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중소업체의 골프장 강탈 의혹 및 위장계열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관련 소송이 수년 째 지연되는 등 해당 중소업체를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돼 대기업의 ‘갑질’ 소송 논란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은 재벌가의 모럴해저드 논란과 맞물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현대차그룹 경영승계 과정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최근 <일요신문>이 입수한 중소업체 사장 A 씨가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에게 보낸 내용증명 문서에서도 이같은 의혹들이 구구절절 명시돼 있다. 다만, A 씨는 현대엔지니어링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정의선 부회장의 선처로 관련 사건이 빨리 마무리되길 호소하고 있다.
중소업체 대표 A씨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 보낸 내용증명 서류
내용증명에 따르면 A 씨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전신 현대엠코가 위장계열사인 워너관광개발을 끌어들여 부실 분양에 따른 경영악화 등을 통해 자신의 골프장을 강탈당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엠코는 2013년부터 라미드그룹과 강원도 춘천에 소재한 오너스클럽 골프장을 두고 강탈 의혹 등 장기간 갈등을 빚어 왔다. 당시 현대엠코가 추천한 분양대행사 워너씨앤디에 대한 위장계열사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에 지난 2014년 4월 A 씨 회사는 워너관광개발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접수했다. 변론기일 후 조정기일이 3년만인 올해 1월 13일 잡혀 속행됐지만, 1월 25일 조정은 불성립됐다. 이후 원고(A 씨 회사)와 피고인(워너관광개발) 소송대리인간 참고서면이 오가면서 판결선고 기일이 2월 17일로 잡혔으나 또 다시 연기됐다. 대기업의 막후 지원을 받고 있는 피고 측이 원고인 중소업체를 상대로 의도적인 ‘소송 지연’ 작전을 펼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이유다.
A 씨는 조직과 금력을 앞세운 일방적 불평등 계약에 무단히 항의했지만, 힘없는 중소업체 자력으론 무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A 씨는 정의선 부회장에게 “거대 기업의 조직과 금력을 앞세운 횡포라고 인정되지 않도록 헤아려 달라. 부회장님의 선처를 기다리는 방법 외에 달리 살아갈 방도조차 없는 막다른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의 애환을 헤아려 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법무 등)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원고 측의 자료제출 등으로 (A 씨 관련 소송이)연기가 된 것으로 안다. 연기 책임은 원고 측에 있지 않겠나”라며 ‘소송 지연’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위장계열사 논란에 대해선 “당시 공정위가 제기된 각종 의혹들에 대해 조사를 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 측보다 우리가 손해 본 것이 훨씬 많다. 관련 의혹 등이 수년 째 제기되는 것이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춘천시 남산면에 소재한 오너스골프클럽(오너스GC) 운영사인 워너관광개발에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32억 6900만 원의 운영차입금을 추가로 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워너관광개발 등의 기준 감사보고서 등에 나타났다.
하지만 2015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워너관광개발의 재무 상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자산 총계 1276억 원에 부채 총계가 1552억 원으로, 자본 총계(자본금 5000만 원)는 수 년간의 누적결손금에 따라 276억 원이 자본잠식 됐다. 부채 규모도 매년 증가 추세여서 정상적인 회사의 재무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누적결손금 규모가 증가하는 등 적자 난에 시달리는 워너관광개발을 현대엔지니어링이 직접 자금을 지원하며, 운영손실을 메워온 점을 두고 워너관광개발이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위장계열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오너스골프클럽. 사진출처: 오너스골프클럽 홈페이지
재계 관계자와 전문가조차 워너관광개발의 비상식적인 재무 상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공사로 참여했던 현대엔지니어링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골프장 사업운영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차입금에 대한 지급보증까지 서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시각이다. ‘윗선’의 지시 없이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정 부회장의 개입설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을 11.72% 보유하고 있어 현대건설(38.62%)에 이어 2대주주에 올라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4.68%)보다 2배가 훨씬 넘는 지분이다. 현대차그룹 비상장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를 흡수 합병해 통합 법인으로 출범한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당기순이익의 절반이 넘는 1688억 원 가량의 현금을 배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최대주주인 정 부회장이 약 205억 원을 배당받는 등 전체 배당금의 85%인 1490억 원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및 오너 일가에게 돌아갔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 간 합병의 최대 수혜자로 정 부회장이 꼽히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당분간 외형을 더 키워 그룹 승계에 필요한 자금 마련에 활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갑질’ 소송 논란에 이어 위장계열사 의혹까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수백억대 골프장 소송 사건이 정 부회장과 그의 자금줄로 주목받는 현대엔지니어링에게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