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와디 강변에서 여름을 맞는 사람들.
이라와디강은 1989년 군부정권이 이름을 에야와디강(Ayeyarwady River)으로 바꾸었지만 이곳 신문들까지 아직은 이라와디로 표기를 합니다. 이 강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한 지류들이 북부 카친 주(State)에서 합류해 미얀마 주요 도시를 가로질러 흘러갑니다. 북부 미찌나, 중부 만달레이와 바간, 이라와디 삼각주인 보갈레이(Bogalay)를 거쳐 안다만해로 흘러갑니다. 하류인 에야와디 구(Division)는 곡창지대로 미얀마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됩니다.
강은 흐르다 중부 만달레이에서 강폭을 크게 넓히며 숨을 고릅니다. 저멀리 잉와 브릿지와 샤가잉 브릿지 사이로 드넓은 바다를 이룹니다. 이라와디는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밍군에서 바라볼 때는 장엄하며, 바간에서 바라볼 때는 평화롭기만 하고, 9군데로 갈라지는 삼각주에서 바라볼 때는 목가적이기만 합니다. 이 강을 따라 영국군이 증기선을 타고 오갔습니다. 지금도 북부에는 큰 항아리를 짓는 마을이 있습니다. 조각배에 항아리를 싣고 그걸 팔기 위해 남쪽으로 긴 여행을 떠납니다.
작년 10월에 찍힌 이라와디강 돌고래 사진. 미얀마 영자신문에 실린 외신보도다.
오늘은 이라와디 잉와 강변으로 왔습니다. 영국과 전쟁하던 시절 만든 3곳의 요새 중 하나입니다. 태국과의 전쟁에서는 늘 이겼는데 영국과는 3차례나 패하고 식민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강변에는 이 슬픈 요새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나와 미역을 감고 빨래를 합니다. 이렇게 강가에 서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 구상이 쓴 ‘강가에서’입니다. 이 시는 여의도 한강공원에 있는 구상 시인의 시비에 적힌 시입니다.
영국과의 전쟁 당시 만들어진 이라와디강 요새.
내가 이 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이 그리움과 염원은/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그 어느 때고 이뤄질 것이다.
저 망망한 바다 한복판일는지/저 허허한 하늘 속일는지/다시 이 지구로 돌아와설는지/그 신령한 조화 속이사 알 바 없으나
생명의 영원한 동산 속의/불변하는 한 모습이 되어
내가 이 강에다/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이 그리움과 염원은/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그 어느 때고 이뤄질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시 ‘초토의 시 - 적군 묘지 앞에서’로 알려진 구상 시인은 실은 강의 시인입니다. 강을 소재로 많은 연작시를 썼습니다. 실제로 낙동강과 한강 근처에 오래 사셨습니다. 저의 대학시절 은사이셨습니다. 프랑스 시를 배우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취직을 해서도 가끔 찾아뵙던 여의도 시범아파트 ‘관수재’가 그립습니다. 그무렵 연작시 ‘강’을 쓰고 계셨고 강처럼 우리를 너그럽게 받아주셨습니다. 오늘 모처럼 이라와디 강가에 나왔습니다. 슬플 때 찾아왔던 강.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어제의 눈물들도 모두가 물방울처럼 하나가 되어 언젠가는 푸르른 강물로 흐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