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전경련 탈퇴 러시가 일어나며 전경련 해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전경련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비공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번 이사회는 2016년 사업의 예산 및 결산, 2017년 사업 계획 등 2월 24일 열릴 예정인 정기총회에 올릴 안건을 의결하는 자리다. 당초 이사회는 회원사들의 불참으로 개최조차 불투명했지만 의결정족수를 채워 파행은 면했다.
이사회에는 대부분 대표이사나 총수가 아닌 대리인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오너 총수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경련 차기 회장에 대해 허창수 회장이 이준용 명예회장을 설득하고 있거나 이 명예회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회장님이 전경련 이사회에 참석하신지도 몰랐다”며 “전경련 지지나 해체 등에 대한 (우리) 입장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전경련의 쇄신이나 구체적 사업계획에 대해 다루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회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쇄신안을 논의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관계자는 “가장 시급한 것은 차기 회장 선임”이라며 “그 전까지는 전경련의 변화 방향이나 나아갈 길에 대해 어떤 결정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요 대기업 총수 중 전경련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허창수 회장이 직접 차기 회장을 섭외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17일 오전 이사회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재계에서는 10대 기업 총수 중에서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전경련이 기업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볼 때 10대 기업 총수 중에서 회장을 맡아야 모양새가 좋다는 생각에서다. 일부에서는 정·재계 인맥이 상당하고 대외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을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경련에 불리하다. 계열사들이 잇달아 전경련에서 탈퇴했거나 탈퇴할 예정인 삼성, SK, LG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차, 롯데, 포스코, 한화 등도 전경련 회장직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허창수 회장이 이미 3연임한 GS에서 차기 회장이 나오기도 힘들며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기업들은 전경련 차기 회장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 그룹 쇄신과 안정이 우선이다”라며 “전경련 회장직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 역시 “회장님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설사 차기 회장을 찾아낸다 해도 전경련의 존립이 확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경련은 매년 기업들로부터 400억~500억 원의 회비를 받고 있다. 회비 중 4대 기업이 내는 것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상당수 회원사가 탈퇴한 상황에서 전경련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벌써 전경련의 조직 슬림화 얘기도 나온다.
현재 전경련 존폐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전경련에 대한 기업의 불만이 컸다”며 “이번 기회에 전경련을 자연스럽게 탈퇴할 수 있어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재계 다른 관계자는 “그래도 기업별로 의견을 모으고 전달하는 창구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총대 멘 경총 목소리 높이는데... 전경련이 위기를 맞자 재계 이목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로 쏠리고 있다. 지난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경총은 “경영계는 충격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경총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우리 대표 기업이니만큼 총수의 경영 공백이 우리 경제에 부담을 미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전경련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경총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과 함께 경제5단체로 불린다. 1970년 한국경영자협의회로 출발한 경총은 주로 노사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전국적 조직의 사용자 대표기구다. 경제5단체는 각자 역할과 활동범위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전경련이 존폐 기로에 놓이자 기업들의 입장을 전할 창구로 경총이 부각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지난해 10월 전경련이 재벌 대기업과 각종 협회를 중심으로 600개 회원을 두고 있어 경제단체로서의 대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초 전경련의 빈 자리를 대한상의가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대한상의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다는 이유에서 전경련을 대신하기에는 힘이 부족할 것이라는 얘기가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경련과 경총은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고 그 중에서도 전경련이 더욱 직접적으로 기업을 대변해왔다”라며 “전경련이 일련의 사태로 업무 공백이 생겨 경총이 나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전경련이 해체될 경우 남은 경제단체 4개가 기존의 전경련 역할을 분담해 맡거나 단체 간 역할 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총 관계자는 “각 단체별로 역할과 하는 일이 다르다”며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할 뿐 다른 경제단체 역할을 대신 짊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