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월 14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안희정 충남지사는 2월 19일 부산대 10‧16 기념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을 위해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K스포츠·미르재단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인 대기업들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서 동계 올림픽을 잘 치러 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에 따르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박 대통령이 ‘선한 의지’로 K스포츠·미르 재단을 만들었다고 해석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문 전 대표와 안 지사가 설전을 벌였다. 문 전 대표는 이튿날 “안 지사가 선의로 한 말이라 믿는다. 하지만 불의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세울 수 있는데 안 지사 말에는 분노가 빠져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안 지사는 “지도자의 분노는 피바람을 나게 한다”며 받아쳤다.
야권도 발칵 뒤집혔다. 친문 성향 진성준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의 문제는 선의냐, 악의냐가 아니다. 박 대통령 안중에 헌법도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자신만은 법치주의의 예외라는 이중 잣대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도 안 지사 발언을 비판했다. 궁지에 몰린 안 지사는 결국 “예가 적절치 못해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백기를 들었다.
‘선한 의지’ 발언의 여파는 일단락된 모양새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오만해졌다. 우클릭 마케팅 지나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회 관계자는 “우클릭 마케팅이 선을 완전히 넘었다. 자유한국당도 연정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할 때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을 선의로 합리화하면 정치가 저급해질 수밖에 없다. 선의로 돈을 줬다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왜 감옥에 갔나”고 반문했다.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단일화 대가로 박명기 후보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징역 2년을 복역한 인물이다. 곽 전 교육감 측은 ‘선의’로 2억 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안 지사가 촛불민심을 건드렸다”며 냉담한 반응을 드러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일에는 경중과 선후가 있다. 너무 많이 나갔다. 선한 의지는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는 촛불민심과 맞지 않는 담론이다. 궁극적으로 적폐가 청산된 뒤 서로를 선의로 바라보면 좋은 이야기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선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주장을 반복하면서 대중들에게 받아들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계몽군주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 지사 측은 “안 지사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선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무너뜨린 민주주의 법체계를 새롭게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대연정 발언도 연정의 대상을 찍어놓은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세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20%대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10%대로 주저앉았다. 여론조사 전문 업체 리얼미터 2월 4주차 주중집계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 따르면 안 지사의 지지율(19.2%)은 전주보다 1.2%p 떨어졌다. 문 전 대표 (32.4%)가 1위를 차지했고 황교안 권한대행 (11.6%)이 뒤를 이었다. 광주·전라 지역에서 안 지사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6.9%p가 떨어진 14.2%를 기록했다. 호남 지역의 지지율 하락 폭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호남 민심이 선한 의지 발언을 향해 냉담한 반응을 드러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이번 조사는 2017년 2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 1,50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응답률은 9.4%를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였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
“안 지사의 우클릭 전략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국회 관계자는 “매우 정교하고 날카로운 선거 전략이다. 안 지사의 판 흔들기 작전이 먹히고 있다. 흐름을 읽는 능력도 남다르다. 밭이 있다고 가정하면 왼쪽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 전 대표가 열심히 추수해서 알곡이 얼마 안 남았다. 후발주자로서 오른쪽을 돌아서 보니까 알곡이 차고 넘치고 있다. 보수 진영 잠룡들의 낫질이 시원찮으니 안 지사가 오른쪽에 낫질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민주당 지지층으로는 7 대 3이라 활로가 안 보인다. 외연에서 끌어들여 뒤집기를 시도하는 중인데 앞으로도 더욱 우클릭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점쳤다. 정치권 일각에서 “‘선한 의지’ 발언은 전략적으로 계산된 시나리오 ”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안 지사는 민주당 전통 지지층인 ‘집토끼’보다 중도·보수층인 ‘산토끼’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왔다. 안 지사는 1월 18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 “국가 간 약속행위이기 때문에 협상은 협상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1차 구속 영장이 기각됐을 땐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대연정, 새누리당과도 할 수 있다”며 우클릭에 정점을 찍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지사의 우클릭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작품”이라는 관측도 들리고 있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최근 “김 전 대표를 포함한 여권 세력들이 안 지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연정, 사드, 선한 의지 같은 얘기들은 이 시장에게 통하지 않는 키워드다. 안 지사는 소신대로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김 전 대표와 안 지사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안 지사의 창조경제 발언에 그 키를 읽었다”고 했다. 안 지사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전략(창조경제)을 지속 가능한 발전 철학으로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