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최후변론에서 자신은 공직을 이용해서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음을 되풀이 강조했다. 최순실 씨의 사리 추구에 대해 몰랐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약속했던 검찰 및 특검과의 대면조사를 받지 않았다. 헌재 변론에 출석해 국회 소추단과 헌재 재판관의 심문을 받지도 않았다. 대통령의 결백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자기의 주장일 뿐이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짜고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사익을 추구하려 했다는 특검의 주장도 헌재나 형사법정에서 범죄로 인정되기 전에는 한쪽의 주장일 뿐이다. 특검의 수사에 이미 그런 한계가 있었다. 두 재단에 대한 기업총수의 기부금이 뇌물이라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만이 아니라 기부에 참여한 다른 기업총수들도 구속대상이었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았다.
헌법이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해 외환과 내란죄가 아니면 형사소추되지 않도록 한 데는 대통령이 그 정도의 중대한 범죄가 아닌 파렴치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유권자들도 그럴 수준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것이라는 함의(含意)가 있다. 사회가 대통령을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우리의 헌정사에서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그 같은 국민의 선의를 배반하여 단죄되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것이다. 범죄의 혐의가 역대 대통령들보다 크다기보다 대통령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월등히 높아진 것을 박 대통령이 인식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 때 안 후보가 두 재단의 설립을 예로 들어 박 대통령의 선의의 정치를 말한 것이 ‘극단적’으로 잘못된 발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가 내세운 여야 정당의 협치(協治) 및 대연정이나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를 극복하자는 비전과도 궤를 같이하는 용기 있는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선의는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선의가 쉽게 배반당하고 바보스러움의 동의어로 치부되는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선의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회는 지탱된다. 정치가 국민들 사이에 최악의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정치에 선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안 후보가 1주일도 못 가 자신의 선의 발언을 버리는 모습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의 수준이자 한국정치의 수준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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