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시범경기는 한국 팬들이 기다려왔던 경기였다. 다저스의 류현진이 시범경기 첫 등판을 예정했었고, 자이언츠의 황재균이 출전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다면 원래 라이벌이었던 두 팀의 경기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류현진의 허벅지 안쪽 부상과 황재균의 출전이 무위로 끝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몸 상태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보호 차원에서 등판을 미룬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번 라이브피칭(25일)을 마치고 왼 허벅지 안쪽 근육(내전근)에 약간의 통증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로버츠 감독은 MRI 촬영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류현진은 굉장히 좋은 모습으로 캠프를 시작했다. 최근 계속된 일정 속에서 피칭을 많이 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면 조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3월 2일, 류현진은 마에다 켄타, 브랜든 맥카시 등 동료들과 함께 불펜피칭을 했다. 불펜피칭에 앞서 스트레칭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류현진의 모습에선 어떤 이상 증세를 찾아볼 수 없었다. 트레이너가 요구하는 모든 동작을 따라하면서 몸을 풀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동작에도, 다리를 높이 들고, 무릎을 꺾는 몸 풀기에서도 류현진의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였다.
이후 류현진은 동료 선수들과 함께 불펜으로 이동했다. 로버츠 감독과 허니컷 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불펜피칭을 소화했는데 이전 불펜피칭 때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투구수는 모두 35개.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릭 허니컷 투수 코치와 불펜피칭 도중 자주 얘기를 나눴다는 사실이다.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불펜피칭이 끝나자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며 만족감을 나타냈고, 한국시간으로 5일에 예정된 라이브피칭을 보고 나서 다음 일정을 세우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기자는 이날 류현진의 공을 직접 받았던 불펜포수 윈스턴 소이어에게 소감을 물었다. 윈스턴 소이어는 이전에도 류현진과 배터리를 이뤄 불펜피칭을 소화한 적이 있어 그때랑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이전보다 오늘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류현진도 편하게 던졌고, 스피드와 공회전도 좋았다. 내가 보기엔 (류현진의 투구를 보며)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윈스턴 소이어는 이날 타석에서 류현진의 투구를 지켜봤던 아드리안 곤잘레스가 전한 얘기를 귀띔했다.
“내 옆에 서 있던 곤잘레스도 류현진이 잘 던진다고 말하더라. 좋은 피칭을 했고,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팔꿈치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초반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아드리안 곤잘레스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 멕시코 대표팀 선수로 뛸 예정이다. 이날 류현진의 불펜피칭 때 타석에 들어선 건 선구안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모든 투수들의 불펜피칭을 지켜본 후 다른 장소로 이동 중인 허니컷 투수코치에게 다가가 류현진의 몸 상태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허니컷 코치는 류현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항상 선수들의 몸 상태에 대해 생각하는 게 내 직업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과 걱정하는 부분에는 차이가 있다. 류현진은 지난해에도 허벅지 쪽이 아프다고 했던 이력이 있다. 올해도 라이브 피칭 후 통증이 약간 느껴진다고 해서 악화되는 걸 막으려고 며칠 동안 무리하지 않도록 훈련량을 조절했다. 몸 상태가 좋아졌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불펜피칭 일정을 잡은 것이고, 오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언제쯤 류현진을 시범경기에서 볼 수 있는지다. 허니컷 코치는 지난 2년 동안 부상과 재활을 반복했던 류현진이기 때문에 절대 무리한 일정은 잡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우리도 류현진이 시범경기 마운드에 서는 걸 보고 싶다. 지금은 그 시기가 언제이냐는 게 중요치 않다. 부상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상을 느끼면 그걸 해결해 나가는 게 시범경기 등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린 류현진의 몸 상태를 매일 체크할 것이고, 선수도, 의료진도, 또 코칭스태프의 눈에도 이상이 없다는 확신이 섰을 때 시범경기 일정이 나올 것이다.”
한편 류현진은 불펜피칭 후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과 만났다. 몸에 이상이 없을 때 나오는 류현진 특유의 모습이었다. 그는 시범경기 등판이 미뤄진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지난번에 라이브피칭하고 나서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그때 허니컷 코치의 말로는 불편한 몸으로 시범경기 등판을 강행하는 것보단 치료를 받은 후 불펜피칭을 한 차례 더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나도 수긍했기 때문에 등판 일정을 조절한 것이다. 수술한 부위인 어깨나 팔꿈치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허벅지 쪽만 문제가 있어서 계속 치료를 받았다.” 허벅지 안쪽에 통증이 생긴 이유에 대해선 “오랜만에 힘을 주면서 투구하다 보니 통증이 생긴 것 같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불펜피칭을 하며 허벅지에 전혀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는 류현진. 선수 입장에선 하루 빨리 시범경기에 등판하고 싶지 않을까?
“토요일에 라이브BP를 하고 나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주위에선 내 상황을 불안한 시각으로 보기도 하지만 지금까진 잘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오늘 공 던지면서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류현진이 수술 부위에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오게 된 만큼 서두르지 않고 건강한 몸을 만든 후에 시범경기에 올라도 늦지 않다. 류현진은 지금 조급한 마음과 홀로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류현진 새 통역’ 브라이언 리, 다저스 패밀리 80명 이름 암기 신고식 통과 류현진, 박병호, 김현수의 공통점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모두 새로운 통역을 구했거나 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에게 통역은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영어를 한국어로 선수에게 전달하는 일을 넘어 코칭스태프와 동료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도록 귀와 입이 돼줘야 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입성 후 3명의 통역과 함께했다. 처음에는 다저스 직원이었던 마틴 김과 환상적인 호흡을 맞췄고, 이후에는 친형제 같은 우애를 보였던 아담 김과 부상과 재활을 함께하며 남다른 정을 쌓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선 처음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통역을 만났다. 이름은 브라이언 리(한국명 이종민). 오승환 통역인 구기환 씨와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리는 처음 경험하는 통역 업무가 신기하고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책임감도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최근에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브라이언 리에게 80여 명의 다저스 가족들(코칭스태프, 선수들, 구단 직원들, 클럽하우스 직원을 포함) 이름을 모두 외우라고 지시했다. 자신이 10명을 지목했을 때 3명 이상 틀리면 틀린 숫자대로 류현진이 러닝트랙을 뛰기로 약속했다. 브라이언 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 결국 3일 후 로버츠 감독의 ‘시험’이 치러졌고, 브라이언 리는 10명 중 1명만 틀린 덕분에 류현진은 벌칙을 수행하지 않아도 됐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의 통역인 구기환 씨는 미국에서 선수 못지않은 유명세를 얻고 있다. 선수단은 물론 현지 미디어들에 친절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최고의 통역’이라고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구기환 씨는 세인트루이스 구단으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그의 입사 1주년을 기념하는 깜짝 파티와 함께 구단주의 축하 편지, 그리고 오승환의 사인이 담긴 방망이엿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오승환이 WBC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구기환 씨도 함께 대표팀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 메이저리거인 오승환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구기환 씨를 한국대표팀에 파견하기로 했고, 구 씨는 ‘한국 홍보 담당’으로 오승환과 함께 대표팀에 합류했다. 구 씨는 대학에서 스포츠경영을 전공한 터라 이후 전공을 살려 구단 관련 일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런 그에게 메이저리거의 통역 업무는 선수단 일을 배우는 데 중요한 기회이자 경험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지난해 박병호를 도왔던 김정덕 씨는 원래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에서 외국인 선수 통역으로 활약했었다. 박병호와 인연을 맺고 지난 시즌 동안 박병호와 동고동락했는데 올해는 LG 트윈스 구단 직원으로 입사하면서 박병호와 아쉬운 이별을 했다. 박병호는 현재 통역을 구하고 있는 중인데 조만간 결정이 날 예정이다. 볼티모어의 김현수도 이전 통역이었던 대니 리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통역을 찾고 있다. 한편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의 통역은 어떠할까.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와 LA 다저스의 마에다 켄타의 통역을 비교해보면 선수에 따라 통역의 특징도 구분되는 느낌을 준다. 평소 과묵하고 말수가 적은 다르빗슈 유의 통역은 선수에 맞추려는 듯 조용하고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편이다. 그러나 쾌활하고 웃음이 많은 마에다의 통역 윌리 아이어토는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춤을 추거나 수비 훈련 시 1루에서 공을 받아주는 등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응한다. 다저스 선수들 모두 마에다의 통역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현상. 그렇다면 통역의 연봉은 어떻게 될까. 경력이 있는 통역은 7000만~8000만 원을, 초보자의 경우에는 약 5000만 원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 장점은 시즌 내내 선수단과 함께 움직이다 보면 지출이 거의 없다는 사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