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와 스플릿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초청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고 있는 황재균은 뛰어난 적응력을 나타내며 브루스 보치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들로부터 서서히 인정받고 있는 중이었다.
황재균은 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훈련장에 매일 아침 6시 30분에 도착한다. 클럽하우스 문을 7시에 여는데도 6시 30분에 나가 먼저 훈련 준비를 한다. 2월 22일(한국시간)은 캐나다까지 건너가 비자를 발급받고 돌아왔다. 남들은 2~3일 걸린다는 비자를 황재균은 하루 만에 해치웠다. 비자를 받자마자 곧장 애리조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23일 새벽 2시 집에 도착했다. 4시간가량 눈을 붙이고 어김없이 오전 6시 30분에 출근길에 나선 황재균. 좀 더 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예정된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고 말한다.
황재균은 “미국에 오면서 가장 큰 숙제가 빠른공 대응법이었다“며 ” 최대한 폼을 간결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피곤하긴 해도 스스로 약속한 출근 시간에 나와야 마음이 편해요. 캐나다까지 갔다가 오는 바람에 운동을 소화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훈련을 거르기 싫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왔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황재균은 라이브 배팅에 나서 좌측 파울 폴대를 맞히는 홈런성 파울을 날렸다. 이것은 현지 언론에 홈런으로 잘못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브루스 보치 감독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사실 그건 홈런이 아닌 엄연한 파울이었어요. 그런데 보치 감독님이 언론에 내가 홈런을 때려냈다고 말씀해주시는 바람에 좀 더 부각될 수 있었던 거죠. 감독님이 그만큼 홈런을 기대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시범경기에 들어가서 출전만 시켜준다면 진짜 홈런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해봐야죠.”
홈런이든 파울이든 황재균의 타격감이 코칭스태프의 눈을 사로잡은 건 사실이다. 24일 훈련에서도 황재균은 연속으로 시원한 장타를 터트리며 빠른 볼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황재균은 스프링캠프 훈련 첫날, KBO리그에서 화제가 됐던 ‘배트플립’으로 선수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 바 있었다. 비자 발급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온 23일에는 보치 감독과 헌터 펜스의 주도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 절 부탁하시더라고요. 자꾸 말도 붙이고,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도 건네며 친분을 쌓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고, 결국 앞으로 불려나가 춤을 추게 됐어요. 감독님이 재미있게 팀을 이끄시는 것 같아요. 제가 부담을 느낄까봐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시기도 하고요. 캠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속단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보면 감독님께서 절 많이 도와주시려 한다는 걸 느꼈어요.”
KBO리그에서의 황재균은 두 차례 팀을 옮긴 적이 있었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 입단 후 넥센 히어로즈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에서 야구 히스토리를 만들어갔다.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일이 그리 생소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외모와 언어, 문화에 어울리는 건 또 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말이 잘 안통하고, 상대의 생각을 통역을 통해 전해 듣는 데 대한 답답함이 있어요. 그래도 샌프란시스코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날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모두 친절하고, 배려해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제가 좋은 팀에 들어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는 데 있어 한국과의 차이점에 대해 묻자, 황재균은 “훈련방법은 비슷하지만 훈련 시간과 훈련량에 차이가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은 단체 훈련을 오래하는 반면에 미국은 개인 훈련을 길게, 단체 훈련은 짧고 굵게 하는 편이에요. 어떤 게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지금은 단체 훈련 마치고 따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등 개인 훈련을 더 보강하고 있어요.”
황재균은 2016 시즌을 앞두고 빠른공에 대응하기 위해 타격폼을 간결하게 수정 보완하면서 2년 연속 26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미국에 오면서 가장 큰 숙제가 빠른공 대응법이었어요. 최대한 폼을 간결하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간결해진 만큼 회전력을 높이려고 신경 썼죠. 작년부턴 레그킥 동작시 가급적이면 다리를 낮게 들려고 했어요. 스윙할 때 오른쪽 무릎의 방향이 포수가 아닌 투수 쪽으로 두는 연습도 했었고요. 물론 이 모든 걸 하나하나 다 신경 쓰다 보면 공은 절대 칠 수가 없겠죠. 그래서 타격폼을 수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황재균의 타격폼 수정에 도움을 준 이는 LG 내야수 출신인 이종열 SBS 해설위원이었다. 마침 이 위원은 WBC대표팀 전력분석원의 자격으로 애리조나에서 훈련 중인 네덜란드 대표팀을 살펴보러 왔다가 샌프란시스코 캠프를 방문, 황재균의 훈련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위원은 황재균이 훈련 중 빠른 볼은 물론 변화구가 나오는 기계의 공을 때려내는 모습을 보고 황재균이 자신감을 갖고 훈련에 임하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빠른 볼의 대처 능력입니다. 한국에선 143km의 공이 대부분이지만 여긴 147km를 넘기는 공들이 많고 다른 나라에서 온 선수들한테는 그런 강속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한 키포인트예요. 그런데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리미어12 대회 때 황재균의 타격폼을 보면 무릎이 포수 방향으로 가면서 타이밍이 살짝 늦었는데 2016 시즌 때는 무릎 방향이 투수 쪽으로 하면서 타이밍을 맞춰갔거든요. 그 타격폼이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계속되고 있었어요. 오버 페이스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아요.”
이종열 위원은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던 황재균과 야구 티칭 문제로 인연을 맺은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황재균의 에이전트인 이한길 GSI 대표가 SNS를 통해 제게 강경덕 선수의 타격폼에 대해 문의를 해왔어요. 그 선수의 영상을 분석해서 수정 부분을 자료로 만들어 보내줬더니 일주일 만에 홈런 4개를 터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돼 이한길 대표가 황재균을 소개시켜줬고, 황재균도 타격폼에 대해 자주 문의를 해왔습니다. 사실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각 팀에 타격코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겉으로 나서기가 애매했거든요. 그래도 선수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진 않았습니다. 당시 황재균은 하체가 아닌 상체에 포커스를 두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어요. 하체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고, 그 조언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체를 쓰기 시작하면서 타이밍을 앞으로 가져가니까 방망이에 힘이 실렸고, 장타가 터지기 시작했어요. 그런 노력들이 오늘의 황재균을 만들었다고 봐요.”
이종열 위원은 “추신수와 황재균의 타격폼이 하체를 먼저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체까지 연결되는 동작이 상당히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타격은 물론 주루 플레이에서도 황재균은 당당하다. 2016 시즌 25개의 도루를 성공한 그는 발이 느리지 않다는 걸 숫자로 증명해냈다. 이 위원은 “샌프란시스코 코칭스태프 내에서 황재균의 도루 실력에 깜짝 놀랐다는 얘기가 들린다”면서 “발도 빠르고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시원한 장타까지 터트리는 황재균에 대해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란 내용을 귀띔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샌프란시스코 타격코치 ”타격폼 굿…약점 못 찾았다“ 2월 24일 샌프란시스코 자인언츠 훈련장에서 WBC대회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헨슬린 뮬렌 타격 코치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본업은 샌프란시스코 타격코치이고, 부업이 네덜란드 야구대표팀 감독이다. 네덜란드는 WBC대회 1라운드에서 한국과 같은 A조에 속해 있어 고척돔구장에서 한국과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뮬렌 코치는 황재균과 남다른 인연을 자랑했다. 황재균이 샌프란시스코 입단 전 미국 플로리다에서 쇼케이스를 벌였을 때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에게 황재균을 적극 추천했던 사람이 뮬렌 코치였다. 그래서인지 뮬렌 코치가 황재균에 대해 갖는 기대가 무척 컸다. 2월 24일 뮬렌 코치와 황재균에 대해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헨슬린 뮬렌 샌프란시스코 타격코치 겸 WBC대회 네덜란드대표팀 감독. - 황재균의 훈련 모습이 어때 보이나. “아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좀 전에 필드에서 연습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타격폼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보기 좋았다.” - 그래도 보완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아직까진 없다. 경기에 뛰는 모습을 못 봐서 시범경기에 출전한 뒤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연습은 어디까지나 연습일 뿐이다. 내가 집중해서 보는 건 황재균이 공을 보며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또 상대편 투수와 상대할 때 구속을 파악하고 대응하는지의 여부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단점을 못 찾았다. 그는 열심히 훈련에 참여하고 있고, 그런 모습이 코치들한테 긍정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경기 때도 계속 좋은 모습만 보여줘 다음 인터뷰할 때도 단점을 못 찾았다고 말해주고 싶다(웃음).” - 인상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어떤 게 되겠나. “연습 때 정말 잘했다. 오늘은 배팅게이지에서 연습을 했는데 그가 서너 개의 홈런을 쳤다. 일단 타격폼이 안정돼 있다. 앞으로 시범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면 수비, 공격, 도루를 잘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려면 3가지를 모두 잘해야 되는 게 아닌가.” - 황재균 선수의 목표는 25인 로스터 합류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그가 꼭 성공해서 우리 팀 정식 로스터에 합류하길 바란다. 샌프란시스코 역사상 한국 선수는 처음 아닌가. 그게 매우 특별한 기분을 들게 할 것 같다.” - 황재균 선수가 이번에는 새로운 팀에 적응하느라 WBC대회에 불참하게 됐다. 만약 이번 WBC대회에 출전했더라면 같은 팀 코치와 선수가 상대팀 감독과 선수로 만날 뻔했다. “이번은 패스하고 다음 WBC대회에서 만나길 바란다(웃음).” - 황재균은 시범경기 중 언제쯤 투입될 예정인가. “알다시피 스프링캠프에 온 선수들이 많다. 선수들이 매일 경기에 뛸 수는 없다. 베테랑 선수들은 한 경기하고 다음엔 쉬는 패턴을 반복한다. 그리고 선발 선수들은 원정으로 치르는 시범 경기에 등판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원정 경기에서 뛸 확률이 높다. 내일(25일)부터 시작하는 시범경기를 유심히 봐 달라. 처음엔 교체 멤버로 투입되겠지만 어느 경기에선 처음부터 뛰게 될 수도 있으니.”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