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집회 알바’가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다시 말해 트럼프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일당을 받고 나온 알바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 더 정확히 말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트럼프 본인조차도 직접 나서서 이런 알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집회 알바’와 관련된 주장들이 어쩌면 ‘가짜 뉴스’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일 뿐, 그 어떤 곳에서도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미국인들은 지난 대선 내내 ‘가짜 뉴스’로 몸살을 앓아왔던 미국이 트럼프 취임 후에도 여전히 ‘가짜 뉴스’의 홍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보수매체들이 반트럼프 시위대에 대해 “돈을 받고 동원된 알바”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집회 알바’ 주장이 사실은 ‘가짜 뉴스’에서 비롯됐다는 정황들이 드러나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1월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반트럼프 여성 행진. EPA/연합뉴스
2016년 대선 기간 동안 끊임없이 등장했던 의혹 가운데 하나는 ‘집회 알바’와 관련된 것이었다. 비록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이런 의혹은 끈질기게 불거졌고, 대부분은 트럼프 유세장에서 반트럼프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런 의혹에 동의했던 트럼프 캠프 측 역시 트럼프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배후에서 시위를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뉴스를 SNS를 통해 실어 나르기 바빴었다.
그리고 이런 ‘집회 알바’ 의혹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시 말해 트럼프 정부에 반대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취임 다음 날부터 미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시위를 비롯해 반이민행정명령 후 공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백악관은 이런 시위에 참가하는 대다수가 알바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트럼프 본인도 직접 트위터를 통해 “고용된 무정부주의자들” “돈을 받고 나온 시위대들”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해 대선 직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한 차례 ‘집회 알바’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린 바 있었다. “매우 투명하게 치러진 성공적인 선거였다. 그런데도 언론에 의해 선동된 전문적인 시위대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이건 불공평하다!”라고 주장했던 것.
이와 관련해서 <폭스뉴스>에 출연한 백악관 대변인인 숀 스파이서는 “자연발생적인 혼란 상태가 아니라면, 조직화된 시위, 다시 말해 사람들이 돈을 받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스파이서는 “반트럼프 시위는 현재 전문적인 운동이 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아왔던 자연발생적인 시위가 아니다. 티파티 운동의 경우에는 충분히 자발적인 성격을 띠었지만 요즘 일어나고 있는 시위는 돈을 받고 일어나는 ’아스트로터프드(Astroturfed)’에 가깝다”라고 주장했다.
‘아스트로터프드’란 ‘가짜 풀뿌리 운동’이라는 의미로, 특정 정치인이나 단체 혹은 조직이 일반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돈을 주고 시위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것을 말한다.
시위 조직 업체인 ‘디맨드 프로테스트’의 구인광고. “트럼프에 반대하면서 돈을 벌 사람을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구인광고에선 뭔가 조작된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실제 트럼프 취임식이 열리기 불과 몇 주 전에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는 듯한 구인 광고가 하나 올라와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온라인 구인광고 사이트인 ‘백페이지닷컴’에 올라온 이 광고는 시위 조직 업체인 ‘디맨드 프로테스트’가 올린 것으로, “트럼프에 반대하면서 돈을 벌 사람을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영리 풀뿌리 지원 단체’로 소개된 ‘디맨드 프로테스트’ 측이 제시한 수고비는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월 2500달러(약 290만 원)에 추가로 시간당 50달러(약 5만 7000원)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 광고는 곧 보수적 성향의 매체들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게이트웨이펀디트>는 “충격뉴스: 극좌파들이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서 시위대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라고 보도했는가 하면, 일베 성향의 극우 온라인 사이트인 <4챈>에서는 ‘디맨드 프로테스트’와 트럼프에 반대해온 조지 소로스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극우 매체인 <브라이트바르트>는 이 광고야말로 ‘집회 알바’의 명확한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좌파들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다”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내놓았다. 심지어 유력 언론사인 <워싱턴타임스>까지 ‘백페이지닷컴’의 광고에 대해 보도할 정도였으니 이 광고의 여파가 얼마나 막대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뭔가 수상한 구석이 많았다. 어딘가 조작된 ‘가짜 뉴스’ 냄새가 풍겼던 것이다. 곧 ‘디맨드 프로테스트’를 수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조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 몇몇 수상한 점이 포착됐다. 홈페이지의 도메인이 등록된 것은 2016년 12월, 다시 말해 트럼프 취임식이 열리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또한 회사 주소지로 명시되어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그런 이름으로 등록된 회사가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사이트에 표시된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면 음성사서함으로만 연결됐으며, 이메일에 답장을 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48개의 시위를 조직하고, 총 1817명에게 알바비를 지급했다고 주장하는 점 역시 미심쩍긴 마찬가지였다. 이를 광고에 언급된 알바비로 계산해보면 무려 8400만 달러(약 970억 원)라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돈을 어디서 조달하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이런 의혹을 제기했다. 트럼프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반트럼프 시위가 알바부대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규모의 알바비일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가령 시위 참가자들의 3분의 2가 알바이고, 25달러(약 3만 원)의 일당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취임식 다음 날 워싱턴에서 열린 시위의 경우에는 총 5만 달러(약 5800만 원)의 알바비가 지급된 셈이 된다(시위 참가 인원 약 3000명 가운데 2000명이 알바라고 가정할 경우). 또한 1월 21일 미국 550개 도시에서 330만 명이 참가했던 ‘여성들의 행진’ 시위의 경우에는 5500만 달러(약 636억 원)가, 그리고 2016년 11월, 선거 직후 약 3만 명이 참가한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트럼프 시위의 경우에는 50만 달러(약 5억 8000만 원)가 지급된 셈이 된다.
그밖에 크고 작은 다른 시위까지 모두 계산했을 때 총 알바비로 지급된 액수는 5740만 달러(약 665억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워싱턴포스트>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실로 엄청난 규모의 액수일뿐만 아니라 이 정도의 인원이 알바로 동원됐다면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탄로가 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이를 목격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온라인 시사 잡지인 <살롱닷컴>은 “집회 알바는 거짓말이다. 트럼프 정부가 집회를 비합법화시키려는 꼼수다”라고 비난했다.
가장 대표적인 ‘집회 알바’ 관련 오보는 이른바 ‘오스틴 단체 버스 대절 해프닝’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가짜 뉴스’가 여러 차례 ‘가짜’로 판명난 사례는 몇 차례 있었다. 캐나다의 타블로이드 매체인 <토론토선>은 ‘가짜 뉴스’에 깜박 속아서 관련 기사를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었다. 반트럼프 시위 참가자들이 훈련을 받았고, 힐러리 클린턴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던 <토론토선>은 이 기사가 <ABC 뉴스>의 기사라고 말하면서 해당 기사의 링크(www.abcnews.com.co)를 걸어 놓았다.
하지만 이 링크는 가짜였다. 이는 <ABC 뉴스> 사이트를 모방한 가짜 사이트로, 사실은 ‘가짜 뉴스’ 전문 제작자로 유명한 폴 호너라는 남성이 운영하는 사이트였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지지자들을 위한 ‘가짜 뉴스’를 생산했었던 호너는 트럼프 진영에서는 꽤나 유명한 인물로, 심지어 트럼프 캠프 측에서도 그의 기사를 공유할 정도였다. 그리고 ‘가짜 뉴스’라는 사실이 판명된 후 <토론토선>은 부랴부랴 해당 기사를 삭제해야 했다.
가장 대표적인 ‘집회 알바’와 관련된 오보는 이른바 ‘오스틴 단체 버스 대절 해프닝’이었다. 오스틴의 에릭 터커라는 남성이 트럼프 반대 시위에 참가한 알바들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관광버스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 해프닝의 발단이었다.
지난해 11월 9일, 터커는 오스틴의 시내에서 관광버스 여러 대를 목격한 후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 오스틴에서 열렸던 반트럼프 시위는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버스들이 단체로 움직이고 있다.” 이 사진은 트위터에서는 1만 6000회, 그리고 페이스북에서는 35만 회 공유되면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심지어 트럼프조차도 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분개할 정도였다. 불과 3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버스는 시위 참가자들을 태운 것이 아니라 ‘태블로 소프트웨어’라는 회사가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1만 3000명의 직원을 위해 단체로 대절한 버스였었다.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하게 의심했던 한 남성의 포스팅이 잠시나마 진실인 양 퍼졌던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짜 뉴스’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퍼지는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케이스였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 알바’가 버젓이 존재한다고 믿는 애리조나주에서는 최근 의미심장한 법안이 의회에 발의돼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요컨대 앞으로는 돈을 받고 집회에 참가했다가 적발될 경우, 조직적인 범죄 행위(사기, 돈세탁, 금품 강요, 무기 밀매 등)로 동일하게 간주돼 처벌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집회를 정의하는 범위도 확장돼서 평화를 침해하거나 기물을 심하게 파손하는 행위도 포함되며, 집회에 참가했다가 고발될 경우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자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인 소니 보렐리는 “모두가 돈을 받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그렇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미국인들은 많다. 시민 운동가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시민들의 기본권이 상당 부분 침해될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영리 단체인 ‘국제정의동맹’의 제임스 조던 역시 “시위 참가자들에게 돈을 준다는 생각은 상상을 바탕으로 한 아무 근거 없는 주장이다”라고 비난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분열로 치닫고 있는 미국 사회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듯싶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