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21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임준선 기자
롯데그룹이 지난 21일 내놓은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기존에 운영되던 정책본부는 크게 ‘경영혁신실’과 ‘컴플라이언스위원회(준법경영위원회)’로 나뉜다. 구체적으로는 7실·17팀·20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됐던 정책본부가 가치경영팀·재무혁신팀·커뮤니케이션팀·HR혁신팀, 이 4개 팀을 전담하는 경영혁신실과 준법경영·법무·감사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컴플라이언스위원회로 재편됐다. 인원은 기존의 70% 수준인 140여 명으로 축소된다.
롯데는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차기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할 BU(Business Unit)장도 선임했다. BU는 유통·화학·식품·호텔 및 기타 이상 4개 분야로 나뉘고 각 부문 계열사들 간 소통과 의사결정 조율을 통해 공동의 전략을 수립하는 중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예컨대 식품BU의 경우 롯데리아나 롯데칠성 등 식품 계열사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식이다. 4개 BU장은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 사장이 맡는다. 식품BU장은 이재혁 롯데칠성음료 사장이, 화학BU장은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맡으며 나머지 BU장은 2월 23일 이후 정해진다.
그간 롯데그룹의 인사는 신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고 고 이인원 부회장이 구체적으로 실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이 인사 전권을 맡아 진행한 이번 조직개편에서 그룹의 2인자였던 이인원 부회장이 떠난 자리를 누가 메울지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 인사로 정책본부 운영실장을 맡던 황각규 사장이 경영혁신실장에 오르면서 사실상 고 이 전 부회장 자리를 메웠다. 황 사장과 2인자 자리를 다투던 소진세 사장은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소 사장이 맡는 사회공헌위원회는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해 고민하고 신 회장에게 협력하는 일을 할 예정이다. 소 사장이 맡아오던 대관업무는 황 사장이 이끄는 경영혁신실의 커뮤니케이션실에서 담당한다. 소 사장의 입지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비친다. 롯데그룹에 정통한 한 인사는 “소 사장이 천천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소 사장이 황 사장에게 밀려났지만 그룹이 예우 차원에서 사회공헌위원회를 맡긴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영향으로 롯데그룹이 인사를 미뤄오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연장발표 1주일 전에 전격적으로 조직개편안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필이면 왜, 이때냐는 것이다. 특검 수사가 종료된 것도 아니고, 수사 연장이 결정된 것도 아닌 이 시점에 롯데가 그동안 기약없이 미뤄오던 조직개편을 전격적으로 단행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조직개편이 미뤄져 투자·채용 등 기업경영이 불안정했다”며 “더는 미룰 수 없어 단행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롯데의 조직개편안에 대해 “롯데가 쇄신안을 통해 그룹의 컨트롤타워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오픈한 것은 준법경영을 위한 출발로 볼 수 있어 이 점이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그룹의 핵심 본부 역할을 하는 경영혁신실과 준법경영위원회가 신 회장 직속으로 설치되고 각 계열사에 막강한 힘을 미칠 수 있어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를 띠는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또 “국내 기업의 컨트롤타워는 계열사에 막강한 권한을 가지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롯데그룹도 각 계열사 이사회가 독립성을 가질 때 그룹 쇄신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국민에 약속한 그룹쇄신안 중 조직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조직개편안이 당초 약속했던 준법경영에 절반의 성공만 거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신 회장은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한 그룹 쇄신안 이행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 그룹 경영권과 친정체제를 공고히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21일 롯데쇼핑 지분을 매각해 4000억 원가량의 현금을 마련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신 전 부회장이 롯데쇼핑 지분 매각 자금을 어디에 쓸지 관심을 모은다. 신 전 부회장 측 관계자는 “주식 매각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세금 대납을 위한 차입금 상환과 신규사업 투자를 검토 중”이라며 “신동빈 회장과 다투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빼앗긴 ‘신 총괄회장의 롯데’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전 부회장은 광윤사 지분 50%+1주 보유하고 있는 지배주주기 때문에 의결권에서 앞선 만큼 롯데그룹 경영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신 총괄회장의 증여세 2100억여 원을 대납했다. 재계는 이를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대리인 역할을 강조하고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외에도 신 회장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특검이 수사를 연장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을 넘겨받아 기업 수사에 박차를 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검찰이 특검에서 국정농단 사건을 넘겨받으면 기업 수사를 가장 먼저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은 내부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신 회장은 또 향후 5년간 40조 원 투자, 7만 명 신규 채용, 3년에 걸쳐 1만 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국민들과 한 약속도 실행해야 한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