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씨는 “그날 당장 유튜브 측에 영상을 음란물로 신고하긴 했지만 노골적인 포르노가 아니라면 제재하지 않는다고 들어서 별로 기대하진 않고 있다”라며 “아이들끼리 선정적인 영상을 돌려보는 일이 잦아 꾸짖고 있기는 하지만 사이트 내에 제대로 된 지침이 마련되지 않아서 늘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한 이야기를 제보받아 영상으로 풀어내는 유튜브 채널.
국내에서 1인 미디어 업계 1위로 손꼽히던 아프리카TV가 크고 작은 일들로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가 때늦은 호황을 맞았다. 기존 국내에서의 유튜브 이용이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나 방송 프로그램 등 비교적 일반적인 동영상 감상에 그쳤다면 이제는 채널 운영자가 직접 제작한 영상 콘텐츠가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TV 등 타 1인 미디어 업계에서 거대 규모의 청소년 팬덤을 거느린 BJ(Broadcasting Jockey·방송진행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유튜브에 채널을 열면서 10대 시청자들의 유입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 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6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26.7%가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1인 방송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꼴로 1인 방송을 시청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범람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유튜브 채널이 별다른 제재 없이 전체 공개로 서비스되면서 어린 학생들이 선정적인 방송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선정적인 방송으로 언론의 집단포격을 받아왔던 아프리카TV가 나름대로의 규제로 BJ들을 잣대질하는 과정이라도 했다면, 유튜브는 가이드라인을 과도하게 벗어나는 영상만 아니라면 크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음란, 폭력적인 영상에 대해 자체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노골적인’이라는 제한이 붙는다. 대놓고 19금을 표방하는 포르노 영상은 업로드 자체가 제한되지만, 성적인 영상의 범주에 포함되나 비교적 노골적이지 않은 영상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부 유튜브 채널은 일반적인 영상 사이사이에 야한 영상 화면을 집어넣는 식으로 유튜브의 자체 검열을 피한다. 이런 채널들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져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신고를 하는 경우도 적은 편이다.
영상을 올린 이가 직접 시청 연령 제한을 걸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강요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선에서 그친다. 고정 시청자들이 늘어날수록 광고 등 수익 창출도 늘어나는 유튜브의 수익 구조 특성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을 단기간에 대거 확보할 수 있는 영상에 제공자로서는 굳이 제한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
유튜브에서 ‘19금’을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들. 나이 제한이 걸려 있지 않다. 유튜브 화면 캡처.
직접적으로 성적인 영상을 올리지는 않지만 시청자들로부터 야한 쪽지나 썰(이야기)을 받아 읽어주거나 여성을 성적인 욕설을 퍼부은 뒤 반응을 편집한 영상도 전채 공개로 제공돼 시청자들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경우 유튜브가 제한하는 ▲적개심이나 증오심 표현 ▲약자에 대한 사이버 괴롭힘 ▲선정적인 콘텐츠 등에 해당할 수 있지만 역시 ‘노골적인’ 장면이 없기 때문에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문제의 소지가 있더라도 단지 일부 시청자들에게 짜증을 유발하거나 사소한 정도라면 “신고하지 말고 무시하라”는 것이 유튜브가 홈페이지 ‘정책 및 안전 카테고리’ 코너를 통해 밝힌 공식 입장이다.
결국 유튜브의 영상 업로드 가이드라인은 단지 원론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할 수 있을 뿐, 청소년들이 선정적인 영상을 시청하고 즐기는 것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 아무개 씨(36)는 “일베나 디씨에서 유행하던 선정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콘텐츠가 그대로 영상화돼서 유튜브에서 제재 없이 서비스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학교에서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계도한다고 해도 유튜브 같은 ‘노다지’가 있는 이상 공염불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튜브 등 유사방송에 대해서도 실제 방송처럼 콘텐츠를 규제할 방침을 밝혀왔다. 그러나 유튜브처럼 해외 서버를 이용해 제공되고 있는 영상에 대해서 국내 법령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음란·불법성 유사방송에 대해서는 해당 방송업체에 직접 제공자 차단 요청을 하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유튜브 같은 경우에는 제재 기준이 비교적 개방적이기 때문에 요청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모든 문제 영상을 모니터링할 수 없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이 아니라면 업체의 자율성에 맡기는데 업체 수익과도 관련있는 부분이다보니 제재가 미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튜브는 최근 ‘슈퍼챗(Super Chat)’ 기능을 도입해 아프리카TV의 ‘별풍선’ 아이템처럼 시청자들이 방송 진행자를 유료로 후원하는 시스템을 마련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이 모든 방송 채널에 적용될 경우 수익 창출을 위해 선정적인 방송 경쟁이 붙었던 아프리카TV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