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반려동물사육관리’ 현황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의 21.8%에 달했다. 반려동물 인구가 증가하자 반려동물 산업 또한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2조 원 수준인 반려동물 산업은 2020년에는 6조 원대 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브리더와 도그워커, 핸들러, 반려동물장례지도사, 펫아로마상담사, 동물교감사 등 반려동물 관련 다양한 신종 직업군도 생겨났다.
그중 특히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반려견 브리더(Breeder)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사육환경에서 혈통 있는 개를 길러 번식 분양하는 직업이다. 이에 ‘브리더’를 표방하는 분양전문 업체들도 생겨나 성업 중이다.
일반 애견샵에서 분양을 받을 경우 말티즈 한 마리당 30~40만 원 선이라면, 브리더업체의 경우 150~500만 원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견종에 따라 가격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수요와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일반 애견샵 보다 건강하고 혈통 좋은(?) 강아지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5월 비도덕적 행위로 논란이 된 ‘강아지 공장’과 ‘불법 경매장’ 등 불법적이고 열악한 환경과 달리 반려동물의 건강과 복지권을 지킨다는 점에서 애견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경매장·개공장에서 강아지를 데려오거나 강아지를 상품처럼 취급하면서도 ‘양심적인 브리더’를 표방하며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속여 분양하는 업자들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열악한 환경의 번식장에서 사육되는 강아지들.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A 씨는 한 대형 브리더 업체에서 강아지를 분양받기 위해 예약절차를 진행했다. 해당 업체는 다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유명 연예인들까지 분양을 받았다고 광고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다. A 씨는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하고 예약금을 입금했으나, 예방접종 후 집으로 보내진다던 강아지는 만나볼 수 없었다. 업체 측은 “예방접종 과정에서 강아지가 죽어버렸으니 다른 강아지를 선택하라”고 했다.
또한 업체에서 우수 혈통(?)이라고 강조했던 강아지는 모견·부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강아지가 순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혈통서’를 보내준다고 했다. “부모견 보다는 강아지의 상태(외모)가 예쁜 것이 최우선 아니겠느냐”며 강아지를 마치 상품이나 인형처럼 대하는 태도에도 실망감을 느꼈다. A 씨는 브리더 업체가 개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라 생각하고 분양받으려 했으나, 상반된 업체 태도에 분양 의사를 접을지 고민 중이다.
강아지들의 부모견 조차 확인할 수 없자 A 씨는 강아지를 경매장이나 개공장에서 데려왔을 것이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브리더를 표방하며 혈통서를 조작해 애견인들을 속여 비싼 가격에 강아지를 분양한 병원과 애견샵의 사기행각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애견경매장에서 쓰러져 있는 개
해외의 경우 브리더 면허제를 실시해 동물에 대한 전문지식과 복지조건을 고려할 수 있는 전문 브리더들이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반려동물 번식에 종사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브리더에 대한 기준이 모호할뿐더러 자격요건도 정해져 있지 않다.
현재 국내 자격증 가운데 브리더 관련 지식을 검증하는 자격증은 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의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이지만, 이 또한 필수요건이 아니라 권고 사항일 뿐이다. 종사자가 관련 지식을 배우고 윤리의식이나 책임감 등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최소한의 검증 절차임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은 상태다.
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 정호원 이사는 “국내에서 브리더는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 관련 사업 영업기준에서 ‘생산업’을 하는 이들로, 반려동물을 교배시키고 2세를 배출해 판매업자에게 판매하는 업자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일반 생산업자들도 모두 브리더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도그 브리더’의 궁극적인 목적은 관련 지식을 갖고 좋은 환경에서 강아지를 건강하게 돌보고 관리해 우수한 혈통과 건강한 강아지를 배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필요한 시설기준을 갖춘 뒤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생산업’을 할 수 있다. 브리더 자격을 검증해주는 자격증이 따로 없고, 모범적인 브리더를 표방하며 경매장 등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판매하는 것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또한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반려동물과 반려동물을 분양받기 원하는 소비자는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 이사는 브리더업체가 경매장이나 개공장 등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판매하는 것에 대해 “경매장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비윤리적이며 동물복지 개념을 벗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논란이 된 ‘개공장’ 등은 배란·임신주기도 고려하지 않고 인공수정하는 등 강아지를 공장처럼 생산해 내 문제가 됐다.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현행 동물보호법상의 동물 복지개념을 벗어나는 동물학대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공장 등에서 건강관리에 소홀하게 되면 대체로 2세 강아지들 또한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각종 질병이 발생해 키우는 입장에서 계속 의료비가 들어가게 되고, 결국 유기 문제까지 파생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반려동물에 만연한 유행종과 값비싼 희귀종에 대한 소비욕구에 맞춰진 국내 반려동물 유통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람들의 상술 때문에 반려동물이 반려(返戾)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학사농단’ 주역 정유라의 ‘브리더’ 사랑 정유라가 SNS계정에 올린 사진. 또한, 정 씨는 페이스북의 한 반려견 관련 페이지에 “대통령님 본인 개도 관리 못 하시는데”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는 정 씨의 ‘청와대 출입’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결국 언론의 조명을 받던 정 씨가 국내에 브리더라는 직업을 널리 알린 셈이다. 정 씨의 반려동물 관련 글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 씨는 “(독일은) 아예 시마다 관리청이 따로 있어서 관리를 철저히 한다. 애초에 환경이 안 되는 사람은 개를 키울 수 없다. 브리더들도 마음 편히 분양한다”, “한국 가서 그 좁은 데(펫샵) 작은애들이 맥아리 한개도 없이 오뉴월 팥빙수마냥 퍼져있는 것 보고 집에 오면서 눈물이 훌쩍 나더라”며 국내의 열악한 반려동물 산업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려동물 사랑을 알려왔던 정 씨는 지난 1월 독일에서 동물학대 혐의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특검 수사여부가 불거지자, 정 씨는 사실상 도피를 위해 독일에서 덴마크로 떠났다. 이 과정에서 정 씨는 동물학대 혐의를 받아 반려동물들을 압수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씨의 반려견 3마리를 입양한 독일인 A 씨는 “정 씨가 동물학대 혐의로 독일 경찰에 신고된 뒤 입양을 요청했다. (자신이 입양한 개 가운데) 한 마리는 유난히 말랐고, 모든 개가 겁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 씨의 동물사랑도 자신의 처지를 뛰어 넘기엔 무리였던 모양이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