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이건희 동영상’에 등장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스타파’ 보도 캡처
실제 3월 8일 검찰은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담긴 동영상을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하도록 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로 선 씨(전 CJ제일제당 부장)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선 부장과 동생 선 씨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발견하고 용처를 캐묻던 중 선 부장이 증거인멸을 시도하자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선 부장이 압수수색을 앞두고 사용 중인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등 증거를 파기하려 했다”면서 “동생으로부터 이 회장의 사생활과 관련한 의혹을 접하고 조선족 출신 유흥업소 여성에게 촬영을 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7월 비영리 언론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선 부장의 동생인 선 씨와 공범 이 아무개 씨가 동영상 촬영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검찰에 따르면 동영상에 등장하는 유흥업소 여성은 ‘이들의 지시로 성매매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진술했다. 또 선 씨 등은 삼성을 상대로 ‘이건희 동영상을 갖고 있다’며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된 선 부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일체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검찰은 동영상이 촬영된 경위와 관련해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를 선 부장에게 추궁했지만 의미 있는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서울 중구 CJ 사옥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CJ 측도 지난 3월 7일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선 씨 구속은 회사와 무관한 개인범죄”라고 못박았다. 선 씨는 “회사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직원을 제출하고 3월 3일 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CJ 관계자는 “개인 범죄라 최근까지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회사는 모르고 있었다”며 “만약 우리(CJ)가 시켰다면 선 씨 등이 왜 우리(CJ) 쪽에 동영상을 팔려고 했겠느냐. (범행) 동기에 대해선 우리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동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2011년 12월~2013년 6월이다. 선 부장은 당시 제일제당 경영관리 부서에 근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홍보나 대외커뮤니케이션 업무가 아닌 총무 업무를 맡았다고 CJ는 설명했다. 퇴직 전에는 일선 대리점의 채권 추심 업무를 맡았다. CJ 측은 이를 근거로 “선 부장이 그런 일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삼성 출신 대기업 관계자도 CJ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기업의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그는 “CJ의 조직적 개입을 의심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실제 동영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CJ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배후가 공개됐을 경우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일일이 ‘윗선’이 지시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일요신문DB
동영상이 촬영된 시기는 삼성이나 CJ나 서로 매우 민감했던 때다. 2012년 2월 삼성가(家) 장남인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상속재산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만 최대 4조 원에 달한 이 소송에 재계는 물론 정치권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재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당시 두 그룹 간 전쟁이라도 불사할 태세였다”고 입을 모았다.
선 전 부장 등은 상속재산 분쟁이 시작되자 삼성이란 목표를 잡고, 이건희 회장과 대면할 수 있는 ‘루트’를 직접 뚫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일개 직원이 사비를 들여 이런 일을 벌였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며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등 고급 정보를 어떤 경로로 알았는지, 배후가 없는지 등을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의 대기업 관계자는 “나라도 그런 동영상이 돈다는 말을 들으면 접촉을 시도했을 것 같다”며 “당시 삼성과 CJ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로, 내부 업적을 쌓기 위해 (선 전 부장)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확인되면 보고하려 했을 수 있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