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을 맞이해야 할 김정주 대표는 지난해 7월 뇌물공여 혐의를 받으면서 넥슨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현재 김 대표는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 나서기보다 NXC의 투자 담당 인력들을 해외에 보내 M&A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NXC 관계자는 “김 대표는 이전까지 신규 먹거리를 찾으러 해외에 자주 나갔다”며 “그러나 지난해 재판이 시작되고 난 후 현재까지 경영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13일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의혹을 받은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김 대표가 직접 경영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넥슨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넥슨 전체 매출의 40% 이상이 중국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최근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화장품과 면세점 등 유통 부문에 국한하지 않고 게임업계까지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중국 정부로부터 게임 서비스권인 ‘판호’를 받아야 하는데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사드에 대한 보복으로 국내 게임에 판호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미 판호를 얻은 게임일지라도 업데이트를 불허하는 등 한국 게임의 중국 서비스에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넥슨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판호 규제에 대해 명확히 밝힌 게 없고 업계 소문 중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 알 수 없어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며 “당장 큰 타격이 가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향이 있을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넥슨 본사.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넥슨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지만 김 대표와 NXC는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NXC 관계자는 “김 대표가 넥슨 등기이사로 있을 때도 이사회에 참석해 보고를 받는 정도였고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해왔다”며 “판호 문제도 넥슨 내부에서 해결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이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넥슨에 대한 보고조차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넥슨의 부담감은 오히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NXC의 최대주주로 넥슨 임원 선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만약 넥슨의 실적이 크게 부진할 경우 얼마든지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IT업체 텐센트가 보인 행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시선이 있다. 중국에 진출한 넥슨의 주요 게임들의 유통·서비스사(퍼블리셔)인 텐센트는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텐센트 브랜드 솔루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행사 이틀 전인 6일 돌연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정해진 게 없어 일부에서는 사드 영향으로 텐센트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텐센트코리아 관계자는 “베니 호 텐센트 수석이사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행사를 잠정 연기했으며 내부적으로 향후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며 “행사에서 발표할 사람이 베니 이사밖에 없어서 연기한 것이지 사드 이슈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적어도 이미 중국에 진출해 있는 넥슨의 게임은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넥슨의 기존 게임에 대해 업데이트를 불허하는 등의 제재를 가할 경우 이를 유통·서비스하는 중국 기업 텐센트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텐센트가 중국 정부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만큼 텐센트의 피해와 이에 대한 항의를 중국 정부가 외면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자국 대기업에까지 타격을 주면서 한국을 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며 “이미 진출한 게임에 제재를 가하면 텐센트가 포기해야 하는 매출이 어마어마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로 진출할 게임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판호 허가에 대해 장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넥슨은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모바일 게임 ‘다크어벤저3’의 글로벌 출시를 준비 중인데, 다크어벤저3의 판호 허가 여부를 통해 중국의 입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넥슨 관계자는 “판호 규제에 대해 명문화된 게 없어 중국 진출 전략도 이전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판호 이슈가 과장된 면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게 없고 판호를 불허한 사례도 아직 없는 만큼 소문의 상당 부분이 중국 퍼블리셔 업체에서 나온 유언비어라는 것.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퍼블리셔 업체들은 중국 정부와 네트워크를 내세워 판호 허가를 쉽게 내주겠다며 국내 게임사와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려고 ‘밀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한 게임회사는 중국에서의 지적재산권 100%를 퍼블리셔가 가져가는 내용의 계약을 요구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중국 ‘판호’ 구실로 국내 게임업체 눈독 “힘들면 팔아라해~” 중소 게임업체인 T사는 얼마 전 한 컨설팅업체로부터 지분 매각 제의를 받았다. T사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판호를 받는 게 너무 오래 걸려 포기했다”며 “그러다가 중국 업체에 인수되면 판호를 받기 쉬워진다며 매각을 제의받았지만 회사 사정상 거절했다”고 전했다. 최근 사드 문제로 판호를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중소 게임업체를 중심으로 중국 업체들의 인수 움직임이 보인다. 김윤상 게임네트웍스 대표는 “중국 사모펀드(PEF)가 한국 게임회사를 인수하려고 시도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난 몇 달간은 한국 게임업계가 예전만 못해 그런 움직임을 보기 힘들었다”며 “그런데 최근 한 달 동안은 한국 게임회사에 대한 중국 업체들의 인수·투자 시도가 몇 차례 보였다”고 전했다. 중국 자본들은 예전부터 한국 게임회사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한국 게임 산업이 좋지 않은 반면 중국 게임 산업은 갈수록 커져 이미 비용 면에서는 중국 업체보다 한국 업체가 더 싸게 먹힌다”며 “그럼에도 한국 업체가 더 좋은 수준의 게임을 만들어내니 중국에서 눈독을 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업체의 한국 게임업체 인수 시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드 이슈로 중국 진출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쉽게 판호를 받을 수 있다”며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T사 관계자는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분 매각을 제의한) 컨설팅업체는 우리를 비즈니스 리스트에 넣어둔다고 했다”며 “리스트가 있다는 건 우리 외에 다른 업체에도 인수를 제의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