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일어난 ‘공기총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 아무개 씨의 변호를 맡은 이은의 변호사가 한 말이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 씨는 변호인과 함께 상고심을 준비했지만 상고심은 기각됐다. 기각된 이유는 간단했다. 변호인이 상고이유서를 늦게 제출했다는 이유였다. 피고인은 이에 “변호인이 1, 2심 때 너무 애썼던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전혀 탓하지 않는다”면서도 “22년 수감되더라도 아니, 사형 선고가 나더라도 나는 정말 총을 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이 변호사는 50장에 이르는 상고이유서를 보이며 “그날 눈이 많이 왔는데 시간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밤 12시 10분에 법원에 도착해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상고심을 진행해보지도 못한 채 중형을 살아야 하는 피고인에게 너무 허망한 상황이 됐다”면서도 “수사와 재판과정 모두 피고인 입장에서는 불리하게 돌아갔다”며 지난 재판 과정을 회상했다.
27년 전인 지난 1990년 경기도 이천 청미천 일대에서 한 남성이 공기총에 맞아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망한 이는 그 지역의 조직폭력배였던 A 씨(당시 22세)로 머리에는 둔기에 맞아 손상된 흔적이 남아 있었고 두개골은 총알이 관통한 상태였다. 그렇게 암매장돼 있던 A 씨의 사체가 마을 주민에게 발견되면서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같은 해 피의자 B 씨(48)가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지만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살인에 대한 공모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와 B 씨는 훔친 차량을 A 씨에게 파는 과정에서 분쟁이 있었고, 평소에도 A 씨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터라 살인을 공모했다는 범죄사실도 알려졌다. 당시 B 씨는 총을 쏜 사람은 공모했던 김 씨라고 진술했고 그 부분이 받아들여져 B 씨는 살인죄가 아닌 살인 공모죄로 유죄가 확정됐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이 사건은 주범으로 알려진 김 씨가 지난해 국내에 송환되면서 재조명받게 된다. 사건 발생 25년여 만의 일이다.
김 씨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B 씨와 김 씨는 A 씨에게 절도한 차량을 파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겨 A 씨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었고 살인까지 계획하게 됐다. 이들은 공기총을 구입했고 조준사격연습을 하기도 했다. 김 씨는 범행 당일 B 씨를 고기를 굽는 데 집중하게 한 뒤 A 씨에게 공기총을 여러 번 발사했고, 이후 야구방망이로 A 씨의 머리를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대부분 27년 전 B 씨가 진술한 내용으로, 이번 김 씨의 재판 판결문에 반영됐다.
김 씨는 사건 이후 일본에서 지냈으나 일본 현지에서 불법체류자로 체포되면서 27년 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았다. 김 씨를 변호한 이은의 변호사는 “피고인은 25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지만 국내 수사기관의 추적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었다. 피고인은 딸의 출생신고를 위해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를 위한 지문등록을 하면서 알려지게 된 것”이라며 “피고인에 따르면 그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은 이유도 진범으로 받을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김 씨는 살인한 것을 보기만 하고 신고하지 않은 죄책감이 있었고, 당시 사망한 사람이 조직폭력배였기 때문에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일본으로 갔다. 공범과는 조직폭력배에게 자백해 서로에게 위협이 될까봐 연락을 끊은 것이었다. 또 피고인은 기존에 한국에서 하던 일보다 일본에서 새로 찾은 일이 훨씬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올 필요성을 못 느꼈고 성실히 일하며 가정을 꾸렸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상고심을 앞두고 제출한 탄원서 일부.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김 씨에게 살인을 인정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씨는 한결같이 “나는 총을 쏘지 않았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공범이 총을 쐈고 쓰러져 죽었는데 같이 도망갔다. 신고를 했어야 했지만 신고하지 못하고 도망갔다. 이에 대한 벌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씨의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것은 27년 전 B 씨의 수사기록과 판결기록뿐이었고, 증인 역시 자신이 살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B 씨가 전부였다. 부족한 증거와 증인 등으로 재판이 불리하다고 생각한 이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지만 이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주지원에서 진행했어야 하는 걸 수원지법으로 끌고 왔다“면서 ”그러나 증인들을 한날 부르기 어렵다는 답변이 오면서 국민참여재판이 불허됐다. 다른 증인은 필요없었고, 직접적 증인인 공범만 있으면 됐다. 그러나 공범마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게 국민참여재판을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또 B 씨의 요청에 따라 증인신문마저 비공개로 진행됐다. 증인으로 나온 B 씨는 지난 90년 재판 당시 진술을 여러 번 바꿨다. 김 씨의 강요로 범행을 사전에 공모했다고 주장했다가 사전 공모 과정에 김 씨의 강요는 없었다고 진술을 바꾸는 등 수시로 진술을 바꿨다. 다만 자신이 피해자 A 씨를 살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일관되게 했다. 이번 김 씨 재판 법정에서는 “공소장에 기재한 내용은 모두 맞지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을 뿐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해 B 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피고인 김 씨가 공기총을 발사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재판에까지 일관된 진술을 했다. 오히려 B 씨는 복역을 마쳤기 때문에 법정에서 진실된 증언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 재판이 현재 피고인에 대한 재판이었는지 의문이다. 27년 전 공범 B 씨에 대한 판결 이유에서 ‘B 씨가 주장한 피고인이 주도했다는 것을 전제해도 B 씨에게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는 구절을 돌아볼 이유가 없다’는 부분을 현재 굳이 돌아봐야 하느냐는 과정일 뿐이었다”며 “이번 재판에서는 증인과 당사자 간의 대질신문이 없었다. 공범의 녹음을 틀어놓고 피고인 신문을 하겠다고 해도 이것 역시 불가능했다. 먼저 잡힌 사람의 말과 기존 자료만이 증거로 채택됐으니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도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 등 갑질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변호사로 유명하다. 이 변호사는 “피고인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그 역시 약자다”라며 “피고인의 재심청구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지만 새로 나올 증거, 증인이 없고, 공범의 마음이 바뀌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피고인이 상고를 위해 제출했던 탄원서를 읽어볼 수 있었다. 피고인은 탄원서에 “피해자에게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당시 도망가지 않고 신고했다면 귀중한 생명을 구하고 유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느끼며 1심, 2심 재판을 통해 깊이 반성하며 임했으나 주범이라는 판결에 대법원에 상고하기에 이르렀다”며 “사건이 난 후에야 공범에게 피해자를 죽인 이유에 대해 들었고, 살해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도 공모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공범의 부탁으로 공기총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소개해준 게 전부이며 공기총을 공범에게 사줄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다. 공범이 피해자에게 차를 팔았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고, 공범은 피해자와 다른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그럼에도 사건을 방관하며 도망친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평생 반성할 것이고, 피해자과 가족에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두 손 모아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