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연합뉴스
대북라인 역시 ‘매파’들이 힘을 얻으며 강경한 목소리가 주를 이뤘고, 자연스레 남북관계 역시 얼어붙었다. 김정은과의 ‘핫라인’ 자체가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MB 정부 때부터 ‘휴민트’가 상당 부분 무너졌다. 현 정부의 대북 기조 정책과 맞물리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북과 제대로 된 채널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귀띔했다.
현 정부에서 이뤄진 김정남에 대한 접촉은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과 대척점에 서 있는 김정남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해 초부턴 구체적으로 김정남 망명 프로젝트가 가동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해인 2017년 3월을 ‘D-day’로 해서 김정남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국정원 등 공식 대북 라인이 아닌 비선 쪽에서 은밀히 움직였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출신의 핵심 친박 관계자가 주도했던 정황이 포착됐고, 또 참모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중 한 명도 이에 대한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또 다른 친박 전직 의원이 김정남 망명을 위해 직접 중국을 오갔고, 최순실 씨 지인으로도 알려진 50대 여인도 중국에서 이 과정에 개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북 당국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정남 망명이) 공식적으로 추진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박 대통령 비선 쪽에서 그러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역대 정권에서도 정상회담 등을 비선에서 다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차원으로 이해했다. 극도의 보안을 요구하는 일이어서 거의 알려지진 않았지만 김정남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됐다.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제라서 관계자들이 중국을 여러 번 다녀갔다”고 말했다.
MB 정부 때도 김정남 망명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김정남이 한국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등 제3국을 원했고, 또 거액의 ‘몸값’을 요구해 무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대북 당국자는 “김정남이 한국행에 시큰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귀띔했다. MB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한 전직 의원 역시 “김정남 망명을 검토했던 것은 맞지만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데려와야 하냐는 회의적 견해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이뤄진 김정남 망명 프로젝트는 상당한 진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 측과 구체적인 ‘딜’까지 오갔다는 전언이다. 이 과정에 대해 알고 있는 한 친박 원로 인사는 “김정남의 경우 북한 내에서 후원자 역할을 하던 장성택이 2013년 12월 숙청된 이후 망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행을 선호했다고 들었다. 이에 우리 쪽 프로젝트 팀이 김정남을 접촉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어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정남 피살이 망명설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그 의미가 남다른 대목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이후 김정남 망명과 관련된 논의는 ‘올스톱’된 듯하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는 “조금만 더 밀어붙였더라면 목표로 했던 올해 3~4월경 김정남 망명이 성사됐을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긴 하다”면서 “박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있어서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성과를 내고 싶어 했다. 어차피 남북 정상회담이 힘든 상황이라면 김정남 같은 거물급을 망명시키는 것도 그 대안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곱지 않은 견해들이 주를 이룬다. 박 대통령 측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집권 말 김정남 망명을 추진했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신북풍을 일으키기 위해 김정남을 활용하려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 역시 “김정남을 망명시키면 북과의 갈등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당연히 보수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