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씨가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앞서 2016년 2월 18일 녹음된 파일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간다. 이 역시 고 씨가 가이드러너 사업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 씨가 “가이드러너가 진행되면 뭐가 있을까”라고 묻자 김 전 대표는 “가이드러너가 진행되면 류 대표(류상영)가 실용신안인가 뭔가 등록을 해 놨다. 나중에 가이드러너가 활성화되면 저작권 같은 걸 받을 것”이라며 “만약에 가이드러너가 되면 옷이 있을 거고, 어디서 가이드러너 행사 뭐 이런 거 했을 때는 판권은 류 대표가 가지고 있다. 가이드러너 이름 같은 거 쓰는 사용료를 류 대표가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건 형하고 저하고 우리끼리 셰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최순실 씨에게 불리한 내용도 있었다. 고 씨는 녹취록에서 “TBK(더블루K)도 내 거도 아니고, (최순실이) 좀만 관심을 보이면 우리 거가 안 돼. (최순실이) 다른 데로 넘겨. 근데 이걸 계속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라고 말한다. 고 씨가 최 씨의 지시를 받는 입장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6년 6월 8일 김 전 대표가 강지곤 K스포츠재단 차장과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면 이들이 사실상 경쟁관계였던 차은택 감독 비리를 신고해 그를 배제시키려는 계획을 논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김 전 대표는 “차 감독 밑에 브랜든(호주 교포)이 있는데 돈을 세탁해서 준다. 광고가 10억짜리다 그러면 실제 세금계산서 2억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돌려받나보다. (중략) 신고를 누가 할 거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거냐(고민하고 있는 것)”라고 말했다.
강 차장이 “상영(류상영)이 시킨 거 아냐”하고 묻자 김 전 대표는 “상영이 형이 두려워하면서 하고 있는 거다. 계좌번호에서 타고 들어가면 (차 감독) 나온다고 했는데. (중략) 걔(브랜든)를 잡아가면 어리바리하거든요. 잡아가면 다 불 거라는 거죠”라고 대답한다.
2016년 7월 10일 녹음된 통화에서도 고 씨와 김 전 대표가 차 감독을 배제할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고 씨는 “인터피지(차 감독이 운영했던 회사)? 차 감독 연결된 거 또 없냐”고 묻는다. 김 전 대표는 “이진동 위원장(TV조선 기자)이 기사거리가 된다고 (중략) 기사 타고 올라가면은 차 감독(이 걸려든다)”이라고 말한다.
또다른 파일에서는 차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자는 내용도 나왔다. 김 전 대표는 “차 감독한테 뒤집어씌우면 된다고 본다. 사실도 그렇고. (중략) 이진동 위원장하고 (이야기 해서) (우리를) 최대한 피해자로 만들어 달라. 중간에 누가 가져가서 (내부 고발자료를) 오픈한 걸로 해가지고 최대한 피해자로 만들어야 한다. 깐 게 아니라 누구한테 까임을 당한 걸로.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면 된다고 보니까”라고 말한다.
파일에는 최근 논란이 됐던 미얀마 사업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김 전 대표는 “인호섭 대표(미얀마 무역진흥국 서울사무소 관장, MITS코리아 대표)도 소장(최순실)이 무서운 건 알고 있다. 소장이 (재단 관련) 기사 뜨고 들쑥날쑥하고 날라 가고 나면, 관여를 안 한다고 하면 소장도 없고 자기 혼자 할 수 있을 때 이 사람이 우리 거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인가. 무조건 먼저 (이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고 씨는 “문제되면 다 (폭로해서) 날려버린다고. MITS도 날라 가는 거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인호섭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소장이니까”라고 대답한다. 이들이 최 씨 뒤에서 이권을 챙기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어디까지나 최 씨라는 것이다.
이들이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담겨있었다. 2016년 3월 8일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정리 좀 해야겠다. 이메일 계정을 없애야 한다. 우리 것만 없애는 게 아니라 OO것도 없애야 한다”고 고 씨에게 권유한다. 고 씨는 “휴대폰도 두 개잖아. 하나는 뭐고 하나는 뭐냐”면서 휴대폰도 없앨 것을 지시한다.
김 전 대표가 평소 친분이 있던 강지곤 차장에게 책임전가를 조언하는 내용도 있었다. 김 전 대표는 “교재 개발하는 거는 사무총장한테 넘기라”면서 “회장님(최순실)이 시키니까 하는 건데 사무총장한테 보고는 하고 넘겨라. 형이 살아날 구멍은 만들어 놔야 한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사무총장이 시켜서 했다고 하라”고 말했다.
녹음파일들을 모두 살펴보면 최 씨와 고 씨가 재단 이권 등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재단과 관련이 없다는 최 씨의 주장도, 녹음파일 속 발언은 단순 농담이었을 뿐이라는 고 씨의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녹취록을 제공한 정치권 관계자는 “고 씨는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라기보다는 언론사 기자를 통해 이권을 챙기려 한 사람이었다”면서 “재단에 아직도 고 씨의 측근들이 남아있는데 이대로 사건이 마무리된다면 ‘형(고영태)만 살아있으면 나중에 챙겨주면 된다’는 그들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다. 녹음파일 진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