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내 B 제약사는 준종합병원 S 병원에 리베이트를 주기 위해 의약전문업체 C를 이용한다. 이를 위해 B 제약사는 C 업체에 평소 집행하는 광고비의 3배만큼의 광고비를 지급했다. C 업체는 B 사로부터 받은 광고비 중 자신의 몫을 제하고 남은 금액을 S 병원에 지급했다. 결론적으로 B 제약사는 C 업체를 끼고 S 병원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이다.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제약업계 리베이트 관행이 여전하다. 지난 수년간 제약업계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사정당국 등이 여러 차례 조치를 취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이를 비웃는 듯한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으로 뇌물이나 접대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약업계만큼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인 방식의 리베이트가 오가고 있다.
비록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제약업계는 ‘공정경쟁규약’의 적용을 받는다. 약사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정경쟁규약은 식사비 등에서 김영란법과 충돌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식사비 금액 한도가 3만 원인 반면 공정경쟁규약의 식사비 한도는 10만 원으로 3배 이상이다. 비록 제약사나 의원들이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갑을관계가 뚜렷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식사비 한도가 10만 원이나 된다는 것은 김영란법에 비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10만 원만 해도 많이 줄인 것”이라며 “예전에는 현금봉투뿐 아니라 외국세미나 등을 무료로 보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국·공립 대학병원 소속 교수들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지만 개인병원이나 사설병원 의원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공정경쟁규약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법 적용의 혼선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의 행사와 거기 참석하는 의사들에게도 공무수행사인으로 간주해 김영란법 대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의 A 사는 공정경쟁규약에 제시된 모든 항목과 금액에 맞춰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제약사가 제품설명회에서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호텔 바우처 등은 보건의료전문가 본인 외 그 가족이나 타인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보건의료 전문 한 변호사는 “바우처는 상품권과 마찬가지다”라며 “식사비라도 굳이 바우처로 제공한다면 이것은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볼 수 있고 리베이트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의약업계는 그 행사가 공식적인 데다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큰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제품발표회나 학술행사 등은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법규에 맞춰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리베이트나 접대 관련해서 의료계가 많이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보여준 두 번째 사례는 최근 잦아진 대표적인 리베이트 수법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 같은 수법을 흔히 ‘쓰리쿠션’이라고 하는데, 광고비의 경우 정해진 금액이 없기 때문에 소규모 업체를 통해 제약사가 병원으로 리베이트를 주기 쉬운 구조”라며 “일반인이 들어도 모르는 소규모 업체의 경우 리베이트를 위해 바지사장을 내세운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리베이트 비용을 광고비에 녹여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제약업계 리베이트 수법이 점점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의원과 약국에 제약 영업을 하는 일선 영업사원 사이에서도 리베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영업사원이 접대 장소로 이용하는 단골식당에 법인카드로 거금을 결제하고 현금을 돌려받아 그 돈을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국내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활동비가 나오지 않게 됐다”며 “카드깡이나 영업사원 개인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그 돈으로 영업하고 후에 회사에서 인센티브 형식으로 돌려 받는다”고 설명했다.
영업사원들에 따르면 ‘무형의 리베이트’도 여전하다. 담당 의사의 출장길 픽업은 물론, 담당 의원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 영업의 경우 거래처와 관계 지속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요구라도 거부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앞의 제약 영업사원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비군을 대신 갔다”며 “지금도 시키는 일은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제약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사정당국조차 제약업계 리베이트 근절에 낙관적인 전망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앞의 제약 영업사원은 “의원영업의 경우 (리베이트가) 들어간 만큼 성과가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영업활동을 한 만큼 우리 약을 써주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과징금을 내거나 처벌을 받아도 리베이트로 매출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근절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