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드배치 확정에 따른 중국 정부의 경제 제재 조치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2007년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경제를 책임졌던 미국 경제가 주춤하고, 대신 중국이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해오면서 한국 내에서는 미국과 중국 중 어디를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안보를 위해 한미 동맹을 중요시했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는 경제에 방점을 두고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북한 문제 해결에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외교 라인에서는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정책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개진됐다. 정부 고위 인사는 “정부의 외교 라인은 미국이 여전한 초강대국이며 동맹국이라는 점, 중국의 경제나 외교 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제기했다. 또 가뜩이나 높은 중국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경우 생길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아세안이나 중동, 남미 등으로 수출을 더욱 다각화할 필요성도 주장했다”며 “반면 경제 라인에서 중국 경제가 부상하고 있는 만큼 중국과 우호 관계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반박이 나오면서 논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 논쟁에서 경제 라인이 우위를 점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은 중국으로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안보보다는 경제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한중 수교(1992년)가 이뤄지기 전에 한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1%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25년 흐른 지난해 대중 무역의존도는 23.4%까지 늘어난 상태다. 반면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하락세다. 1991년 24.4%였던 대미 무역의존도는 지난해 12.2%로 25년 만에 정확하게 반 토막이 났다.
중국을 중시하기로 한 박근혜 정부는 중국이 추진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가를 결정하고, 미국이 만들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는 불참하기로 결론 내렸다. 외교 라인에서는 전략적 차원의 TPP 참가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경제 라인의 중국 의존론에 밀려 무산됐다. 이때부터 미국 정치권에서는 한국은 미국보다 중국에 기운 국가라는 시각이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4조 원이나 내고 얻은 AIIB 부총재직은 부총재를 맡았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부실 감독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날려버렸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더욱 강해진 것은 2015년 9월 3일 중국이 자칭 대일항전승리일이라고 주장하는 전승절에 천안문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에 박근혜 대통령이 미 우방국 정상으론 유일하게 참석한 일이다. 외교가의 주요 관계자는 “당시 미국은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에 불만이 있었지만 그래도 동맹국 대통령이 결정한 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한국 측에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을 결정하자 한국 외교부는 오바마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 시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참배를 계속해서 요청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불쾌해했지만 동맹국인 한국 정부 입장을 고려해 오바마 대통령 연설에 한국인 희생자를 언급하는 것으로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2016년 9월 5일 중국 항저우에서 한·중 정상회담 전 악수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청와대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은 한국이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게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거두면서도 한미 동맹은 등한시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 주장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됐다. USTR은 최근 보고서에서 “FTA 발효 직전 해인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의 한국 수출은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줄었으나 한국 제품 수입액은 130억 달러(약 14조8000억 원) 이상 늘었다”면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출범 이후 친중 행보를 보이던 박근혜 정부는 북핵 위험이 높아지자 다시 외교 방향타를 미국으로 꺾고 사드 배치를 합의했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올리는 정책을 펴다가 기업들에게 선회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갑작스레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롯데 등 한국 기업에 보복을 하고 나섰다.
한 경제 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사회고, 중국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회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며 “그동안 ‘공급측면 개혁’, ‘중국제조 2025‘ 등을 내세우며 한국산 제품 수입을 줄일 기회를 보고 있던 중국 정부에게 사드 문제는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이번 사태는 중국의 경제정책 변화도 못 읽고 중국 올인 전략을 써온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의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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