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대회 참가 위해 홍콩 방문해 망명 신청, 2개월간의 영사관 생활
지난해 7월 28일 홍콩 언론은 북한 학생의 탈북 소식을 전했고 국내 언론도 이에 주목했다. 학생의 나이가 18세로 전해지자 국내 언론에선 참가자 가운데 홍콩 대회를 포함, 3년 동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리정열 학생으로 추정했다.
북한 학생이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던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은 일부 취재진들이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저녁엔 승강기 가동을 중단할 만큼 보안을 강화했다. 홍콩 정부에서도 “외교 문제와 관련돼 있다.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 창문에 포착된 리정열 학생. 사진출처=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북한 학생의 망명 신청 소식이 전해지고 2개월 뒤인 지난해 9월에는 학생이 홍콩을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홍콩 민영 통신사 <팩트와이어>는 리정열 학생이 2개월 동안 홍콩에 머물렀고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팩트와이어>는 8월 중에 영사관 창문에 포착된 리정열 학생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영상 속의 학생은 웃으며 대화를 나눴고 옷을 벽에 거는 등 방정리를 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리정열 학생의 탈북 소식이 잊힐 때쯤 학생의 탈북 과정이 더 상세하게 알려졌다.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그의 스토리를 올해 2월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리정열 학생은 지난 2014년과 2015년에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해 은메달을 연속으로 획득했다. 18세의 리정열 학생은 세 번째 참가한 지난 홍콩대회에서 탈북을 계획했다고 한다. 19세가 되는 해에는 대회 참가가 불가능해 북한을 벗어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은메달을 획득한 리정열 학생은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2016년 7월 17일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기숙사에서 몰래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 홍콩국제공항으로 향한 리 군은 한국 항공사 직원에게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항공사 직원은 영사관에 연락을 취했다. 리 군은 다시 혼자 영사관으로 가야 했다. 외국인이 영사관으로 가는 것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리 군이 영사관에 홀로 나타나자 직원들이 그의 대담함에 놀랐다는 후문도 전해졌다.
리 군은 새로운 여권과 비자가 발급되기까지 영사관에서 2개월가량을 지냈다. 처음엔 말수가 적었지만 점차 영사관과도 가까워졌다. 영사관은 24시간 내내 리 군과 가까이 붙어있었지만 리 군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 가족 관련 질문은 피했다고 한다. 리 군은 영사관에서 지내며 컴퓨터 게임을 즐겼고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하기도 했다.
수학국제올림피아드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 사진출처=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 자유를 동경한 수학천재
북한은 수학올림피아드가 교육과 과학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대회라고 판단, 영재들을 집중 육성해 참가시켜 왔다. 북한 방송에서는 대회 결과를 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리정열 학생은 이 대회에 2014년부터 3년 연속 북한 대표로 참가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리 군은 북한에서 대회 참가를 위해 홍콩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탈북 계획을 알렸다. 중학교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는 북한 정권의 보복 가능성이 있음에도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아들의 손에 약 200달러를 쥐어줬다. 리 군은 이 돈으로 택시를 탄 것으로 보인다. 리 군이 택시를 탄 거리는 홍콩과학기술대학교에서부터 첵랍콕 섬에 위치한 국제공항에 들러 홍콩 섬의 한국총영사관까지 약 80km였다.
리 군은 2014년과 2015년에도 수학 대회에 참가하며 남아공, 태국을 방문해 북한 밖의 세계에 대해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대회 중 만나는 한국 학생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첫 대회 참가부터 대표단 단장을 맡고 있는 송용진 인하대 교수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과거에는 대회에서 북측 학생과 관계자들을 만나면 대화도 많이 하는 등 교류가 있었지만 2년 전 태국 대회부터는 지나치며 인사 정도만을 할 뿐 남북한 학생들의 접촉이 적었다”며 “학생들이 우리를 기피하는 듯 느껴졌다. 북측 단장과 부단장이 접촉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남북 관계가 경색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만큼 북한 당국의 학생들 관리도 철저했다. 홍콩 언론에서도 북한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여권을 압수당하는 등 철저한 관리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 전에는 남북한 학생들이 다른 나라와 다름없이 잘 어울려 지냈다. 송 교수는 “대회에 나가면 각국 학생들이 함께 생활한다. 4인 1실에서 지내며 식사도 한 식당에서 함께하는 시스템”이라며 “이전에는 우리 학생들이 북한 학생들과 잘 어울리고 탁구를 치며 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국제 대회 외에도 리 군은 TV를 보며 한국을 동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 군은 북측의 강원도에 거주해 남쪽으로부터 약하게나마 신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한국에서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한편 한국에 들어온 리 군은 언어, 문화, 사회, 국제 관계 등에 관한 강의를 듣고 3월부터 대학에 다닐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에 한국에 온 리 군은 탈북민 대상 전형이나 재외국민 특별전형 등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리 군이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 탈북민 단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정원에서 그 학생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그 학생에 대해 알거나 접촉하기가 어렵다”라며 “아무래도 수학 천재로 알려졌고 어린 나이에 혼자서 탈북을 시도한 리 군의 상황이 다른 탈북민과 다른 부분이 있어 국정원이 더 철저하게 관리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