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독일 총리직을 맡고 있는 메르켈에 대한 독일인들의 신망은 꽤나 두텁다. 비록 근래 들어 유럽에서 증폭되고 있는 탈유로, 반이민 정서 때문에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정치인’ 대신 ‘인간’ 메르켈에 대한 호감은 여전한 편이다. 메르켈에 대해 독일인들이 느끼고 있는 정서는 ‘무티(Mutti:엄마)’라는 별명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때로는 강인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발휘하는 엄마 같은 리더십으로 독일 안팎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메르켈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는 바로 ‘검소함’이다. 평범하다 못해 소박한 생활을 하는 메르켈의 모습을 보면 과연 세계 강대국의 총리가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꾸미지 않은 듯한 털털한 외모는 물론이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는 모습은 최근 우리가 처한 현실에 비하면 먼 나라 이야기만 같다. ‘우리도 저런 지도자를 갖고 싶다’는 자조적인 한탄이 나오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가장 모범적인 모습의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메르켈 총리의 검소한 모습을 살펴보면서 언젠가 우리도 이런 지도자를 갖게 되길 희망해 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고 줄을 서서 계산하는 모습. 독일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다.
지난 2015년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메르켈의 마법: 독일 총리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5년 연속 선정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메르켈의 다섯 가지 장점을 꼽았다. 첫째 ‘푸틴에게 맞서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서방 지도자’ 둘째 ‘지칠 모르는 해외 순방’ 셋째 ‘장수하는 정치 생명’ 넷째 ‘검소한 생활 태도’ 다섯째 ‘축구광’ 등이 그것이다.
실제 메르켈은 처음 총리직에 올랐던 2005년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독일 내 지지율 역시 50%를 넘나들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가운데 ‘검소한 생활 태도’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 메르켈을 차별화하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검소함’에서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메르켈을 따라올 자가 없다. 이런 까닭에 유럽 언론들은 메르켈을 가리켜 ‘유럽에서 가장 검소한 지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2005년부터 지금까지 메르켈은 단 하루도 총리 관저에서 생활한 적이 없다. 대신 베를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 교수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와 관련, 루드비히스부르크의 ‘프랑코-저먼 협회’ 회장인 프랑크 바스너는 “메르켈은 총리가 된 후에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여전히 평범한 시민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스너는 “2년 전에는 내 아내가 대형 상점의 계산대에서 줄을 서있는 메르켈을 봤다고 말했다”라며 베를린에서는 아주 흔한 ‘메르켈 총리 목격담’을 소개했다.
세계 강대국의 지도자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고, 그것도 사람들 틈에 섞여 줄을 서서 계산을 한다니,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터. 하지만 이는 독일에서는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풍경이다. 오히려 너무 자주 목격돼서 설령 마주친다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을 정도다. 물론 총리라고 해서 먼저 계산을 하는 등 특혜(?)를 받는 일도 없다.
가장 최근에는 2016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장을 보는 메르켈의 모습이 목격돼 모처럼 화제가 됐었다. 오후 3시 총리실에서 베를린 테러 공격에 관한 기자회견을 마친 후 퇴근을 하는 길에 직접 장을 봤던 메르켈은 당시 버터, 파프리카, 감자 등을 구입했으며, 늘 그렇듯 집에서 가지고 온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그리고 계산을 마친 후에는 직접 쇼핑카트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런 메르켈을 곁에서 경호하는 요원이 단 두 명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메르켈의 슈퍼마켓에 대한 애정은 지난 2014년,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시 메르켈은 리커창에게 자신의 단골 슈퍼마켓을 소개해줬으며, 함께 장을 보는 등 친밀함을 과시했다. 메르켈과 리커창이 다녀간 후 이 슈퍼마켓은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유명해졌다.
메르켈 총리는 패션에도 무관심하다. 2014년 독일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영접한 자리에서 메르켈이 입은 통 넓은 베이지색 정장 바지는 아직도 최악의 패션으로 회자된다. EPA/연합뉴스
메르켈의 소박한 모습은 휴가를 갈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1년에 한 차례 남편과 단둘이 떠나는 휴가 때마다 메르켈은 항상 최소한의 경호원만 대동한 채 조용히 다녀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이탈리아 남부의 이스키아섬으로 휴가를 갔을 때에는 남편과 따로 출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불화 때문은 물론 아니었다. 세금을 멋대로 유용하지 않기 위해 메르켈은 관용기로, 남편은 민간 여객기로 각각 이탈리아로 떠났던 것.
그리고 휴가지에서도 검소한 습관은 이어졌다. <버니티 페어> 이탈리아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식사는 늘 간소하게 했으며, 와인을 마실 때도 가장 저렴한 하우스 와인을 택했다. 마시다 남은 와인은 코르크 마개로 막아 놓고 갔는데, 그 이유는 다음에 와서 다시 마시기 위해서였다.
당시 휴가지에서도 가능한 경호는 최소로 했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 지역 어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남편과 함께 산책을 다니는 등 평범한 휴가를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약국에 들러 직접 약을 사거나, 피자집 앞에서 피자를 포장해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모습도 목격되곤 했었다. 그야말로 휴가를 온 일반 시민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이런 검소한 생활 습관은 외모에서도 드러난다. 패션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 메르켈은 사실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비슷한 스타일의 바지 정장을 고수하는가 하면, 간혹 멋을 부려도 세련미와는 영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런 메르켈을 가리켜 어떤 사람들은 ‘촌스럽다’ ‘유행에 뒤처졌다’ ‘패션감각은 빵점이다’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일례로 2014년, 독일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영접한 자리에서 메르켈이 입었던 발등을 덮는 길이의 통 넓은 베이지색 정장 바지는 아직도 최악의 패션 가운데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독일 출신의 샤넬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는 이를 보고 “매우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르켈이 고집하는 바지 정장은 거의 대부분 독일의 디자이너인 베티나 쇤바흐의 것으로, 쇤바흐는 2005년 메르켈이 처음 총리 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메르켈의 의상을 담당해 왔다. 쓰리 버튼의 상의에 정장 바지 스타일이되, 검정색부터 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통해 변화를 주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메르켈은 이른바 ‘재활용 패션’의 대가로도 유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번 입었던 옷을 여러 번 다시 입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공인의 경우 공개적인 자리에서 똑같은 옷을 여러 번 입고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메르켈은 그렇지 않다. 일례로 지난 2014년, 잘츠부르크 클래식 뮤직 페스티벌에 남편과 함께 나란히 참석한 메르켈이 입고 등장했던 알록달록한 실크 가운은 그야말로 단연 화제였다. 이 가운은 무려 18년 된 것으로, 메르켈은 1996년, 2002년에도 한 차례씩 공개석상에서 입고 나타났었다.
메르켈 총리는 ‘재활용 패션’의 대가다. 18년 된 알록달록한 가운을 공식석상에서 세 차례나 입고 나타났다.
사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백악관 시절 세련된 스타일로 호평을 받았던 미셸은 저렴한 브랜드부터 명품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섞어서 소화하는 믹스매치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같은 옷을 여러 번 교차해서 입는 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가령 벨트, 브로치, 가디건 등으로 변화를 주는 식이었다.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불릴 정도인 메르켈의 헤어 스타일은 오죽할까. 메르켈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짧은 단발 머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단골 미용사 한 명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부터 메르켈의 머리를 커트해주고 있는 우도 발츠는 과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머리도 담당했던 인물로, 2005년 한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머리를 자르러 온다. 염색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메르켈이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그렇다고 따로 특별석에 앉는 것은 아니다. 다른 손님들과 나란히 앉아 머리를 커트하고 간다는 것이 발츠의 설명이다. 단,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머리를 다듬는 동안 따로 말을 걸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커트 비용은 일반 독일의 미용실과 엇비슷한 수준인 65유로(약 8만 원)다.
물론 총리실 소속의 전담 스타일리스트는 따로 있다. 이와 관련, 메르켈은 독일 방송국 <ARD>의 청소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총리님은 항상 활기차게 보이는 비결이 무엇인가요?”라는 청취자 질문에 “즐겁게 일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는 것 역시 기분을 항상 좋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메르켈은 단정한 헤어 스타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매일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머리를 만져주거나 화장을 고쳐주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하루에 두 번까지 고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내 헤어 스타일은 미용 관련 도구 덕분에 열네 시간 동안 상당히 잘 버틴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구란 초강력 헤어스프레이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됐다.
그러나 메르켈은 집에서 쉬는 날에는 가능한 화장은 하지 않은 채 편안한 차림으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집에서는 청바지나 점퍼 또는 가디건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총리실 소속의 훌륭한 메이크업 전문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실용적인 스타일을 선호한다. 한 번 만진 머리는 열두 시간 이상 버텨줘야 한다. 두 시간마다 콧등에 파우더를 덧바를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짧은 단발머리의 메르켈 총리는 미용실에서 다른 손님들과 나란히 앉아 머리를 커트하고 간다. 2013년 9월 6일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사진제공=청와대
이런 수수한 스타일 때문에 메르켈의 이미지는 여성스럽기보다는 남성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강인한 비즈니스우먼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가사일에는 전혀 무관심할 것 같다. 하지만 유권자를 의색했든 아니든 메르켈은 이 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2009년 <로이터>를 통해서 메르켈은 자신이 얼마나 요리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편과 함께 어떻게 집안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했다. 당시 메르켈은 “남편은 요리를 못한다. 대신 시장은 대부분 남편이 본다. 금요일에 내가 장 볼 목록을 적어주면 남편이 주말에 장을 봐온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텔레그래프>는 메르켈이 외교 무대에서는 푸틴에 맞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집에서는 남편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는 등 가정주부로서의 면모를 발휘한다고 말하면서 고된 하루를 마감한 후에는 종종 집에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감자 수프나 자두 케이크를 만들면서 휴식을 취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메르켈의 수수한 스타일이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4년 영국의 <BBC>는 패션에 무심한 메르켈의 스타일에 대해서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일종의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요컨대 독일 유권자들에게 “저의 모든 시간과 머릿속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는 멋을 부리거나 쇼핑을 하는 데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진부하고 유행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메르켈은 이런 비아냥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오히려 이런 스타일을 자신감과 확신을 대외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같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고 있지만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는 또 다른 스타일이라고 유럽 언론들은 지적했다. 대처는 생전에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헤어 스타일과 함께 진주 목걸이, 브로치, 목까지 올라오는 리본 블라우스 등 잘 꾸민 스타일을 고수했었던 반면, 메르켈의 스타일은 단순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독에서 자란 메르켈의 가정 환경이 검소한 패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부친이 목사였던 데다 패션 잡지에는 ‘1도’ 관심이 없었던 메르켈이 굳이 옷차림으로 지위를 드러낼 필요를 못 느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메르켈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살과 헐렁한 정장, 그리고 편한 단발 스타일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단순한 착각은 아닐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여성 정치인들의 ‘파워컷’ 단발머리가 최고야 힐러리 클린턴. AP/연합뉴스 ‘파워컷’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헤어 스타일의 가장 대표적인 주자라고 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장관 등이 있다. 짧은 단발 혹은 커트 단발인 이런 스타일은 관리하기 편하면서도 남성 일색인 정치판에서 여성 정치인의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적격이다. 미용사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줄리아 카르타는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되곤 한다. 특히 헤어 스타일이 첫인상을 좌우한다. 머리 길이가 짧을수록, 그리고 단정할수록 남자들의 세계인 정치 무대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더 지적이고 똑똑하게 보일 수 있으며, 가볍게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긴 머리 스타일은 시선이 오히려 얼굴 밑으로 분산될 수 있기 때문에 강인한 이미지를 어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또한 머리가 길 경우 손질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여성 지도자에게는 결코 바람직한 스타일이 아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