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김 전 대표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모호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대통령 임기 3년 개헌안을 앞세워 직접 출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선택이 임박했다. 일요신문 DB
올해 초 정치권에선 김종인 전 대표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손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파다했다. 반 전 총장은 김 전 대표를 킹메이커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에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은 김 전 대표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대통령 임기 단축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도 수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반기문 캠프 합류에 대해 망설였다. 결국 반 전 총장은 대권 레이스에서 백기를 들었고, 둘의 조합은 물거품이 됐다.
최근엔 김 전 대표가 안희정 충남지사 지원사격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됐다. 김 전 대표는 “안희정은 초기 노무현, 문재인은 말기 노무현이라는 얘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돈다”면서 “조언을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라며 안희정 캠프 합류 가능성을 내비쳤다. 안희정 캠프 총괄본부장인 백재현 민주당 의원은 2월 2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 전 대표가 안 지사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안 지사 측 또한 김 전 대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있다. 일각에선 “안 지사가 집권 후 김 전 대표에게 경제 전권을 줬다”는 식의 딜이 오갔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안 지사는 2월 25일 “김 전 대표를 포함해 정권 교체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혁신을 위해 힘을 모으는 길이 있다면 동지와 국민으로 단결시키겠다”고 했다. 2월 28일엔 “대통령이 되면 국회 개헌특위 논의를 촉진시킬 것이고, 그 결과가 임기 단축을 포함한다면 따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개헌론자인 김 전 대표를 향한 러브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여전히 ‘제3지대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 전 대표는 2월 28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정운찬 전 총리와 함께 <긴급토론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제3지대 가능성이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유 의원도 “김 전 대표가 민주당을 나와 (연대)할 생각이 있으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당 차원에서 검토해 볼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경제를 고리로 연대가 되냐”며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도 상황은 비슷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은 김 전 대표에게 국민의당 입당을 거듭 요청했다. 당내 유력 대권후보인 안철수 전 대표도 김 전 대표를 향해 구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2월 10일 “국민의당으로 갈 일은 절대로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에선 김 전 대표의 국민의당 합류 가능성을 낮게 점치지만 향후 안 전 대표의 지지율 등에 따라 속단하긴 힘들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친문 진영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정파가 김 전 대표를 끌어들이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정치 구도 상으로 보면 김 전 대표는 중도 확장성이 매우 있는 인물이다. 보수 진영에서 봐도 진보 쪽으로 확장성이 있고, 진보 진영에서 봐도 보수 쪽으로 확장성이 있다. 그의 중도 확장성은 대선 후보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상한가를 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경제 민주화’를 꼽았다. 그는 “김 전 대표는 ‘경제 민주화’라는 다섯 글자로 상징된다. 국민들은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때문에 국민들은 김 전 대표와 경제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동일시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하니까 김 전 대표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의 영향력은 이미 여러 번의 굵직한 선거를 거치면서 입증됐다. 김 전 대표는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대위원을 맡아 새누리당 승리에 일조했다. 같은 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중앙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핵심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표는 박근혜 당시 후보 앞에서 “내가 박근혜를 이기면 (박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고, 내가 지면 대선에서도 진다”고 말할 만큼 자신감을 내비쳤다.
2016년 치러진 4·13 총선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호남 지역구 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에서 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를 어렵게 영입했다. 김 전 대표는 공천과 총선 과정에서 전권을 휘둘렀고, 결과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대승이었다. 민주당은 123석을 차지해 원내 제1당을 차지했다. ‘문재인 대세론’이 상수인 대선에서 잠룡들이 김 전 대표를 영입하려고 하는 것 역시 이런 과거의 선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의 출마설이 확산되고 있다. 김 전 대표가 ‘3년 임기단축 대통령’ 카드로 직접 선거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동안 김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뒤 개헌을 매개로 비문 세력을 규합한 뒤 스스로 ‘킹’ 자리에 오르려 한다는 시나리오는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 김 전 대표가 3년간의 과도 정부 수장을 맡고 2020년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마무리한 뒤 다음 정부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넘겨주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해 김 전 대표는 3월 3일 “헌재의 탄핵 결정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다 참고를 해야지 무슨 결심이든 할 것 아닌가”라고 했다. 김 전 대표의 측근들 또한 “요즘 (김 전 대표가) 탈당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중에서도 김 전 대표의 대선 출마를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음은 전계완 정치평론가의 견해다.
“지금까지와 달리 스스로 킹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본다. 첫 번째 징조는 반 전 총장이다. 반 총장이 드롭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김 전 대표 때문이다. 당시 김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했을 것이고 결국 반 전 총장보다 본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다만 본인이 스스로 레이스를 뛴다고 할 경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현재로선 제3지대에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좌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정당 간 통합이 아닌 대선 주자 간 연대를 통해서 출마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본인이 안 된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본인이 킹이 되려고 시도할 것이다.”
반면,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김 전 대표는 현실주의자다. 탄핵 심판 선고가 있기 전까진 김 전 대표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선고가 나온 뒤 국면이 바뀌면 상황을 보면서 액션을 취할 것이다. 선도적으로 무엇을 하진 않을 것 같다”라면서 “김 전 대표가 탈당한다고 해서 비문계가 따라서 탈당하겠느냐. 그렇게 보면 답은 나온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탈당에 이은 독자 출마설에 부정적 입장인 셈이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