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월 발효 예정인 ‘선박 평형수 관리협약’은 해운업계엔 악재가, 조선업계엔 호재가 된다. 현대빅토리호의 항구 접안 장면. 사진=현대상선 홈페이지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약 10만 톤의 평형수가 필요하며, 세계 각국을 이동하는 연간 평형수는 약 100억 톤으로 추산된다. IMO는 7000여 종의 해양 생물이 평형수를 통해 대양을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오대호의 얼룩무늬담치가 호수의 수도관을 막는 등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 것도 평형수 문제다.
이에 IMO는 대양을 넘나드는 선박에 평형수를 거르는 처리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협약을 마련했다. 발효되는 즉시 모든 신규 선박에 적용되며, 기존 선박들은 5년 안에 처리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세계적인 불황 여파로 어느 때보다도 깊은 부진에 빠진 해운업계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평형수 처리설비의 가격은 대당 최소 1억 원 안팎이며, 설비 이용 등을 고려하면 최대 수십 억 원이 소요된다. 운임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해운업계로서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설치비용은 물론 선주가 부담해야 하지만, 선주들이 이를 빌미로 용선료 인상에 나설 수 있다. 용선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처리 설비 비용을 대신 부담해주길 원하는 등 해운사에 불리한 계약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규제로 용선료는 물론 운임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며 “비용 부담을 느낀 선주들이 노후 선박을 폐선하면 해운사와 화주들의 비용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2015년 규제를 미리 도입한 미국의 경우 선박 공급이 줄어들면서 일부 항로의 용선료가 올랐다. 가까운 바다를 다니는 근해선사의 경우도 선박의 크기가 작고 설비 탑재 공간이 부족해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정부는 설비의 공동 구매를 유도하도록 1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설치 비용을 저리로 대출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다만 용선료나 운임 인상을 제어할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관리협약은 연료의 유황 농도 억제 등의 환경 규제도 담고 있어 연료비 인상도 예상된다.
반면 이런 조치는 국내 조선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선박 건조비용을 올릴 수 있는 데다 한국은 세계 평형수 처리시장을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서다. IMO가 승인한 41개의 평형수 처리 기술 중 16개를 국내 기업들이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세계 평형수 관련 설비 시장을 40조 원 규모로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등 후발국가들이 거센 가운데 서둘러 협약이 발효된 점은 국내 업계에 긍정적”이라며 “다만 선박 선진국의 준비율이 20%에 불과한 등 아직 준비가 안 된 나라들이 많아 7월 IMO 총회에서 협약 내용과 발효 일정이 일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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