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첫 번째 우승으로 부상을 털고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박인비. 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골프여제’ 박인비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 복귀를 신고했다. 지난해 부상에 시달리며 고전했던 박인비는 올 시즌 LPGA 투어 세 번째 대회, 자신이 참가한 두 번째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박인비가 우승을 거둔 지난 3월 5일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도 승전보가 들려왔다. 안선주가 JLPGA 개막전인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둔 것. 미국과 일본 투어를 대표하는 한국인 스타들이 동시에 우승을 거두며 한국 골프계는 겹경사를 맞았다. 박인비와 안선주 모두 지난해 부상을 털고 일궈낸 우승이다. 이번 우승 외에도 서로 활약 중인 무대는 다르지만 둘의 골프인생이 상당히 닮아 있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박인비는 지난 2016년 굴곡진 한 해를 보냈다.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지만 허리와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며 부진한 전반기를 보냈고 후반기에는 시즌 오프를 선언하며 투어에 참가하지 않았다. 전반기 대회에서도 컷오프 탈락 등 저조한 성적을 거두거나 부상 악화로 기권했다. 이를 두고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 충족을 위한 무리한 출전 강행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2017년에는 시즌 초반부터 우승을 거두며 경기력에 대한 우려를 지웠다.
박인비는 우승 이후 국내에서 팬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임준선 기자
이번 우승은 단순한 박인비와 안선주 모두에게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휴식을 취했던 박인비는 지난 2015년 11월 이후 1년 4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게 됐다. 지난해 LPGA 상금 순위 69위로 데뷔한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뒀지만 복귀 초반부터 성과를 올렸다. 선수 본인도 우승 기자회견에서 “복귀하고 리듬을 찾기까지 몇 달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승을 해서 놀랍다.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메이저 4개 대회 석권에 올림픽 금메달까지 더해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가 세계적인 ‘골프 여제’로 통한다면 안선주는 ‘JLPGA의 여제’로 불린다. 안선주는 2010년부터 JLPGA 상금왕을 세 번이나 석권한 바 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했다.
JLPGA 사상 최단 기간 통산 상금 7억엔 기록, 20승 돌파 등 숱한 업적을 쌓아올린 안선주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지난해 목 부상 여파로 4개 대회에서 기권하는 등 예년에 비해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2010년 일본 진출 첫해부터 1위를 차지했던 상금랭킹에서도 9위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5위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시련을 겪은 탓인지 지난 5일 우승을 확정지은 안선주는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지속적으로 재활을 병행하며 투어에 참가한다는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시즌 초반부터 같은 날 우승 소식을 전한 박인비와 안선주는 자신이 활약하는 무대에서 ‘여제’라는 같은 별칭을 갖고 있는 만큼 서로 닮은 골프 인생을 살아왔다.
이들은 해외에서 자신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난 박인비는 2008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LPGA에서 활동하며 틈틈이 국내 대회에 참가했지만 ‘골프 여제’로 불리고 있음에도 아직 국내 우승 기록은 없다. 박인비도 국내 팬 앞에서의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연히 국내 팬들 앞에서 우승하고 싶다. 매년 2~3개 대회에 나섰는데 올해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와 스폰서인 국민은행 대회 출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안선주도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활약이 더욱 도드라졌다. 1부 투어에 뛰어든 2006년부터 우승을 차지해 신인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그해 신인상, 다승왕, 상금왕, 최저타수상을 모조리 휩쓴 절친 신지애의 활약에 가려졌다. 안선주는 이후로도 꾸준히 우승을 기록하며 안정적 활약을 펼쳤지만 신지애, 서희경, 유소연 등에 가로막혀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렇지만 2010년 JLPGA에 진출하면서 첫 대회부터 우승을 거두며 골프 인생에 꽃을 피웠다.
두 선수 모두 선수생활 중 스폰서 계약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박인비는 2008년 US 오픈 우승으로 SK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지만 2010년 이후 계약이 종료됐고 LPGA 최저타수상, 상금왕을 받은 2012년에도 스폰서를 찾지 못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실력보다 외모를 따지는 골프계 풍토를 지적하기도 했다.
안선주는 JLPGA 23승을 달성했다. 사진제공=KLPGA
안선주는 언론 인터뷰에서 골프계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더욱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지난 2014년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후원을 약속했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약속을 백지화시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성형을 강요한 기업도 있었다”고 밝혔다.
안선주와 박인비는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둘의 남편도 골프인이다. 박인비는 지난 2014년 남기협 코치와 경기도 한 골프장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인비는 남편으로부터 스윙을 교정받기도 하는 등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안선주의 곁에도 프로골퍼 출신 김성호 씨가 코치 겸 캐디로 함께하고 있다. 결혼식을 나중으로 미룬 이들은 지난 2014년 12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지난해 함께 침체를 겪은 둘은 같은 날 거둔 우승은 뒤로하고 다가올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박인비는 지난 8일 팬 사인회에서 “기아클래식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 외에 에비앙 마스터스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한 열망도 숨기지 않았다.
안선주는 과거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 꺼낸 바 있다. “JLPGA 20승을 채우면 은퇴하겠다”고 한 적도 있고 “30세에 은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우승으로 JLPGA 23승을 달성했으며 1987년생인 그는 올해 만 30세가 된다. 은퇴와 관련해 안선주 모친 강선자 씨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5년 정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라며 “박인비 선수와 선주 둘 다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좋은 성적 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JTBC 해설위원 이신 프로는 두 선수가 이번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 부진을 딛고 다시 과거의 기량을 되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안선주는 지난겨울 남편과의 태국 전지훈련 이후 첫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신체적, 심리적으로 균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며 “워낙 잘하던 선수이기에 다시 탄력을 받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인비에 대해서는 “이번 우승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듯한 기량을 보였다. 도쿄 올림픽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자신감도 충만해 보인다”며 “일반적인 선수가 아닌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경지를 보이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