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대상에 경영권이 포함되면서 도시바 인수에 대한 글로벌 IT업체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반도체 시장 2위 업체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업계 3~5위권인 SK하이닉스·웨스턴디지털·마이크론 중에서 인수자가 나온다면 업계 1위인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2월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에 대해 “(제안을 받으면) 검토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그보다 앞선 2월 3일,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지분 19.9%에 대한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인수에 참여한 업체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 웨스턴디지털, 마이크론, 베인 캐피탈, 대만 폭스콘 등이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글로벌 IT업체들이 도시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디램과 낸드플래시로 대표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디램과 낸드플래시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양분한다”며 “둘을 제외한 나머지 메모리 반도체의 판매량은 전체 메모리 반도체 판매량의 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디램의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64.5%), SK하이닉스(22.8%), 마이크론(10.6%), 대만 난야(1.3%) 순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36.6%), 도시바(19.8%), 웨스턴디지털(17.1%), SK하이닉스(10.4%), 마이크론(9.8%) 순이다. SK하이닉스는 디램 시장에 비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면 단숨에 낸드플래시 시장 2위로 올라설 수 있다. 도현우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도시바는 최근 타 사업부 부실로 낸드플래시에 강하게 투자하지 못해 삼성전자와 경쟁력 차이가 벌어지고 있지만 사업부가 독립해 자금 출자가 원활해지면 경쟁력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는 과거에도 도시바와 기술 개발에 많은 협력을 해와 지분 인수가 가능하다면 부족한 낸드플래시 기술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낸드플래시의 시장 전망이 밝은 것도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기가 높은 이유다. 디램익스체인지는 2017년 디램 수요는 지난해 대비 20%, 낸드플래시는 40% 각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디램익스체인지는 보고서를 통해 “2017년 말까지 세계 노트북의 50% 이상이 SSD를 탑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올해 SSD 수요는 지난해 대비 60%까지 급증할 것”이라고 전했다. SSD는 낸드플래시로 만든 저장매체로 주로 컴퓨터와 노트북에 쓰인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전에 나선다 해도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앞의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 기업이 독점을 하고 있는 수준인데 일본 기업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한국 기업에 매각할지는 의문”이라며 “SK하이닉스가 인수하면 일본 인력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인수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한편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수많은 업체가 도시바 인수에 나서는 것을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나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를 인수한다면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시장 1위 자리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애플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도시바가 재입찰을 통해 다른 기업에도 인수 기회를 주기로 하면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통신사 <블룸버그>는 2월 22일 “도시바는 미국과 중국에서 원전 발전소로 인해 엄청난 비용 초과를 겪고 있다”며 “일본 언론들은 애플과 MS까지 도시바 반도체 지분 인수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애플은 아이폰7 256GB 모델에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를, 32GB와 128GB 모델에는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도시바를 인수하면 차기 아이폰 시리즈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대신 도시바의 낸드플래시를 탑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현재, 삼성이 도시바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도시바와 타 업체 간의 이슈일 뿐”이라며 인수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인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애플의 기본적인 경영 개념은 애플이 제품을 설계하면 제조를 타 업체에 맡기는 것”이라며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해 반도체를 공급하면 경영 철학 자체가 깨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인수가 10조 어떻게 마련할까? ‘사모’가 있잖아요~ 업계에서는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의 인수가를 1억 엔(약 10조 원) 수준으로 평가한다. 2016년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유동자산은 약 9조 8000억 원으로 인수를 위해서는 그룹의 지원이나 사모펀드(PEF) 구성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17일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 600억 원)에 인수해 국내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사례 중 최대 금액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하면 최대금액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아직 인수 참여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 자금 조달 방법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PEF를 구성해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큰 규모의 M&A는 PEF가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리상으로는 SK하이닉스의 모기업인 SK텔레콤이나 그 모기업인 SK㈜가 참여해도 문제가 없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크면 경제 시민단체에서 배임이라고 항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