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베니트가 거래소와 함께 해외에 수출한 시장감시시스템에 모조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코오롱베니트가 고 씨와 이용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고 씨의 프로그램을 점유하고, 이 프로그램을 분석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출에 활용했다고 본 데 이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한 결과라고 판결했다. 코오롱베니트는 이에 대해 이의제기를 한 상태다.
비록 이 사건은 고 씨가 코오롱베니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지만 수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거래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이 사건에 대한 거래소의 대응이 미흡해 문제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거래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 사건에 대해 거래소 윗선에서는 아예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 역시 “그 건은 코오롱베니트 측에서 이의제기하고 수사를 요청한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특정 사업에 대한 입찰·계약 과정이 투명해 보이지 않는 것은 거래소의 허술한 경영관리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거래소는 지난해 9월 국내용 시장감시시스템 구축을 위한 입찰공고를 냈다. 시장감시시스템은 그 중요도가 높고 상징적인 사업이라 탐내는 SI(시스템통합) 업체가 많다. 하지만 거래소가 공고한 사업의 1차 입찰에는 아무 업체도 참여하지 않아 결국 유찰됐다. 당시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예정 가격이 너무 낮아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았다”며 “비슷한 이유로 다른 업체들도 입찰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거래소는 한 달 뒤인 10월 같은 내용으로 재공고를 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업체도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2차 입찰에 돌연 거래소 자회사인 코스콤이 단독으로 참여해 또 다시 유찰됐다, ‘2회 유찰 시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거래소는 자회사 코스콤과 수의계약했다. 1차 때 참여한 업체가 없어 유찰된 입찰에 사업진행 당사자나 다름없는 자회사가 2차 때 단독으로 참여했고, 결국 수의계약까지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업계에서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코스콤 관계자는 “1차 입찰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수익성 부족이 맞다”며 “하지만 시장감시시스템의 상징성을 감안해 적자 폭을 최소화해서라도 사업에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적자를 감수하면서 사업에 참여했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상징성이 크다고 해도 적자구조가 뻔한 사업에 입찰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거래소가 자회사인 코스콤 측의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거나 사업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코스콤을 끌어들였다는 의혹을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래소가 진행한 입찰과 관련해 업계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DB
코스콤이 입찰 마감에 임박해 하도급업체들에 급하게 동의서를 요청했다는 사실도 관련 의혹에 힘을 싣는다. 코스콤의 하도급업체 한 관계자는 “사업 검토는 기간을 두고 이루어졌지만 동의서는 급하게 요청받았다”며 “큰 틀에서 사업의 범위가 줄어들기는 힘들겠지만 협상 과정에서 일정 부분 조정은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거래소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고된 제안요청 모든 것을 변함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코스콤 관계자 역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업을 검토했다”며 급하게 결정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래소의 허술한 경영관리와 잇단 의혹이 거래소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 비롯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거래소는 금융위원회나 검찰을 제외하고는 외부 견제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거래소는 관료적인 행정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권한의 비판이나 감시에서는 민간 기업적 자세를 취한다”며 거래소의 폐쇄성과 이중성을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