운반거리 등의 문제로 3일에 한 번밖에 공급되지 않아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
모래 공급 부족으로 골재업체의 영업이 중단되고 남해EEZ 모래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동남권 레미콘 공장이 2월 11일부터 생산을 중단했다. 이 지역 130여 개 레미콘 공장 중에 54%인 70여 개 공장이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부산·울산·경남 지역 내의 공공·민간 건설현장이 콘크리트타설 작업을 다른 공종으로 대체해 진행하거나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공종을 바꿔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모래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경우 부산신항 등 대형 국책 사업을 포함한 이 지역 대부분의 건설현장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에 이르게 될 지경이다.
남해EEZ 골재채취 중단으로 골재채취선 근로자가 무기한 휴업상태에 들어가고 레미콘 공장 가동이 멈춰 레미콘 운반 건당 임금을 받는 레미콘 기사들의 소득도 줄어들게 된다. 또 건설현장 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건설현장의 취약계층인 일용근로자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피해는 산업현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 등 해당지역 아파트 등 민간공사의 준공기일이 늦어져 건설업체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분양 받은 일반국민은 입주가 지연돼 이사 날짜 문제 등 주거 문제가 발생하며 지역경제 전체가 도탄에 빠지게 될 수 있다”면서 “결국 연관된 산업과 종사 근로자, 국민 경제까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고 금액은 추산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골재채취의 장기화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해양환경관리법 등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지역 어민들의 공람 및 공청회를 거치면서 어민들을 설득했어야 했다”며 “해양수산부는 국토교통부가 어민들과 해양수산부의 요구사항을 수용했음에도 법적 절차가 지난 후 제기된 수협 단체의 민원 때문에 후속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양 부처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중앙기관의 행정을 지휘·감독하고 정책을 조정하는 국무조정실이 나서서 조정을 해야 한다”며 “계절적으로 성수기에 접어드는 3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지기 전에 정부와 국회는 합심해 어민과 건설업자 갈등을 해소시키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남권 건설현장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국가 경제로의 사태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한국골재협회는 남해EEZ의 골재채취 허가를 우선 승인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후 어민의 피해조사, 보상대책, 대체 골재원 등을 마련할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정부, 국회 등에 제출할 계획이다.
박창식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