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는 유독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가 줄지어 제작됐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애국영화’로 불렸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한 탓에 ‘국뽕영화’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 작품들이 대규모로 제작됐다. 대부분의 작품은 각 투자배급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정재 주연의 <인천상륙작전>, 김무열·진구 주연의 <연평해전>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권을 의식해 제작된 작품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개봉 시기가 비슷하게 겹친 탓에 애국영화로 분류된 <국제시장>도 있다.
최근 영화계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애국심을 강조한 영화의 제작은 주춤한 상태다. 반면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끈 사건을 그린 영화들의 제작은 속도를 내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소재인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 6월 항쟁을 그린 김윤석·하정우 주연의 <1987>이 대표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비선실세 문제를 빗댄 영화 <게이트>도 촬영을 앞두고 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홍보 스틸 컷
# <인천상륙작전> 잇는 <장사리전투>…잡음
지난해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은 최근 3~4년간 나온 작품들 가운데 가장 ‘우편향’된 영화로 꼽힌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 인천을 지켜낸 첩보요원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는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을 맥아더 장군 역에 캐스팅한 덕분에 기획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사라진 영웅을 추모하려는 기획이지만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편향적인 시선 탓에 개봉 직후 여러 논란과 비판에 휘말리기도 했다. 특히 북한을 향한 시선이 반공사상이 극심하던 1970~1980년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었다. 심지어 영화적 퇴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하지만 논쟁이 커질수록 관객이 몰렸고, 결국 7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심지어 <인천상륙작전>은 기획 단계부터 ‘2016년 7월 27일 개봉’을 못 박고 출발했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7~8월에는 각 투자배급사가 어떤 영화를 어느 날짜에 내놓을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인천상륙작전>만은 예외였다. 개봉을 앞두고 영화계에서는 ‘특혜’라는 시선도 나왔다. 결국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왜 그토록 <인천상륙작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가 하나씩 공개되면서 비로소 드러났다.
<인천상륙작전>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앞서 드라마 <아이리스>는 물론 한국전쟁을 다룬 또 다른 영화 <포화 속으로>를 통해 애국 메시지를 강조해온 회사다. <인천상륙작전> 개봉 당시 제작사는 <장사리 전투>를 만들겠다고 알렸다. 한국전쟁 초반 학도병들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로 <인천상륙작전>을 잇는 분위기다. 이를 통해 제작사는 “<포화 속으로>부터 <장사리 전투>까지 한국전쟁 3부작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현재 <장사리 전투>의 제작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투자배급사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 <인천상륙작전>을 전폭 지원한 CJ엔터테인먼트가 다시 한 번 <장사리 전투>를 담당할지도 아직까지 미지수다. CJ 측은 “투자 후보에 올려놓고 있을 뿐 확정된 사안은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장사리 전투>는 캐스팅 과정에서 먼저 잡음을 만들고 있다. 할리우드 톱스타 제시카 알바에 캐스팅을 제안했고, 성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제작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시카 알바 측은 <장사리 전투> 출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제야 제작사가 “아직 시나리오를 건네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어이없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더욱이 영화를 이끌어갈 두 명의 남자 톱스타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답보 상태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제작사가 가장 공을 들인 20대 톱스타는 얼마 전 출연 거절의 뜻을 밝혔다”며 “이후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화 <연평해전> 홍보 스틸 컷
# 제2의 <연평해전> 나올 수 있을까
2015년 개봉한 <연평해전>은 예상을 깨고 6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영화는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남북한 대치로 인해 벌어진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제작 초반 투자 난항을 겪으면서 촬영이 중단됐지만 이후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배급사 NEW의 합류로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연평해전> 역시 애국심을 자극하는 작품. 북한과의 해전으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희생을 담아내 관객의 공감을 얻었지만 한편으론 편향적인 시선을 주입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연평해전 희생 장병의 빈소 방문 대신 한일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담은 뉴스 장면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연평해전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면서 편향적인 시선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 상황에서 제2의 <연평해전>이 탄생할 수 있을까. 영화계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연평해전>이 개봉하기까지 투자배급사들의 정권 눈치 보기가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배급사 NEW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영화 <변호인>을 만든 회사로 유명해지면서 강도 높은 세무조사까지 받았다는 소문이 영화계에 퍼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연평해전> 배급을 맡은 것을 두고 ‘정권을 의식한 선택’이라는 시선이 뒤따랐다.
물론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의 제작이 아예 멈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시선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관객의 반응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구 선생의 젊은 시절을 그린 <대장 김창수>는 평범한 청년이 독립운동에 헌신하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이다.
이범수 주연의 <사선에서>는 다른 방향에서 눈길을 끈다. 영화는 ‘통영의 딸’로 알려진 월북 학자 부부와 그 딸들의 이야기다. 독일 유학시절 월북한 부부,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낀 탈북, 남겨진 가족이 북한 수용소에 갇힌 내용이다. 북한 체제의 후진성을 고발하는 메시지로도 읽히는 이 작품은 폴란드 로케 등 상당한 규모로 제작돼 그 배경을 두고 영화계의 시선을 받아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