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실상 헌재 판결에 불복 메시지를 내비쳤다. 일요신문 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이틀 뒤인 3월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퇴임 직후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은 자택으로 복귀하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사실상 불복 메시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친박계가 모이기 시작했다. 집결지는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이었다. 앞서 언급한 8인의 친박 의원들이 중심이 됐다. 이들은 업무도 분담했다. 총괄은 맏형격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정무는 윤상현·조원진·이우현 의원이, 법률은 김진태 의원이, 수행은 박대출 의원이 담당하게 됐다. KBS 앵커 출신인 민경욱 의원은 대변인격을 맡았다.
이러한 행보에 대해 차재원 부산카톨릭대 교수는 “삼성동계는 박 전 대통령을 잡고 있으면 다음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삼성동엔 나타나지 않지만 TK 의원 가운데 상당수는 박 전 대통령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차 교수는 “박 대통령이 ‘내가 다 잘못했다’고 하면 자신들도 폐족이 되는 것이지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니 병풍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보수 재편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되더라도 TK 중심으로 정치 세력을 만들어 정계 개편 과정에서 딜을 하면 된다. 나머지 TK 의원들도 잠정적인 삼성동계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 앞에 모인 지지자들. 일요신문DB
새로운 계파의 출현에 야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는 모습이다. 박완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3월 13일 “국민은 친박-비박을 넘어 ‘삼성동계’라는 새로운 계파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계파 청산’ 코스프레를 하더니 기어이 반성은커녕 새 계파를 창출한 한국당의 민낯을 국민은 신뢰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바른정당에서도 박 전 대통령 행보에 우려를 표명했다. 바른정당 대선기획단장인 김용태 의원은 <YTN> 라디오 방송에서 “현역 국회의원이 지금 어떻게 청와대를 나온 지 얼마 됐다고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대변인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저런 정치를 하는 것이 국민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명약관화하다”고 꼬집었다.
이뿐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1호 당원으로 있는 한국당 내부에서마저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인명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친박들이) 만약 국민 마음에 걱정을 끼치고 국민 화합을 저해하는 언행을 한다면 불가피하게 단호한 조치를 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당 비박계 나경원 의원 또한 3월 15일 SNS에 “전 대통령의 자택 복귀에 마중나간 것은 당연히 인지상정”이라면서도 “이를 핑계 삼아 반성해야 할 세력들이 뒤로 물러나지 않고 또 다시 정치 세력화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인지상정일 것이다”라고 보탰다.
논란이 거세지자 최경환 의원은 3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구는 무슨 일을 맡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업무를 정한 일이 없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서 자원봉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순수한 마음들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과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도 퇴임 후에 재직시절 가까웠던 분들과 봉하마을, 동교동, 상도동 등에서 교류를 계속 이어나갔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고 해서 인간적인 의리를 끊으라고 하는 것은 저에게 어떤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삼성동계는 동교동계나 상도동계와 결이 다르다는 견해도 나온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동교동계든 상도동계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퇴임했어도 모여서 식사나 하고 토론했다. 이렇게 업무를 분담해 마치 ‘비서실’을 만들고, 더욱이 파면된 대통령이 역사에 항거하고 국민에 항거하고 정치를 재개하려는 모습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 노림수는 무엇일까. 먼저 향후 대선에서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는 관측이 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3월 14일 “헌재 불복 논란에 이어 이제 사저정치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앞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대비하고, 친박 의원들은 향후 대선정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치권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국민에 대한 예의와 염치도 없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대통령이 불명예스럽게 퇴임했는데 인간적인 연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역할을 분담해 정치 세력화했다. 금방이라도 정당을 새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삼성동을 진지로 당장 물밑 지원보단 장기전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정당의 자기 계파 의원들을 사적 조직을 만들어서 역할까지 나눠 새로운 계파를 만든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사실상 ‘삼성동 청와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앞서의 차재원 교수는 “단지 검찰 수사를 조언하고 바로 앞날만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방 선거, 차기 대선까지 노리는 빅픽처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았다고 하지만, 업무를 분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단순하게 형사 재판에서 유무죄를 다투고 형량을 낮추는 데에 초점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어차피 국민화합 차원에서 차기 대통령 임기 중반 무렵엔 사면될 것이다”라고 점쳤다.
또한 박 전 대통령과 삼성동계의 향후 재기 시나리오에 대해 차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련의 상황을 ‘정치적 박해’라고 보고 있다. 정치적 박해를 받으면 ‘순교’를 해야 한다. 재판 과정을 정치적 순교로 생각할 것이다. 순교 다음엔 ‘부활’을 해야 한다. 삼성동계를 중심으로 해서 버티면 지지 세력이 10%만 모인다고 해도 무시하지 못할 정치적 세력이 된다. 정치적 박해와 순교로 포장해 지지 세력이 재결집할 것이다. 향후 대선에서 패하면 책임론을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보수 재편시기가 올 것이다. 끝까지 박 대통령을 지켰다는 명분이 있으니 삼성동계는 보수 재편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민경욱 의원은 “그냥 보좌할 사람이 없으니까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돕겠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업무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담당이 정해지게 됐다. 선거 개입, 정치적 활동 등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 크게 확대 해석할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