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발표된 LG 트윈스의 새 유니폼. 사진=LG 트윈스
[일요신문]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본격 시작되기 전인 시범경기 기간이지만 LG 트윈스 구단 홈페이지 내 게시판은 벌써부터 뜨겁다. 팬들이 게시판으로 몰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유니폼 때문이다. 새로운 유니폼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 구단vs팬, 유니폼 놓고 둘러싼 갈등
LG는 지난 9일 새롭게 제작한 구단 BI(Brand Identity)와 함께 유니폼을 공개했다. 구단은 “기존의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역동적이고 강인한 요소를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새 유니폼에 대해 “팬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유니폼”이라는 비판을 가하는 팬들이 나오고 있다. 구단 홈페이지 외에도 커뮤니티 등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일부의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유니폼 디자인을 놓고 구단과 팬이 잡음을 일으키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디자인을 발표한 두산 베어스도 LG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새 유니폼에 만족하지 못한 팬들이 “디자인을 바꿔달라”며 온라인 서명운동까지 진행한 바 있다.
프로축구에서는 올 시즌을 앞두고 전북현대가 유사한 홍역을 겪었다. 매 시즌 새로운 유니폼 디자인을 선보이는 전북은 올해 기존 팀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색상 초록에 파랑을 가미한 유니폼을 제작했다. 팬들은 갑작스러운 색상 혼합에 반감을 표했다.
전북 서포터즈 그룹인 ‘매드그린보이스’는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페이스북을 통해 “새롭게 선보인 유니폼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팀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유니폼 제작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에도 이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 잉글랜드 축구리그에서 활약 중인 카디프 시티는 지난 2013년 유니폼 색상을 놓고 홍역을 앓았다. 당시 1부 리그 승격을 앞두고 있던 카디프는 새 시즌을 맞아 100년 가까이 지켜오던 전통 색상인 푸른색을 버리고 붉은 계열의 유니폼으로 전면 교체를 계획했다.
붉은 색을 바탕으로 여러 샘플을 만들어 의견을 듣고자 투표를 진행했지만 팬들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혀야 했다. 카디프는 이 시기에 말레이시아 출신 부호 빈센트 탄이 구단주로 부임했다. 새로운 구단주는 아시아 마케팅을 위해 팀의 상징 색상을 중화권에서 선호되는 붉은 색으로 바꾸려 했다. 구단은 붉은 색을 밀어붙였지만 팬들의 반발에 현재는 홈 유니폼이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프로 스포츠에서 구단과 팬 간에 유니폼을 놓고 갈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구단은 여러 유니폼 디자인을 놓고 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팬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 유니폼 문제? 결국은 ‘돈 때문에’
이처럼 프로 스포츠 구단이 새로운 유니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거나 팬들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경제 논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와 같은 옷을 입고 싶은 팬들의 욕망을 이용한 유니폼 판매는 구단의 주요 수익 구조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유니폼 등 상품 판매가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다. 해외에 비해 시장 규모도 적다. 구단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변화를 강행한다.
전북의 갑작스러운 변화도 모기업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팀을 운영하는 현대자동차 그룹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전북과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그 결과 두 구단은 뒷면에 유사한 디자인을 적용해 같은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북은 KIA 타이거즈와 유사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유니폼의 색상도 달라졌는데 현대자동차 그룹을 상징하는 푸른색에 기존의 초록색이 가미됐다.
프로축구 전북(위)와 프로야구 KIA의 유니폼. 같은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사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다양한 종목의 구단을 후원하고 있는 한 스포츠 브랜드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구단 후원으로 직접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브랜드 홍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기대하며 후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미한 수익 효과에 업무만 늘어나 구단 후원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직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해외의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글로벌 구단은 한 해에도 수십만 장의 유니폼을 팔아치우고 있다. 이들은 구단 자체적으로 유니폼을 비롯한 구단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전용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상품 판매가 주 수입원 중 하나이기에 구단은 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팀의 전력 상승을 위한 수단이었던 선수의 영입과 방출이 마케팅을 위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박지성이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의 맨유로 이적할 때 일부에선 “티셔츠 판매원을 영입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박지성은 이 같은 비판을 실력으로 잠재웠지만 실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유럽 구단의 영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맨유는 중국 선수 동팡저우의 영입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쏠쏠한 이익을 챙겼다. 이탈리아의 AC밀란은 팀 내 전력면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 선수 혼다 다이스케를 쉽사리 내치지 못하고 있다. 혼다가 팀 내 가장 많은 유니폼 판매고를 기록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큰 구단 잡아라’ 스포츠 브랜드 간의 전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 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반면 국내 사정은 이에 비하면 초라한 상황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1200억 원(현금 600억 원과 용품 600억 원)의 후원 계약을 맺은 나이키와 축구국가대표팀을 제외하면 시장이 크지 않다. 일부 비인기 구단은 후원사를 찾기조차 어렵다. 후원 계약을 맺으면서도 구체적인 조건을 상세하게 밝히지 않는다. 근래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큰 규모는 FC서울과 르꼬끄 스포르티브의 4년 80억 계약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스포츠 용품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국은 스포츠 브랜드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후원 업체인 나이키가 K리그에선 단 한 팀과도 후원 계약을 맺지 않았다. 반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중국 슈퍼리그에서만큼은 나이키가 리그 전체(16개 팀)를 공식 후원해 유니폼 전체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