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과정에서 최 씨가 고문을 당한 뒤 부상당했다고 주장하자 해당 부위를 촬영한 사진. 팔에 박아둔 철심이 휘어졌고 어금니 일부가 파절됐다.
검사 : 피의자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범행 사실을 자백하지 않았나요.
장성익(가명) : 그것은 제가 고문을 못 이겨서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검사 : 자백한 내용에 대해 맞다고 인정한 것은 사실이지요.
장성익(가명) : 당시는 겁이 나서 무조건 맞다고 인정한 것이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없습니다.
1991년 11월 26일 작성된 장성익 씨(가명)의 2차 검찰진술 조서 일부다. 경찰과 1차 검찰조사에서 범행을 모두 인정하던 장 씨가 돌연 말을 바꿨다. 그는 앞서 자백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 아니며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공범으로 함께 조사를 받은 최현철 씨(가명)도 2차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이제 와서 부인한다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털어놓고 용서를 빌 생각은 없나”라는 검사의 추궁에 “사실대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장 씨와 최 씨는 1990년 1월,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서 데이트를 하던 커플을 납치‧감금하고,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이들은 1991년 11월 8일 공무원 자격을 사칭한다는 의심을 받고 부산 사하경찰서에 임의동행 했다가, 앞서의 엄궁동 살인과 함께 낙동강변에서 저지른 총 19건의 강도 등의 여죄가 밝혀졌다. 두 남자는 열흘 만에 강도‧강간‧살인 등 모두 8가지 혐의를 받고 같은달 18일 검찰에 송치됐다. 이후 1심과 항소심,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21년 뒤인 지난 2013년 가석방돼 세상에 나왔다.
# 허공에 던지는 외침
장 씨와 최 씨는 앞서의 혐의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얘기다. 2차 검찰 조사에 이르러서야 혐의를 부인하고 말을 바꾼 이유도 형사들이 “검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고문)을 겪게 될 거다”라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사기록과 공판 기록을 보면, 이들은 처음 자백을 번복하기 시작한 2차 검찰조사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1992년 3월 17일 열린 1심 공판 기록에는 고문에 대한 최 씨의 진술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그는 당시 어떤 고문을 받았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경찰들은 몸부림치는 저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손목에는 화장지를 두툼하게 감은 뒤 수갑을 채웠습니다. 구석에 있던 쇠파이프를 가지고 와 발목에 묶거나 다리 사이에 끼워 거꾸로 매달았고, 얼굴엔 수건을 덮어 코에 겨자 섞은 물을 부으면서 ‘강도짓 했지, 여자 죽인 적 있지’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팔에 박은 철심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장 씨 역시 최 씨와 같은 진술을 했다. 그는 “경찰은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은 물론,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쇠파이프를 끼운 뒤 발로 밟고 물고문을 했습니다. 모든 고문 과정에는 폭행이 뒤따랐습니다. 소리치며 저항하면 입을 막고 배에 올라타 ‘시인하면 왼손 검지 손가락을 까딱 해라’라고 지시했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남자의 주장은 그저 허공에 던지는 외침일 뿐이었다. 경찰 조사 이후 검찰을 거쳐 재판에 넘겨지는 동안 상처와 멍이 아무는 등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
당시 장 씨와 최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각각 다른 장소에 분리돼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따로 진술했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각각 다른 지방 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분리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문에 대해 함께 말을 맞추거나 꾸며낼 수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항소심부터 엄궁동 2인조 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정황이 뚜렷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찰이 고문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궁동 2인조 경찰, 검찰 수사기록 일부
# 목격자들
그런데 최근 ‘고문’ 주장을 뒷받침할 증언이 나왔다. 무려 26년 만이다. 두 남자가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는 기간 동안 함께 유치장에 있었던 수감자 2명의 증언이다. 이들은 장 씨와 최 씨가 고문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다.
엄궁동 2인조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를 준비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가 이들을 만났다. 박 변호사는 동의를 구해 동영상으로 증언 장면을 전부 촬영했고, 목격자들은 주민번호와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며 “사전에 엄궁동 2인조와 박 변호사 등으로부터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이나 청탁 등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목격자들은 현재 각각 다른 지방에 거주하고 있으며, 서로 일면식도 없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은 작은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일치한다. 목격자들은 1991년 11월 9일부터 18일 사이에 부산 사하경찰서 유치장에 머물렀다. 엄궁동 2인조가 수감됐던 기간과 같다.
당시 최 씨와 장 씨는 유치장에서도 각각 다른 방에 수감됐는데, 목격자 가운데 한 명은 최 씨와 머물렀고 또 다른 한 명은 장 씨와 함께 있었다. 먼저 장 씨와 함께 수감됐던 A 씨는 “아침 일찍 (조사 받으러) 나가서 취침 시간이 지나야 들어오기도 하고, 자정이 넘어서 오기도 했다. 그런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른 수감자들은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유독 장 씨만 그랬다. 밤늦게 돌아오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어 “장 씨는 자는 와중에도 끙끙 앓았다. 어떻게 된 거냐, 어디가 아프냐며 보여달라고 했더니 손목과 발목에 멍이 들어있었고 볼 주위가 부어있었다. 장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명 ‘통닭구이’를 당했더라. 다리를 꼬아서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다 수건을 덮어씌워 물을 붓는 방식이다”라고 덧붙였다.
최 씨와 함께 유치장에 머물렀던 B 씨의 진술도 앞서의 A 씨의 진술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B 씨는 “최 씨는 적게는 하루에 두세 번, 많게는 네다섯 번 시간제한 없이 조사를 받으러 다녔다. 나를 비롯해 다른 수감자들이 조사 받을 때 그런 경우는 없었다. 일과 시간이 지난 저녁 늦게도 나가고, 다들 잘 때 나가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보통 수감자들은 조사 받고 들어오면 본인들의 혐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논을 하기도 했는데, 최 씨는 그런 말 자체를 못했다. 나갈 때는 멀쩡한데 들어와서는 정신을 못 차렸다.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누워서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옷이 다 젖어 있었다. 조사 받는데 ‘옷이 왜 젖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면서 “최 씨의 손목과 발목이 부어있었다. 특히 최 씨 팔에 철심 박은 자국이 있었는데, 그 부위가 심하게 부어있었다. 만져보니 팔속에서 철심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강조했다.
A 씨와 B 씨의 증언은 앞서의 엄궁동 2인조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증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없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변호사는 “과거사 재심도 이러한 증언을 토대로 진실이 밝혀졌다. 엄궁동 사건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변호사는 A 씨, B 씨의 증언 동영상 촬영 과정에서 “이 증언은 이번 재심청구에서 증거로 제출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 ‘옳은 일’이기 때문에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삼례 3인조와 약촌 오거리 사건에서도 경찰의 폭행, 고문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엄궁동 2인조 사건과 같이 제3자가 나서 증언을 한 경우는 없다.
입증이 거의 불가능했던 고문에 대한 증언을 얻기까지 A 씨와 B 씨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처음 박 변호사가 A 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그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라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그는 수차례 전화를 거는 박 변호사의 번호 수신을 차단했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제가 도울 수 없는 것은 그 상대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B 씨의 경우엔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살인 사건에 대한 증언인 데다, 혹시나 B 씨에게 문제가 생길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박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이들에게 용기를 내달라고 했다. 전화와 문자를 남기면서도 집 앞까지 찾아가 A 씨와 B 씨, 가족들을 설득했다.
A 씨는 증언 동영상에서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박 변호사와 그가 맡은 사건들이 해결되는 과정을 보니까 이 사건도 ‘가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B 씨는 “엄궁동 2인조는 일면식도 없던 사이로 당시 유치장에서 처음 만났을 뿐이다. 거짓말이나 유리한 증언, 불리한 증언을 할 이유도 없다. 내 일도 아닌데. 그래도 잘못된 건 밝혀야 한다.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젊은 청춘을 거기서 다 보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A 씨와 B 씨에게 각각 “재심이 열리면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박 변호사를 만난 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기꺼이. 당연히 나가겠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