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청와대 압수수색 및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등이 무산된 것은 아쉬운 장면으로 꼽힌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도 다소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특검 관계자들은 인력과 시간 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의미 있는 내용들을 확보했지만 여러 제약으로 인해 진행하지 못했다고도 귀띔했다.
박영수 특검팀이 3일 오후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를 위해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준비기간 포함 90일간의 수사를 끝낸 특검은 이제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공소를 유지하는 일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수차례 “수사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공소유지다. 최대한의 인력을 배치해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피의자들 대부분이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검의 최종 성적표는 법원에서 이들에 대한 죄를 얼마나 증명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특검에선 공소유지를 위해 박영수(사법연수원 10기) 특검을 필두로 박충근(17기)·이용복(18기)·양재식(21기)·이규철(22기) 특검보가 총력전 채비를 갖추고 있다. 파견검사 중에는 윤석열(23기) 수사팀장과 양석조(29기) 부장검사 등이 잔류했다. 조상원(32기)·박주성(32기)·김영철(33기)·최순호(35기)·문지석(36기)·호승진(37기) 검사도 남았다. 수사관 10명도 수사 결과 정리 등 공소 유지를 도울 예정이다.
그러나 특검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우선 재판에서 다툴 사안들이 하나같이 녹록지 않다. 블랙리스트,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 삼성그룹 뇌물죄, 비선진료 등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내용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김기춘 전 실장과 이재용 전 부회장 등 거물급 피의자들은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특검의 칼에 대비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28일 첫 재판에서부터 변호인을 통해 “구속수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특검”이라며 역공을 시작했다.
이를 두고 특검 관계자들은 수사 기간 연장이 무산된 부분을 아쉬워했다. 특검의 한 관계자는 “정해진 시일에 결과를 내려다보니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조금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삼성 뇌물죄만 하더라도 특검 전원이 달려들어야 할 사건 아니냐. 수사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면서 “최소한의 인력으로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특검으로선 피의자들의 대규모 변호인단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털어놨다.
특검은 마무리 짓지 못한 수사 대부분을 검찰로 넘겼다. 박 대통령 관련 자료, 우병우 전 수석 개인비리, 세월호 7시간 및 최순실 일가 재산 의혹 등이 그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특검이 피의자로 입건한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핵심이다. 앞서 특검은 박 대통령을 시한부 기소중지하지 않고 입건한 상태에서 검찰로 이첩했다. 박 대통령 사건을 넘겨받는 검찰이 즉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 대선 일정 등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변수는 산적해 있다. 통상 검찰은 대선 기간 민감한 정치적 사건들의 경우 수사를 미루곤 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최근 우병우 전 수석과 검찰 수뇌부들 간 통화가 공개된 것을 두고서도 ‘검찰 흔들기’의 일환 아니냐는 얘기가 파다하다. 박 대통령을 향한 검찰의 칼끝을 무디게 하려는 특정 세력의 의도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앞서의 특검 관계자는 “박 대통령 수사만큼은 끝을 냈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 측 역시 이를 예상하고 특검 수사를 피했던 것 아니겠느냐”면서 “최서원(최순실)의 국정농단 못지않게 박 대통령 뇌물죄 조사도 수사의 본류인 만큼 검찰 역시 무거운 사명감을 갖고 임하길 바란다. 탄핵심판이나 대선 일정 등 외부 여건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 수사 이외에도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의미 있는 첩보들을 입수하고도 다루지 못한 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일요신문>은 특검 및 사정당국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그 중 일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시간과 인력만 충분했더라면 지금 재판에 넘겨졌거나 공식 수사를 했던 것들 말고도 휘발성이 큰 또 다른 사건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는 향후 검찰 수사나 또 다른 특검에서 꼭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특검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최순실 일가의 숨겨진 재산을 찾는 데 공을 들였고, 상당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 최순실 일가와 박 대통령 재산 간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최순실 일가 40여 명에 대한 계좌 추적을 벌인 것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특검은 최순실 및 박 대통령 재산과 관련된 참고인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고, 실제로 박 대통령 자산 형성 과정에 최순실 등이 관여한 흔적도 포착했다. 또 최순실 일가의 국내·외 은밀한 재산들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검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권사업과 관련해서도 특혜를 받은 것으로 의심받는 몇몇 업체들에 대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 업체들 역시 최순실 일가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다고 한다. 한 참고인은 특검 조사에서 “특정 업체가 동계올림픽 사업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 고위 관계자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특검 관계자도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의혹 역시 수사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라고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4월 치러진 총선 때 수상한 자금이 여권 의원들에게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검 관계자는 “대기업 임원 및 최순실 측근 등의 진술이 있었다. 기업에서 부적절하게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돈이 최순실 측 주도로 일부 여권 후보 선거 자금에 지원됐다는 게 골자였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특검 관계자도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팩트’라고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진술이나 자료를 종합해봤을 때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일 경우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최순실 측이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의미 있는 진술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여권은 이른바 ‘진박 논란’으로 내홍을 겪었다. 박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고, 친박 핵심부는 진박 후보 당선에 사활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친박계의 지원사격이 있었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 특검 수사 도중 나타난 석연치 않은 총선 자금 흐름 역시 그 배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뒤를 따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