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임을 고백한 구리하라 루이의 자서전.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발달장애가 심신의 발달이 더디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뇌의 문제로, 단지 뇌 기능에 장애가 있어 인지기능이 표준적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크게는 대인관계에 서투른 자폐스펙트럼,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ADHD, 읽기와 쓰기 등 특정영역 학습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LD(학습장애) 등이 발달장애로 분류된다.
흔히 “발달장애는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문제”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인도 발달장애를 앓는다. 도쿄지케이카이 의과대학의 오노 가즈야 교수는 “자신이 발달장애인지 모른 채 어른이 된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아라도 성적이 좋은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부모는 단순히 ‘별난 아이’쯤으로 넘기고 만다. 따라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6~12세 어린이들 가운데 6%는 발달장애를 안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인의 약 3%는 발달장애일 것으로 추산된다. 다시 말해 “어른 50명이 모이면 확률적으로 한두 명은 발달장애”라는 얘기다. 미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가족이나 동료 어쩌면 당신이 해당될 수도 있는 아주 가까운 질환인 것이다.
실제로 발달장애를 가진 유명인사도 적지 않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탤런트 구리하라 루이가 자신이 ADHD 장애임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그는 “발달장애는 주변의 도움만 있으면 얼마든지 보통 생활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또 일본의 경제평론가 가쓰마 가쓰요도 “자신에게 ADHD 성향이 있다”며 블로그를 통해 털어놓은 바 있다.
이와 더불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가들 중에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건 익히 유명한 이야기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예. 요컨대 ‘장애’라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상당하다.
국가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마사유키 씨(가명·29)도 최근 ‘성인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는 “어릴 적 ‘덤벙거리는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연필, 지우개, 공책 같은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을 못해 자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화에도 서툴러 친구가 거의 없었다.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눈치가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공부는 꽤 잘하는 편이었다. 특히 암기과목은 자신 있었다. 도감을 대충 훑으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았고, 교과서를 한번 읽으면 시험공부는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쉬운데 다른 친구들은 왜 고생을 하는지’ 영 이해가 가질 않았다. 비록 커뮤니케이션에는 서툴렀지만,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대로 공무원도 됐다. 하지만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일단 업무에 실수가 많았다. 기한을 지키지 못해 일이 쌓여만 갔다. 욱하는 마음에 감정 섞인 메일을 보냈다가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입사 동기들과 자꾸 비교당하니 견디기 힘들어졌다. 점점 궁지에 몰린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병원을 찾게 됐다. 그런데 뜻밖에도 성인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마사유키 씨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고백했다.
가령, 예전부터 그는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마다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냐’며 자책했지만, 실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벌어진 일이다. 학창시절에도 만화책을 보기 시작하면 수업을 알리는 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때는 인터넷게임에 푹 빠져 아침부터 밤까지 이른바 ‘폐인생활’을 한 적도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무서울 만치 집착하는 성향 탓이다.
물론 지금은 자신이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게임이나 도박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마사유키 씨는 “직장 내에서도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면서 “스스로 발달장애임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도움이 필요하면 약물요법이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도 권했다.
반면 오랫동안 자신의 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케이스도 있다. 만화가 사카모토 미메이 씨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사카모토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약속을 자주 어기고 중요한 자리에서도 지각을 곧잘 했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부탁할 땐 엄격한 주종관계를 만드는 경향이 있어 다들 내 밑에서 일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다 보니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게 됐는데, 이를 고치려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기도 했지만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그러던 것이 44세 때 비로소 발달장애라는 판정받고 인생이 확 바뀌었다.”
사카모토 씨의 경우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같은 행복감을 느끼는 신경전달 물질 분비가 일반인보다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는 “대인관계에 문제 많은 내가 사실은 성격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뇌의 기능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고통에서 해방됐다”고 전했다.
위의 사례처럼 성인이 돼서야 발달장애를 깨닫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 가지 드는 궁금증은 “왜 최근 들어 갑자기 발달장애가 주목을 받게 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보과다 시대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오노 가즈야 교수는 “현대는 소리, 영상, 정보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사회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은 이런 변화에 뇌가 대응하기 힘들다”면서 “예전 같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서툴거나 능률이 떨어져도 농사나 수공업장에서 충분히 활약 가능했다. 하지만 현대 비즈니스현장에서는 엄격한 성과주의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취업지원서비스 회사 ‘카이엔’의 스즈키 게이타 대표는 “장애를 개성으로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즉,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극복하려고 애쓰기보다 할 수 있는 분야를 갈고 닦으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는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의 관심 대상을 살피고, 잘하는 걸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장애를 개성으로 파악하면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