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카이돔에서 WBC 경기를 치른 국가는 총 4개국. 아시아라운드 A조에 함께 속했던 한국과 네덜란드, 이스라엘, 대만이다. 한국 대표팀에는 고척스카이돔이 익숙한 선수가 많았지만, 다른 세 나라 선수들은 처음으로 한국의 돔구장 그라운드를 밟아봤다. 다행히 모두 찬사를 쏟아냈다. 궈타이위안 대만 감독은 “아름다운 경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설에서 경기를 하게 돼 기쁘다”며 “일본 도쿄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네덜란드의 헨슬리 뮬렌 감독도 “내부 시설을 보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고, 시설 퀄리티가 높다”는 극찬을 보냈고, 제리 웨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 역시 “관리가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실내 경기장인데도 아름답고, 내야와 외야 모두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사실 고척스카이돔은 개장 초기에 많은 단점을 지적받았다. 특히 주 전광판은 위치와 크기, 가독성 모두 프로야구 경기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그러나 KBO와 서울시가 WBC 개최를 준비하면서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전광판 교체는 그 가운데 최우선 과제였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WBC를 최적의 상태로 치르기 위해 많은 변화를 줬다.
2월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을 앞두고 신규 전광판 점등 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 왜 한국은 그동안 WBC 유치를 못했나
2006년 출범한 WBC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다. 프로야구 리그가 활성화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늘 1라운드가 열렸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일본과 대만에서만 개최됐다. 3월에 열리는 대회 시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외부 기후 영향을 받지 않는 돔구장이 많다. 대만은 한국이나 일본보다 날씨가 훨씬 따뜻하다. 반면 한국의 3월 기온은 국제대회를 유치하기엔 너무 쌀쌀하다. 대만보다 훨씬 수준 높은 리그를 운영하는 한국이 그동안 WBC를 유치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다. 그래서 돔구장은 프로야구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올해는 달랐다. 2015년 11월 국내 최초의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이 문을 연 덕분이다. 개장 뒤 첫 공식 야구 경기는 2015 프리미어12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친선 경기였다. 첫 경기부터 ‘국가 대항전’이 열린 것이다. KBO는 여세를 몰아 지난해 3월 WBC 조직위원회에 2017년 열리는 4회 대회 1라운드 조별 예선 경기 유치를 신청했다. 당연히 ‘겨울에도 야구를 할 수 있는’ 돔구장의 존재를 장점으로 앞세웠다. 2013년 1라운드 개최국인 대만도 일찌감치 개최권을 신청해 한국과 경쟁했지만, 한국의 개최가 유력해지자 발표 직전 유치 신청을 공식 철회했다.
그 사이 KBO는 고척스카이돔 관리 주체인 서울시설공단에 ‘WBC 경기가 한국에서 열리게 되면 전광판을 더 큰 것으로 교체할 수 있게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유치가 결정된 뒤 준비를 시작하면 너무 늦을 수도 있는 상황. 미리 제반 준비를 해놓아야 하루라도 일찍 교체 작업에 착수할 수 있어서다. 서울시설공단도 구두로 KBO의 의사를 접수한 뒤 수시로 서울시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때마침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척돔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관전하다 “전광판이 너무 작아 보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WBC 유치가 8월 들어 최종 결정되자 전광판 교체 작업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추가 경정 예산이 편성됐고, 서울시의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됐다. 원래 전광판이 있던 위치에 좌석을 더 늘리는 대신, 1루와 3루 양쪽 측면에 두 개의 전광판을 설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약 33억 원을 들여 이전보다 훨씬 좋은 시설의 ‘쌍둥이 전광판’을 새로 설치했다.
# 고척스카이돔 전광판 교체는 왜 의미 있나
기존 고척스카이돔 메인 전광판은 가로 22.40m, 세로 7.68m 규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개장한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전광판(가로 36m, 세로 20.4m)보다 가로, 세로가 모두 10m 이상 작았다. 국내 최초 돔구장의 체면이 서지 않는 크기였다. 게다가 구장 크기에 비해 전광판이 너무 작으니 관중은 물론 선수들도 전광판에 나타난 정보를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고척스카이돔을 아마 야구 전용구장으로 지으려다 프로 구장으로 전환되면서 생긴 단점이었다.
대대적인 단장을 한 고척스카이돔.
게다가 그 전광판이 하나가 아닌 둘이다. 경기장 1·3루 연결 통로 상단에 각각 설치됐다. 전광판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경기장 양쪽에 설치된 쌍둥이 전광판의 특성에 맞게 두 전광판에는 공격팀과 수비팀 정보를 각각 다르게 표출할 예정”이라며 “그동안 외야 관람석에 5140석이나 정보 사각지대가 발생하던 불편함도 없어졌다. 기존 관람객들에게는 아마도 체감상 이전보다 3배 가까이 크게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대회용 전광판으로도 손색이 없다. 기존 전광판은 최대 8자까지만 영문 표기가 가능했지만, 새 전광판은 영문을 20자 넘게 표출할 수 있다. 복잡하고 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이름을 무리 없이 표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운영과 제어 시스템도 개선됐다. 경기 도중 전광판 장애가 발생하면 백업으로 자동 전환돼 즉각적인 복구가 가능하다. WBC 기간 동안은 물론, 앞으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모든 야구 경기에도 모두 해당될 장점이다.
# 그라운드 관리는 어떻게 하나
물론 전광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최적의 상태로 경기할 수 있는 그라운드 상태를 갖추는 일이다. 일단 고척스카이돔의 인조 잔디를 메이저리그 잔디 수준으로 재정비하는 일이 필요했다. 메이저리그 구장 유지 관리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머레이 쿡이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해 직접 구장 상태를 점검하고 정비 작업에 참여했다.
사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완전 돔형태의 구장을 홈으로 쓰는 구단은 탬파베이 하나뿐이다. 그 외에 6개 돔구장은 고척스카이돔과 달리 개폐식으로 지어졌고, 나머지 23개 구장은 야외 구장이다. 천장이 열리지 않는 완전 돔구장은 잔디가 생장할 수 없는 구조라 천연이 아닌 인조잔디를 깔 수밖에 없다. 또 겨우내 고척스카이돔에서는 대형 아이돌 가수들의 콘서트를 비롯한 문화 행사가 끊임없이 열렸다. 잔디가 항상 눌려 있고, 파일 자체가 망가지는 위험에 자주 노출됐다. 이 때문에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지난해 8월 WBC 유치가 결정된 뒤 독일제 잔디관리 전용 기계를 도입했다. 잔디 안에 고무 재질의 칩과 모래의 일종인 규사가 들어 있는데, 이 기계가 충진재들을 고르게 펴주는 기능을 한다. 눌린 잔디를 다시 세우고, 이물질과 손상된 파일을 제거하는 데도 사용된다.
고척스카이돔의 공식 개장 경기였던 한국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친선 경기. 사진 출처=서울시설공단 고덕스카이돔 홈페이지
흙이 깔리는 인필드 구간도 잔디만큼 중요하다. 머레이 쿡을 비롯한 메이저리그 자문위원들은 서울시설공단에 “WBC가 진행되는 모든 구장의 흙이 동일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를 했다. 지난해 9월부터 세 차례에 걸친 회의를 마쳤고, 지난 1월에는 마침내 기존 흙을 걷어내고 새로 공수한 메이저리그 흙을 깔아 평탄화하는 작업을 했다. 마운드 클레이, 인필드 믹스, 컨디셔너라는 세 종류의 흙이 고척스카이돔에 도포됐다. 또 개막을 2주 정도 앞둔 시점에서는 다시 메이저리그 크루가 입국해 홈플레이트와 투수판, 불펜을 포함한 각종 베이스를 모두 메이저리그 규격으로 교체했다. 현지 스태프 4명과 공단 인원 6명, 그리고 넥센·삼성·SK가 지원한 인원 5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이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야구장 관리 노하우와 서울시설공단의 고척스카이돔 관리 노하우가 더해져 이렇게 성공적인 밑바탕이 만들어졌다. 물론 대대적인 새 단장이 끝났다고 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척스카이돔을 관리하는 그라운드 키퍼들은 서울 라운드 기간 내내 새벽 철야 정비 작업을 각오해야 했다. 각 나라 공식 훈련과 연습경기, 평가전, 그리고 본 대회를 치르는 동안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운동장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고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려면 총 4시간이 필요하다. 그라운드를 정비할 시간은 야간 경기가 모두 끝나는 새벽 시간밖에 없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WBC 사무국이 가장 강조한 ‘안전’과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불규칙 바운드를 최소화하기 위한 그라운드 흙 수분 관리가 필수였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몸은 힘들지만, 한국 최초의 돔구장에서 열리는 최초의 WBC를 우리가 준비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일본 야구 심장’ 도쿄돔의 추억…WBC·프리미어12 ‘기적 드라마’ 연출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심장’으로 불리는 구장이다. 1988년 3월 개장해 올해로 30년째를 맞는다.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돔구장이다. 최고 명문구단으로 꼽히는 요미우리가 홈으로 쓰고 있다. ‘국민 타자’ 이승엽이 한때 요미우리 4번 타자로 활약하면서 도쿄돔 천장을 직격하는 타구를 날린 적도 있다. 열린 구장에서라면 홈런이 되고도 남을 타구였지만, 돔 천장에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져 2루타로 인정됐다. 가압 공기를 사용해 돔 지붕을 부풀리는 에어돔 방식. 돔 내부 기압을 야구장 밖보다 0.3% 높게 유지해 압력차로 돔 형태를 유지한다. 천연잔디가 자랄 수 없는 돔구장의 특성상 필드 터프 인공잔디를 쓰고 있다. 미네소타 홈구장인 메트로돔을 모델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돔을 짓는 데 투입된 돈은 약 350억 엔(약 3525억 원). 야구 경기를 할 때는 입석 4000명을 포함해 총 4만 6000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 센트럴리그 라이벌팀인 한신의 고시엔구장(4만 7800명)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에서 두 번째로 수용 인원이 많은 야구장이다. 한국에는 3만 석을 넘는 규모의 야구장이 아예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크기다. 일본에는 돔구장이 유독 많다. 도쿄돔 외에도 삿포로돔(니혼햄), 나고야돔(주니치), 오사카 교세라돔(오릭스), 후쿠오카 야후오크돔(소프트뱅크), 세이부돔(세이부)까지 양대 리그 12개 팀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6개 구단이 돔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2006년 첫 회부터 올해 4회 대회까지 매년 도쿄돔을 대회 장소로 선택했다. 그만큼 도쿄돔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상징적인 장소다. 특히 한국 야구는 도쿄돔에 얽힌 추억이 많다. WBC와 프리미어12를 비롯한 숱한 한일전에서 영욕의 역사를 아로새긴 장소다. 첫 도쿄돔 경기는 1991년 제1회 한일 슈퍼게임. 김응용 감독이 선동열, 송진우, 이순철, 김기태 등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참가했다. 그러나 도쿄돔에서 열린 첫 판에서 요미우리 에이스였던 구와타 마스미를 공략하지 못했고, 아키야마 코지와 오치아이 히로미쓰에게 연속타자 홈런을 맞아 3-8로 졌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도쿄돔 맞대결도 각각 1995년과 1999년에 다시 열린 한일 슈퍼게임 경기였지만, 두 차례 모두 0-0과 8-8로 비겨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한국은 2006년 초대 WBC에서 마침내 설욕의 기회를 잡았다. 도쿄돔에서 열린 1라운드 예선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8회 이승엽이 승부를 뒤집는 역전 2점 홈런을 작렬했다. 이승엽이 만든 1점차 리드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단단하게 지켰다. 마지막 타자가 일본 대표팀 주장 스즈키 이치로라 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3-2 승리. 2009년 2회 WBC는 더 극적이었다. 1라운드 첫 경기에선 ‘일본 킬러’로 유명했던 김광현을 내보내고도 2-14로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그러나 한동안 상처로 남을 듯했던 굴욕적 패배의 여운은 단 이틀 만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봉의사’ 봉중근의 5⅓이닝 무실점 선발 역투와 ‘신 해결사’ 김태균의 천금 같은 결승타를 앞세워 1-0으로 승리했다. 가장 짜릿하고 드라마틱한 설욕의 기쁨을 맛봤다. 2013년 3회 WBC에선 한국이 다시 도쿄돔으로 향할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2년 뒤 열린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는 또 한 번 한일전 역사에 명장면을 아로새겼다. 도쿄돔에서 개최국 일본을 만나 극적인 역전극을 연출해냈다. 당시 한국은 상대 선발 오타니 쇼헤이의 괴력투에 제압당하면서 8회까지 0-3으로 뒤진 상태였다. 그러나 패색이 짙던 9회초 연속 안타 행진으로 한꺼번에 4점을 뽑아내면서 단숨에 경기의 결말을 4-3 승리로 바꿔버렸다. 결국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결승에 올라 대회 초대 우승국으로 이름을 남겼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