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났다. 일본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 올해 3월부터는 후쿠시마 내 일부 피해 지역에 대한 피난 명령이 해제됨에 따라 ‘원전 난민’들은 후쿠시마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들에 대한 주거 지원도 오는 3월 31일부터 중단될 예정이다. 원전 사고의 악몽을 떠나 이제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후쿠시마 부흥 정책’이 시동을 건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피해지역의 부흥을 위해 방사능 위험으로 주춤했던 후쿠시마 포함 도호쿠 지역의 농수산물 소비를 정부 차원의 캠페인까지 마련해 꾸준히 진행해 왔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후쿠시마 여행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방사능이 강타한 일부 지역이 폐쇄된 것만을 제외한다면 2012년 이후 일본 내에서 후쿠시마와 관련한 모든 사안은 예상 외로 평온했다. 지난 2월 10일 일본 언론을 통해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만 아니었다면 이 인위적인 평온함은 계속됐을지도 모른다.
2011년 3월 11일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AP/연합뉴스/
이 발전소 격납용기 내부에서는 시간당 530시버트(Sv)에 이르는 방사선이 측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12년 측정됐던 시간당 73Sv의 7배에 이르는 수치로 사람이 1분간 직접 노출될 경우 즉시 사망할 수 있는 초고농도의 수준이다. 여기에 격납용기 안의 핵연료가 지속적으로 용기를 녹이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방사선이 유출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소식이 보도되면서 국내에는 또 다시 ‘후쿠시마 방사능 괴담’이 퍼졌다. 2011년 당시처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내리는 비에서 방사능 냄새가 난다” 수준이 아니라 이제까지 축적된 정보를 토대로 한 괴담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고 초기에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측정한 누출 방사능 양이 73Sv/h 수준으로 비교적 낮았음에도 방사능 공포 괴담이 돌았던 만큼, ‘즉사 수준’으로 표현한 이번 측정 수치에 입각한 루머는 단순한 괴담 이상의 정보성까지 갖추고 있다.
가장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퍼지고 있는 것은 후쿠시마 지역을 방문했던 일본 유명인들의 연이은 병사와 발병 소식이다.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노심용융이 국내 보도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본 유명 인사들이 후쿠시마를 포함해 고방사능 오염 지역을 방문한 뒤 연이어 병사·발병했다”며 고농도 방사선 누출로 인한 피폭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후쿠시마 등 지역을 방문했다가 암, 심질환, 뇌출혈 등으로 숨진 유명 인사들은 12명에 달한다. 그외 갑작스러운 암이나 혈관 질환 등이 발병해 투병 중인 사람들도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 가수 각트(Gackt), TOKIO, 배우 아마미 유키 등 한국에도 알려진 유명 연예인들을 포함해 40명에 이른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등 도호쿠 지역 농수산물 판매 촉진을 위한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 홈페이지 캡처
이들의 사망이나 발병 원인이 후쿠시마 방사능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후쿠시마 지역을 위문방문하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국내외에서 그 위험성 때문에 ‘일본 최악의 삽질’이라고 조롱받았던 “(후쿠시마 지역 농산물을) 먹어서 응원하자!” 운동에도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소문은 국내에서도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다른 괴담은 “이미 후쿠시마 원전 2호기는 ‘멜트 아웃(Melt Out)’된 상태”라는 것이다. 멜트 스루(Melt Through), 멜트 다운(Melt Down)과 함께 노심용융 상태의 하나인 멜트 아웃은 마그마 상태로 완전히 녹아버린 원자로의 노심이 발전소의 건물(격납용기 등)을 뚫고 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미 후쿠시마 원전 2호기를 통해 노출된 방사능으로 일본 전역이 오염됐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이미 일본이 2011년 사고 당시 후쿠시마 원전 1, 2호기의 노심용융 상태를 은폐했다가 2개월이 지난 뒤에야 시인했던 만큼, 그동안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된 피해 상황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 지난 2월 10일 2호기의 격납용기 바닥에 구멍이 났고 이미 초고농도의 방사선이 유출되고 있지만 피해는 없다(멜트 다운)는 언론 보도를 믿지 못하고 이미 멜트 아웃된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 사이 괴담은 “일본은 이미 죽음의 땅이 됐다”로 살이 덧붙여졌다. 현재 도쿄전력은 실제 원전 2호기의 노심용융 상황은 멜트 아웃 수준이 아니며, 아직까지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가스가 격납용기 외부로 빠져나간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밝히고 있다.
앞선 괴담이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와는 반대로 한국을 겨냥한 괴담도 퍼지고 있다. 2013년 한 일본 극우매체의 칼럼니스트는 “일본보다 한국의 방사능 수치가 더 높기 때문에 도쿄 올림픽보다 평창 올림픽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던 바 있다. 여기에 힘을 얻은 괴담이 “한국에서 발생하는 자연 방사능 수치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방사능 수치와 비슷하거나 더 높으므로 이미 한국도 일본 이상으로 방사능에 오염돼 있다”는 이야기다. 이 괴담은 “그러므로 일본 방사능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행이나 제품 사용, 음식 섭취 등을 거리낌 없이 해도 괜찮다”는 주장과도 이어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지질은 자연 방사능 방출량이 높은 화강암이 많기 때문에 세계 평균보다 높은 자연 방사능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방사능 수치’만을 놓고 따졌을 때 일반적으로 일본보다 높은 수치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지만 자연 방사능에 의한 피해는 원전 사고로 인해 인위적으로 발생한 방사능 물질에 따른 체내외 피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하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한국의 자연 방사능 수치가 일본보다 더 높으므로 한국에서 멀쩡했다면 일본 여행이나 일본 제품 사용을 거리낌 없이 해도 된다”는 것은 방사능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
국내 한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일본 내에서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2013년 특정비밀보호법이 제정되고, 방사능과 관련한 정보를 외부로 반출할 수 없도록 제재가 가해지면서 오히려 2013년 이전의 한정된 정보를 토대로 한 루머만 계속 양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보도됐던 2호기의 노심용융은 누출된 방사능으로 인해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됐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원전의 복구나 해체가 예상보다 더 지연될 가능성을 언급한 게 더 크기 때문에 잘못된 루머로 섣부르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여전히 방사능에 대한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가운데 제주항공이 후쿠시마와 인천을 잇는 부정기편 전세기를 오는 3월 18일부터 편성한다는 계획을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제주항공의 전세기가 이용할 후쿠시마 공항은 사고 발생 지역인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부터 서남쪽 방향으로 약 56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제주항공 측은 “후쿠시마 공항의 방사능 수치가 서울에 비해 오히려 낮고 정상적인 수치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제주항공의 모기업인 애경그룹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질 정도로 강한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