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 사익추구 직·간접 지원”…세월호 아닌 ‘40년지기’ 암초에 꼬르륵
애초 국회 소추위원 측은 탄핵소추 사유를 헌법 위반 행위 5개, 법률 위반 행위 8개 등 모두 13개로 적시했지만 헌재는 준비절차 과정에서 탄핵소추 사유를 유형에 따라 5개로 분류했다. 헌재가 분류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는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등 5가지였다. 헌재의 선고요지를 바탕으로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인지 분석해 본다.
# “대통령, 국민 신임 배반했다”
헌재는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와 형사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앞서 ‘비선의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법치주의 위반’은 지난해 11월 불거진 연설문 유출 사건과 연관된 사유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이 사유는 이번 사건의 포문을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5가지 유형의 탄핵소추 사유 중 핵심 쟁점으로 헌재 심리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꼽혔다.
그동안 국회 측은 17차례의 변론에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을 적극적·능동적으로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최 씨가 능동적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대통령이 자신의 자율성으로 국정을 수행하지 않고 사인에게 국정을 맡긴 행위인 만큼 헌법의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측은 “연설문의 일부 표현만 수정했고, 유출된 문건들은 정호성 전 비서관이 보냈을 뿐”이라고 맞섰다. 연설문은 취임 이후 의견을 묻는 취지로 보낸 적은 있지만, 해외 순방 등 다른 문건들은 정 전 비서관이 임의로 판단해 최 씨에게 문건을 포괄적으로 전달했다는 주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최 씨가 대통령에게 단순히 의견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섭정 수준으로 국정에 관여한 사실이 인정돼야 ‘국민주권주의 위배’가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사익추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고, 이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헌재는 구체적으로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에게로 국가 정책 문건 유출을 지시‧방치했고, 최 씨의 사익을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대기업 출연에 관여했으며, 최 씨 지인 업체인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제공하는 등 개입했다고 못 박았다.
헌재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했다. 이는 위헌, 위법행위로 대의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제기를 비난했다.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헌재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은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과연 파면될 만큼 중대한 법위반이었는지 여부에 대해 헌재는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다”라며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다. 박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파면을 선고했다.
# “정치적 무능, 탄핵 소추 안된다”
다만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과 ‘언론 자유 침해’ 여부 등은 명확하지 않아 탄핵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공무원 인사에 개입했는지에 대한 여부도 같은 이유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 가운데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유로, 검찰과 특검에서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해 헌재의 결정에 관심이 모였다. 이에 대해 헌재는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긴 어렵다”며 “대통령 직책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 이유로 탄핵 소추는 어렵다.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는 또한 박 전 대통령이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해 직업 공무원 제도의 본질을 침해했다는 부분 역시 인정치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이 일부 공무원을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인사했다는 점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면직과 1급 공무원 6명의 사직서를 제출 받은 이유도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언론 자유 침해 여부에 대해서도 헌재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 문건 외부 유출에 대해 비난한 것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으로 언론에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피청구인이 관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보충의견을 낸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도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며 “다만 역시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안창호 재판관은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탰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뤄지는 이 선고가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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