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5일 대구 동구 출마가 무산된 새누리당 이재만 예비후보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당대표실 입구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김무성 당대표를 기다리고 있다. 일요신문DB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는 지난 1월 말 전국 약 70개의 지역구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한국당은 당원협의회 조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현역의원들이 탈당한 즉시 곧바로 거물급 후임자를 채워 넣고 있다. 탈당한 바른정당 의원들의 공석에 유력한 인사, 이른바 ‘자객’들을 배치해 추가 탈당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2월 9일 한국당은 12명의 ‘자객’들을 임명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바른정당으로 탈당한 조직위원장들을 대체하는 12개 지역구 조직위원장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박맹우 사무총장은 “여러분들이 지금 맡은 지역이 어떤 지역이냐. 새누리 또는 한나라당이란 이름으로 누릴 거 다 누리고 침 뱉고 저주하고 간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그 사람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민심의 바로미터인 TK 지역엔 ‘한’을 품고 있는 자객들이 내려갔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을 견제할 자객은 대구동을 조직위원장에 임명된 이재만 전 대구동구청장이다. 이 전 동구청장은 20대 총선 당시 “배신의 정치를 응징하겠다”며 유 의원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던 인물이다.
당시 새누리당 공관위는 후보자 등록 시작일 전날까지 공천을 결정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 의원을 고사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결국 유 의원이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뒤 공관위는 이 전 구청장을 단수 추천했다. 하지만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투쟁으로 공관위 결정은 뒤집어졌고 이 전 구청장의 공천은 좌절됐다.
이 전 대구동구청장에게 유 의원은 ‘숙적’이다. 이 전 구청장은 유 의원이 던진 두 번의 탈당 승부수로 정치인생의 변곡점을 겪어야 했다. 이 전 구청장은 2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유 의원이 탈당하면서 우리 지역 당원들이 절반 가까이 탈당했다. 유 의원은 배신의 아이콘이다. 유 의원은 당을 버렸고 새로운 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지역에 혼란과 피해를 일으켰다. 지금은 책임을 회피하고 마치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자객은 이인선 한국당 여성상임전국위원이다. 대구 수성을에 조직위원장으로 임명된 이 위원과 주 원내대표의 갈등은 제20대 총선에서 극에 달했다. 총선 직전 새누리당 공관위는 대구 수성을을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하고 이 위원을 공천했다.
공천에 불복한 주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을 상대로 법원에 공천 무효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인용결정을 내렸고 이 위원의 공천은 취소됐다. 결국 주 원내대표는 탈당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새누리당은 이 위원을 재공천했다.
당시 이 위원은 주 원내대표의 탈당에 대해 “12년 동안 자신을 지켜준 당을 이익을 위해 살던 집에 불을 지르고 나가는 공인의 의무와 도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행위”라며 비판했다. 두 사람은 선거 내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주 원내대표는 4선에 성공했지만 이 위원은 야인으로 남아야 했다.
이 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바른정당으로 600명 정도 탈당했지만 그중 150명이 돌아왔다. 책임 당원 확보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주 원내대표를 향한 지역정서가 좋지 않다. 주 원내대표가 새롭게 다른 당으로 들어가서 지역주민들이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대구 쪽은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꼭 탄핵을 해야 했나’라는 여론이 많다. 바른정당 의원들이 정치를 더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탄핵 무리수를 뒀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최근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강원 강릉) 지역구엔 최명희 강릉시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연달아 자객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거물급 자객은 일종의 경고장”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서 한국당 의원들의 엉덩이가 들썩 들썩했다. 자객들을 꽂는 의미는 ‘당신이 우리 당을 버리고 나가도 다른 사람 있다’는 견제 의미가 강하다. 더 이상 비워둘 수 없다고 경고를 하는 것이다. 감투를 주면 마음이 떠날 조짐을 보여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한국당에서는 “자객들이 제 역할을 해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탈당으로 승부수를 던지려고 하던 인사들이 결국 탈당을 못했다. TK(대구경북)와 충청 의원들이 탈당하려고 했는데 그 지역으로 경쟁자들이 우르르 들어오니까 다시 마음을 잡았다. 거물급 인사들을 탈당 지역구에 바로 꽂으면 ‘선택 한 번 잘못했다가는 나중에 뺏기겠구나’하는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다. 자객들이 활약을 해주고 바른정당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집 나갔던 당원들도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자객들이 추가 탈당을 염두에 뒀던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속절없이 당하던 바른정당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바른정당 조강특위(위원장 홍문표 의원)는 최근 새로운 조직위원장들을 인선하기로 했다. 홍문표 의원실 관계자는 “신생정당이기 때문에 조직위원장을 인선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한국당의 자객들을 견제하는 의미도 있다. 바른정당은 ‘친박 실세들’ 때문에 생겼다. 이들이 기득권을 사수하고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뛰쳐나왔다. 우리도 한국당처럼 친박 핵심들에 맞설 수 있는 자객들을 보낼 것이다. 약한 사람을 지역구에 내세우면 전부 잡아먹힌다. 때문에 특급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바른정당 조강특위는 지역별 중요도에 따라 1·2·3차로 나눠 조직위원장을 임명한다고 알려졌다. ‘친박 8적’으로 불리는 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에 자객 역할을 맡을 조직위원장이 우선적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친박 8적은 서청원(경기 화성갑) 최경환(경북 경산) 윤상현(인천 남구을) 김진태(강원 춘천) 홍문종(경기 의정부을) 이장우(대전 동구) 조원진(대구 달서구병) 이정현(전남 순천) 의원 등 8명이다.
이런 가운데 김성회 전 의원이 서청원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단독으로 지원해 눈길을 끈다. 김 전 의원은 서 의원 등 친박 핵심들과 악연이 깊은 인물이다. 지난해 7월 18일 친박 핵심인 최 의원과 윤 의원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뜻’이라며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변경하라고 압박하는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불거진 바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