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는 1986년부터 시립합창단을 시작으로 소년소녀합창단과 교향악단, 국악단을 추가해 시립예술단을 운영해 왔다. 국악단은 2005년 신설됐다. 현재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인 김 아무개 씨와 단원 66명이 국악단 소속이다.
별탈 없이 운영되던 국악단에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건 2012년 1월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근무하던 김 씨가 국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부터다. 성희롱과 성추행 피해를 받았다는 일부 단원은 “2012년 취임부터 2015년 봄까지 김 감독의 지속적인 성폭력으로 고통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한 피해 단원에 따르면 김 감독은 2012년 3월 “난 해외를 자주 나간다. 여행객과 어울리며 유스호스텔에서 한 방을 쓰는데 말을 잘하면 외국 여자와 잘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있냐?”고 물으며 대답을 못하는 단원에게 “내가 가르쳐줄게 언제 한번 같이 가자”고 말했다. “아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냐?”며 되묻는 단원에게 김 감독은 “아내 몰래 해야지. 내가 잘해 줄 테니 같이 가자”고 수차례 권유했다.
또 다른 피해 단원은 지난 2014년 6월 18일 김 감독과 함께 들렀던 한 모임 뒤 식사 자리에서 “남편과 같이 가면 재미 없지? 나랑 가면 재미있게 해주겠다. 나랑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을 받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몸에 손을 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또 다른 피해 단원은 “김 감독은 공연 뒤 회식 때마다 일부 단원을 계속 껴안기 바빴다”며 “틈만 나면 마주치는 단원의 옆구리나 복부를 손가락으로 찔러댔다”고 했다.
피해 단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2015년 12월 20일 국민권익위원회와 성남시청에 진정서를 냈다. 권익위의 감사 권고를 받은 성남시는 2015년 12월 30일 오후 5시쯤 피해 단원의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감사로 끝이었다. 해마다 12월에 감독직 재계약을 했던 성남시는 2개월 뒤인 2016년 2월까지 두 달간 감사를 목적으로 감독직 계약을 보류했지만 2월에 결국 재계약을 맺었다.
성남시는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조정조차 시도하지 않은 채 김 감독의 일방적인 주장만 관철하며 사건을 방관해왔다. 한 피해단원은 “2015년 12월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으나 성남시 내부적으로 조용히 넘기려고만 할 뿐 계속된 조사 요청을 쉬쉬하며 묵과했다”고 주장했다. 성남시는 김 감독과 지난해 12월 또 다시 재계약을 체결했다.
성남시는 이에 대해 재계약이 이뤄진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성남시 국악단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재계약에는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김 감독이 검찰 조사 뒤 찾아와 ‘피해를 주장하는 단원이 검찰 조사에서 있지도 않았던 일을 가지고 악의적으로 제보해 국악단 질서를 문란케 하고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반성 발언을 했다. 수사 기록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2015년 12월 제기된 성폭력 관련 민원 제기에 대해 지난해 1월 명예훼손 혐의로 피해 단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고소한 바 있다. 김 감독은 성남시와 재계약이 이뤄지자 지난해 3월 소를 취하했다.
국악단 관계자는 이어 “김 감독 등 국악단 수뇌부가 지난해 ‘국악단에서 앞으로 시끄러운 일 있었던 부분을 반성한다. 앞으로 국악단 위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까지 써왔다. 권 아무개 당시 교육문화환경국장이 이 합의서를 바탕으로 이재명 시장에게 재계약 결재 올려서 승인 받았다. 결국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 지휘자와 악장의 알력 다툼에 일어난 내부 갈등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합의서조차 피해 단원들에게 직접 받은 문서가 아니었다. 합의서는 피해 단원의 선임인 국악단 간부의 손에 작성됐다. 결국 합의는 피해자가 직접 한 게 아니고 악단 간부가 대신 한 셈이다. 당시 피해 단원들은 “5월에 스스로 정리하겠다는 김 감독의 말만 믿고 합의서 작성 자체에는 동의해 줬다”고 했다. 합의서가 작성됐다는 이유로 성남시는 피해 단원들의 요구사항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악단 관계자와 김 감독의 주장은 서로 엇갈렸다. 김 감독은 “국악단 관계자에게 그런 말 한 적 없다. 검찰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도 ‘피해 단원이 반성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검찰 조서에 따르면 피해 단원은 ‘반성 발언’을 한 사실이 없었다. 피해 단원 역시 ”검찰에서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오히려 검찰 쪽에서는 김 감독이 무고로 우리를 고소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피해 단원의 검찰 조서 일부분
감사로 재계약이 미뤄진 김 감독은 성남시와 피해 단원 사이에서 말을 바꿔 재계약을 받아낸 사실도 밝혀졌다. 김 감독은 사건이 불거진 직후 국악단 간부급에게 ”자식이 결혼하는 5월까지만 기다려주면 내가 스스로 정리하겠다“고 말해 일시적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성남시에는 ”아무 문제 없다. 나는 무고하다“며 2월 재계약을 이뤄냈다. 5월에도 김 감독은 아무런 정리를 하지 않았다. 한 피해 단원은 “5월에 그만둔다는 소리를 듣고 2개월만 참자는 심정으로 지냈다. 그런데 그냥 계속 근무하고 올해 또 재계약이 됐다”며 “마주칠 때마다 몸서리가 난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은 이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느냐는 질문에 “해당 부서에 문의하면 된다”고 짤막이 전해왔다. 해당 부서는 ”감독은 이재명 시장이 직접 임용한다. 이 시장의 재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니 이재명 시장도 결심해서 재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감독은 성폭력 사태와 관련해 철저하게 부인하며 내부적인 알력 다툼으로 파생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성폭력이라니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시 안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외부에서만 내가 파렴치한으로 몰렸다”며 “재계약 시점만 되면 알력 다툼이 많아 날 음해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번 사건도 이와 같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고 일렀다.
이와 관련 정치권 관계자는 “성폭력은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 한쪽의 주장만 들었다가는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일단 이런 제보나 민원이 제기되면 서둘러 사태를 파악하고 어쨌든 마무리를 지어 일단락해야 하는데 성남시는 이 문제를 질질 끌며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지휘자는 최순실 라인? 성희롱 의혹이 휩싸인 성남시립예술단 국악단 김 감독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동서지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수석은 차은택의 외삼촌으로 일부 국악단 관계자들 사이에선 ”최순실의 그림자가 여기까지 드리운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김상률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다. 2000년 3월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2014년 11월 대통령비서실에 발탁돼 2년 동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김 전 수석은 2014년 8월 조카인 차은택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위원이 되자마자 100일도 채 안 돼 청와대에 입성해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그 어떤 혜택도 받은 적 없다. 명백한 음해”라고 말했다. [최] |
[서종대 감정원장 성희롱 논란] ”넌 왕서방이 좋아할 스타일“…감사는 감감 성남시 사건이 공개되기에 앞서 공공기관의 성희롱이 세간을 뒤덮었다. 지난 7일에는 서종대 한국감정원장의 여직원 상습 성희롱 사실과 한국감정원의 원장 성희롱 은폐 시도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감정원 전현직 임직원 등에 따르면 서종대 원장은 지난해 11월 3일 대구 수성구의 한 고깃집에서 한 여직원에게 “넌 피부가 뽀얗고 몸매가 날씬해서 중국 부자가 좋아할 스타일”이라며 ”양놈들은 너 같은 타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들은 여직원은 감사실에 이 사실을 통보한 뒤 사표를 제출했지만 감사실은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언론이 7일 성희롱 사실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자 감정원은 낮은 성의식이 점철된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감정원의 보도자료는 “여직원이 일도 잘하고 용모도 준수해서 국외 연수 때 국외 고위 공무원들이 좋아했다는 의미로 말했다“는 식으로 작성됐다. 이뿐만 아니다. 서 원장은 지난해 7월 여직원 여럿 앞에서 “아프리카에서 예쁜 여자는 지주의 성 노예가 되고, 못생긴 여자는 병사들의 성 노예가 된다”며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할례(여성 생식기를 제거하는 악습)가 남아 있는데 한국 여자들은 이렇게 일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말 케냐 나이로비 출장에서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오입이나 하러 가자”고까지 말한 것으로 전해져 성희롱 3관왕에 올랐다. 감정원의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감정원 측은 “성희롱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제보도 없었다”고 했지만 상세한 취재 내용이 이어지자 “지난해 감사 과정에서 피해 여직원을 거쳐 이 사실을 파악한 바 있다”고 말을 바꾸기까지 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