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도 생소한 시기였던 2006년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은별’을 국내에 들여왔다. 은별은 북한이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 2005년 일본 기후(岐阜)에서 열렸던 제4회 세계 컴퓨터 바둑대회까지 대회 통산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8개국 21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이 경연을 펼친 이 대회에서 은별은 9전 전승의 압도적인 전적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은별은 그러니까 지금 ‘알파고’의 선조라고 하면 맞겠다.
김찬우 6단
이후 IT분야 사업에 매진 중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다시 얼굴을 맞댄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이번엔 무슨 소식을 전해주려나 싶었는데 가방에서 휴대폰을 척 꺼내더니 프로그램 하나를 구동시킨다. “나는야 바둑왕? 아하, 태블릿 바둑프로그램인 모양이구나.” 넘겨받아보니 맞긴 맞는데 보통의 바둑 어플처럼 대국을 하거나 사활문제 풀이는 아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교육용 바둑 프로그램입니다. 모바일 게임을 이용해 입문자가 쉽고 재밌게 바둑의 기본 원리를 익힐 수 있도록 해봤어요.”
바둑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는 ‘바둑 입문에 대한 진입 장벽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을까’이다. 바둑은 일단 배워 두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데, 죽고 사는 개념과 기본 규칙 익히는 것이 까다로워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바둑 입문은 대개 책을 통해 이루어져 왔는데 이번에 김 6단은 태블릿 어플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시스템인지 궁금했다.
“책으로 바둑을 배우면 하나하나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해줘야 해요.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가르치기 어렵죠. 그런데 화면으로 즉각 보여주는 모바일 태블릿을 이용하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이해가 빨라집니다. 혹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 가르쳐본 적 있으세요? 정말 딱 10분 집중하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책과 바둑판을 이용해 바둑을 가르친다고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모바일 태블릿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몰입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김찬우 대표가 대한바둑연맹 급수심사평가 회의에서 자신이 개발한 급수심사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태블릿은 ‘싫증’을 예방한다는 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처음 바둑을 배우는 아이들은 또래와의 승부에서(그것이 따먹기라도) 지게 되면 다시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런데 컴퓨터를 이용하면 다르다. 게임이기 때문에 컴퓨터에게 지는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이전에는 30분도 어렵던 수업이 태블릿을 활용한 다음부터는 1시간 20분을 연속으로 수업해도 지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3개월간 수업을 진행한 결과 초등학생이 방과 후 바둑교실에서 1년 정도 배운 학습효과를 얻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5~6세 유치원생 20명을 동시에 바둑수업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김 6단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현재 바둑특성화 초등학교 3곳에서 바둑 교재로 채택됐으며 3월부터 전국 50개 초등학교, 유치원, 바둑학원, 문화센터 등에서 30여 명의 교사가 1000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김 6단의 연구는 바둑계에서 인정받아 (사)대한바둑협회에서는 ‘나는야 바둑왕’을 새로 도입되는 온라인 급수심사 시스템에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6단은 지난 2월 18일 열린 대한바둑협회 심사위원회 회의에서 온라인 급수심사시스템을 시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김 6단은 “상반기 국내 보급 후 하반기에는 10배 이상의 시장이 존재하는 중국 바둑학원을 대상으로 진출하고, 2018년도에는 영미권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한편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김바로미 교수는 “‘나는야 바둑왕’은 기존의 바둑교육 프로그램에서 탈피해 인공지능을 활용함으로써 아동들이 바둑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와 학습을 통해 사고력 신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