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빙상 국가대표 3남매 박승희·박승주·박세영(왼쪽부터). 우태윤 기자
[일요신문] “학창시절 <사랑의 아랑훼즈>라는 만화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이후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피겨 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고 너무 큰 감명을 받았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 특별활동으로 빙상반이 생겨 피겨를 가르치고 싶어서 두 딸을 등록시켰다.”
전 현직 빙상 국가대표 박승주·박승희·박세영 3남매는 이처럼 어머니 이옥경 씨의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동경’으로 빙판 위에 서게 됐다. 하지만 어머니의 의도와 다르게 이들은 각각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선수로 성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해 수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요신문>은 스케이팅을 신게 된 계기, 국가대표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선수생활 이후의 계획까지 삼남매의 많은 이야기를 지난 12일 경기 화성시 집을 찾아 직접 들어봤다.
이들이 스케이트를 시작한 초기에 연습장을 방문한 이 씨는 예상과는 다른 광경을 보게 됐다. 스케이트를 신고 춤을 배우고 있을 줄 알았던 딸들이 경주하듯 링크 가장자리만 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들이 등록한 ‘빙상반’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 코치가 지도하던 곳이었던 터라 자연스레 피겨가 아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배우게 됐기 때문이다. 안쪽에는 춤을 배우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딸들은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 씨는 “스케이트를 잘 못 타서 연습을 하고 나중에 춤을 배우는 줄로만 알았다. ‘왜 우리 애들은 안넣어 주냐’고 따질까 생각도 했지만 경솔한 행동인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처럼 우연히 시작한 스케이트이지만 두 딸은 1년 만에 취미반에서 선수반으로 소속을 옮겼고 막내도 누나들을 따라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엔 아버지의 반대도 있었지만 가족회의 끝에 아버지도 이들의 가장 든든한 응원단이 됐다. 후에 이들은 재능을 꽃피웠고 ‘스포츠 선수의 꿈’인 올림픽에 삼남매가 함께 참가하며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 또 하나의 추억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대표로 활약하던 맏이 박승주는 지난 2014년 은퇴했지만 동생들은 현역 선수로 활발히 활약 중이다. 둘은 올림픽에 이어 지난 2월 동계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했다. 평창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열린 대회라 이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아시안게임이었다.
지난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1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막내 박세영. 사진=우태윤 기자.
그는 “첫 종목인 1500m부터 너무 잘 풀려서 다른 종목도 잘 치를 수 있었다”면서도 “대회전부터 동료들과 계주 종목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1위를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박세영은 이번 대회에서 1500m 개인전 금메달, 500m 개인전 동메달, 5000m 계주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을 딴 1500m 경기에서는 유난히 격하게 기뻐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번 시즌 크고 작은 부상이 있어서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12월 절반은 병원에서 지낼 정도였다. 경기 감각 면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첫 경기에서 성적이 좋아 더 기뻤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승희에게 이번 대회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서 참가하는 첫 아시안게임이었다. ‘최정상급 쇼트트랙 선수’의 영광을 뒤로하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서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박승희도 이번 대회가 자신의 기량을 점검하는 의미 있는 대회였다. 그는 “대회 직전 세계선수권에서 컨디션도 좋고 기록이 잘 나와서 기대를 걸었는데 삿포로에서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몸이 안 좋았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기록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만큼은 자신보다는 동생의 금메달이 더 남다른 의미를 갖는 대회였다. 박승희는 “동생이 1등을 해서 축하를 정말 많이 받은 대회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만 다른 곳과 떨어져 있어서 결과를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의 축하가 쏟아졌다. 내가 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흐뭇했다”고 했다.
집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박승주의 폭로도 이어졌다. 박승주는 “엄마도 이제는 세영이만 신경 쓴다”며 “승희 경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세영이 경기로 채널을 돌리더라. 엄마는 승희 기록이나 순위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씨는 “이상하게 이번 대회에 둘의 경기가 겹치더라. 둘 다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웃었다.
# 승희·세영의 다음 목표, 평창 올림픽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박승희와 박세영의 다음 목표는 1년도 채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이들은 국내 팬들 앞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길 기대하고 있지만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게 우선이다. ‘당연히 내가 나간다’는 방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세영은 “스피드 팀은 운영 방식이 달라 누나는 여름 대표로 뽑힌 상태인데 나는 아직 대표 선발전이 남아있다. 선발전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서 5개의 메달을 딴 누나와 달리 소치에서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박세영은 평창에서 메달을 목에 걸길 희망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박승희. 우태윤 기자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던 박승희는 금메달 2개를 획득한 소치 올림픽을 마치고 스케이트를 벗으려 했었다. 그는 “은퇴를 고민하다가 주변 권유에 가벼운 마음으로 스피드용 스케이트를 신고 타봤다. 그런데 의외로 기록이 잘 나왔고 시작한 지 5~6개월 만에 대표팀에도 뽑혔다. 하면 할수록 욕심도 생기고 오기도 생겨서 평창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 3남매의 스케이트 인생
박승희에게 스피드스케이팅이 전혀 생소한 종목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삼남매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대회를 병행했다. 이 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땐 대회장을 오가는 차에 항상 쇼트트랙용 3켤레, 스피드용 3켤레, 총 6켤레의 스케이트가 항상 트렁크에 들어있었다”고 떠올렸다.
오전에는 쇼트트랙 대회로 오후엔 스피드스케이팅 대회로 바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삼남매에게 어머니는 첫째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이들에게 이제 한 종목만 선택하라고 권했다. 그렇게 박승주는 스피드, 박승희와 박세영은 쇼트트랙을 선택했다.
하지만 첫째의 바람이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동시에 열리는 양쪽 대회에 아이들을 태우고 오가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승주는 동생들과 함께 쇼트트랙 선수생활을 한동안 지속해야 했다. 특유의 몸싸움이 싫었던 박승주는 경쟁을 해야 하는 대회에서 몸싸움을 걸어오는 상대 선수에게 길을 내주기도 했다. 더 이상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코치와 어머니는 두 동생이 걸어 다닐 수 있게 쇼트트랙 경기장 가까이로 이사를 결정하며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삼남매가 모두 운동선수로 활동하며 불편한 점은 없었을까. 막내 박세영은 “비슷한 분야에 있지만 서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며 “큰누나는 어려서부터 종목이 달랐고 작은누나는 일찍부터 대표팀에 뽑혀 따로 생활했다. 내가 대표팀에 뽑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누나가 종목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박승주는 “합숙 생활을 하다 집에 오면 다른 남매들처럼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안한다. 가끔 자세 등에 대해 물어보면 도움을 주는 정도다. 불편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같이 운동을 했기에 이들은 가족이자 서로를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박승희는 “운동을 해서 어릴 때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우리는 세 명이 같이 하다 보니 서로 친구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2014년 현역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박승주. 우태윤 기자
박승희도 평창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평창 대회가 끝나면 홀가분하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박승희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 옷을 만들어 보고 싶어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박세영은 자신의 선수생활을 평창으로 한정짓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이후로도 빙상계에 남아 지도자 생활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박세영은 “오랜 시간 스케이트를 탔고 가장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다.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하고 싶다”고 밝혔다.
삼남매는 인터뷰 내내 선수 생활 중 힘들었던 순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 등을 떠올리며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없을까’에 대한 작은 토론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운동만을 해왔기에 그만두고 싶어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특히 지도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박세영은 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언젠가 그가 지도자가 되면 즐기는 선수를 길러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박승희, 삿포로 쇼트트랙 지켜보다 ‘욱’ 왜? 판커신 ‘나쁜손’ 플레이 또! 왕멍과는 한판 붙은 적도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2월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쓸어 담으며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를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500m 결승전에서 중국의 판커신이 금메달이 유력해 보이던 심석희를 잡아채는 듯한 ‘나쁜 손’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에다. 억울하게 2위로 골인한 심석희는 심판진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실격처리를 당했다. 지난 1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쇼트트랙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박승희. 이를 지켜보던 많은 팬들이 분노했고 현재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박승희의 쇼트트랙 선수 시절이 다시 한 번 회자되기도 했다. 박승희는 금메달을 획득한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1000m 결승에서 판커신의 ‘나쁜 손’을 뿌리친 바 있다. 당시 판커신은 골인 직전 박승희를 허벅지를 잡으려 손을 내밀었지만 박승희가 속도를 내며 앞으로 치고나가 큰 접촉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박승희는 이후 인터뷰에서 “실격이 됐어야 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중국의 ‘비매너 플레이’는 한두 대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승희는 “원래 쇼트트랙이란 종목이 몸싸움이 심하다.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장면도 많다. 중국 선수들이 유독 심하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언니 박승주는 “나는 이게 싫어서 스피드스케이팅을 선택한 것”이라며 거들었다. 박승희는 2013-2014 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3차 토리노 대회에서 중국 팀의 반칙성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항의했고 중국 선수들이 반발하며 싸움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중국 선수에게 한국말로 따지고 들었다. 그 선수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경고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기장 밖에서 쉬던 중국의 왕멍이 다가오며 나에게 소리쳤다. 나도 지지 않고 욕설을 섞어가며 맞섰다”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그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 이옥경 씨도 박승희에게 “너 소치에서 왕멍이랑 화장실에서 한판 하고 은퇴할거라고 했잖아”라며 웃었다. 박승희와 왕멍과의 승부는 왕멍이 부상으로 소치 올림픽에 불참하며 이뤄지지는 못했다. 박승희는 웃으며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지금 쇼트트랙 여자 팀 선수들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 역할을 해 줄 선수가 부족하다. 때로는 화내는 선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도 선수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이제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앞으로 잘 해내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