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연합.
신한금융그룹 내 서열 1위인 금융지주 회장은 물론 2위인 은행장, 3위인 카드사 사장까지 모두 고려대 출신이 차지했다. 이에 더해 지주사 부사장과 은행 부행장, 금융투자 부사장에까지 고려대 출신이 포진하고 있어 신한금융 내 고려대 시대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957년 생인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대전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헬싱키대 대학원에서 경영석사과정(MBA)을 수료했다. 1984년 9월 신한은행원으로 입사해 31년 만에 은행장 자리에 올랐고, 올해 신한금융 회장 자리까지 차지한 정통 ‘신한맨’이다. 1998년 지점장, 2002년 인사부장, 2009년 글로벌사업부 전무, 2011년 영업추진그룹 부행장, 2013년 신한 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을 거쳐 2015년 신한은행장에 올랐다.
서열 2위 위성호 은행장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조 회장의 고려대 1년 후배인 그는 신한은행에도 조 회장보다 1년 늦은 1985년 입행해 신한은행 인사부 차장, 신한은행 PB사업부 부장, 신한금융지주회사 통합기획팀 팀장, 신한금융지주회사 부사장, 신한은행 부행장을 거쳐 2013년부터 신한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서열 3위인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은 1960년생으로 1986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신한은행에 입행한 그는 1998년 비서실장, 2003년 오사카 지점장, 2013년 신한은행 부행장, 2013년부터 신한금융지주의 각 부문 부사장을 거쳐 왔다.
이들뿐 아니다. 신한은행 각 계열사의 2인자 중 상당수는 고려대 출신이다. 신한은행의 글로벌 부문을 맡고 있는 허영택 부행장의 경우 1987년 경영학과를 졸업한 임 사장의 1년 직속 후배다. 영업추진본부를 맡고 있는 주철수 부행장도 경영학과를 나왔다. 여기에 1959년생인 김봉수 신한금융투자 부사장도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임보혁 신한지주 부사장 역시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다. 그룹 회장부터 주요 자회사 CEO와 핵심 부문장까지 고려대 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신한금융 측은 “우연의 일치”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특정 시기에 고려대 출신이 신한은행에 다수 입행하면서 같은 시기에 임원이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신한금융에는 지연이나 학연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1980년대 중후반에 함께 입사한 고려대 출신들이 고위직에 오를 시기가 되면서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다른 학교 출신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은 이 같은 설명에 의문을 품게 한다. 현재 신한금융에는 서울대 출신 고위 임원이 손에 꼽히는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임 한동우 회장이 서울대를 나왔지만 후배들은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여기에 고려대와 ‘맞수’ 격인 연세대 출신은 한 사람도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급부상했다는 서강대, 성균관대 출신도 전무하다.
신한금융 내 2인자로 통하는 위성호 신한은행장. 위 행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신한금융 내 고려대 전성시대를 주역 중 한 명이다. 연합.
이처럼 신한금융에 ‘고려대 천하’가 열리는 것을 지켜본 금융권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을 쥐락펴락했던 고려대 인맥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시 금융권에는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고려대 출신 인사들이 ‘4대 천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어윤대 회장이나 김승유 회장, 이팔성 회장 등은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까지 하던 인물들로, 단순한 금융 CEO 이상의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성균관대·서강대 출신들이 약진하면서 서금회·성금회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고려대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사퇴한 것은 물론 일부는 각종 비리 혐의로 세간의 따가운 시선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한때 은행과 증권, 카드, 보험사 등 모든 금융 부문 CEO 가운데 고려대 출신은 한 사람도 없는 멸종 상태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KEB하나은행의 경우 유시완 전무와 강동훈 상무 등 임원이 있지만 이들은 각각 IT그룹장과 준법감시인을 맡고 있어 최고 핵심인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뿐 아니다. 심지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는 지금도 고려대 출신 임원을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리는 시기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민간 금융사인 신한금융은 물론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에도 고려대 출신이 CEO에 올랐기 때문이다.
신한금융그룹 인사로 떠들썩하던 7일, 고려대 무역학과를 나온 최종구 SGI서울보증보험 사장이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했다.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지만 금융권은 국책은행이자 비리 혐의와 부실경영으로 떠들썩했던 수출입은행장에 고려대 출신이 기용됐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윗선의 인사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민간 금융사 CEO 인사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것이 금융권의 불문율인데, 하물며 국책 금융기관의 수장 인사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며 “그것도 한직이나 산하기관도 아닌 수출입은행장이라는 중책에 그동안 소외됐던 고려대 출신이 선택됐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의 조짐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